제 삶의 근본적인 질문을 모색하던 시기에 저는, 밀란 쿤데라의 <불멸>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쿤데라는 작중 화자의 입을 빌려 말합니다. ‘매일 점점 더 많은 얼굴들이 등장하고, 그 얼굴들이 날이 갈수록 서로 닮아가는 이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나만의 유일성을 확신하고,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독창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이에 쿤데라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합니다. 덧셈법과 뺄셈법이 그것입니다.
뺄셈법은 이것입니다. 내게 덕지덕지 붙어있는 외적인 것과 빌려온 것들을 모두 도려내 온전한 나 자신이 되는 것.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삶이라는 고단한 순례길에 들어선 우리는 생존을 위해 얼마나 많은 허례허식으로 우리를 치장하고 있습니까. 그 모든 첨가물들을 다 발라내면 유일한 자아를 찾을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쿤데라의 예리한 지적처럼 제 외부를 다 벗겨내면 자칫 제 자신이 ‘0’이 되어버릴 위험성도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덧셈법 쪽으로 기웁니다. 제겐 많지는 않지만 한 달에 몇 권의 책을 사볼 수 있는 약간의 돈이 있습니다. 이 돈으로 세계에 대한 저의 얄팍한 인식의 지평을 부풀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저를 조금이나마 더 나은 존재로 만들고 싶고, 시민 사회의 지적 성장에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이 작은 돈으로, 이제는 죽어서 만날 수 없는 혹은 살았어도 제 언어능력의 한계를 절감케 하는 전 세계 석학들의 지혜를 책이라는 창구를 통해 맛보려합니다. 진화심리학의 거장 스티븐 핑커, 불세출의 천재 아인슈타인, 서양 철학의 효시 소크라테스 등등.
이처럼 광화문의 땅 아래서, 별과 별 사이를 잇는 가상의 선을 그려 인간만의 상상력의 총체인 별자리를 읽어냈듯, 저도 은하수에 흩어진 별처럼 무수히 펼쳐진 지식의 보고들을 연결하여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 세상의 끈들을 하나하나 풀어내 그 심연을 훔쳐보려합니다. 오로지 제가 얻은 지식의 융합을 통해 얻은 저만의 시각으로 말이죠. 그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때에야 비로소, 쿤데라가 말한 저만의 독창성과 유일성을 확보하게 되는 그 순간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비추 주작이겠죠 - dc App
디씨의 매력이죠
와 마인드 ㅆㅅㅌㅊ네 - dc App
뭐라고 할까 한 청소년의 키취 같은 한 포부. 하하하하.
훔쳐보려합니다->훔쳐보려 합니다
띄어쓰기 교정 감사합니다
->키치. kitsch 명사 [U] (못마땅함) (인기는 있지만) 질 낮은[가치 없는] 예술품[물건]
비추 박힐만하다
근데 뭐 진화심리학 읽는다고 뭐 알고 아인슈타인 읽는다고 물리학 알아지고 소크라테스 읽는다고 철학 알아지냐? 그냥 킬링타임이지. 대학교재 사서 각 잡고 공부하지 않는 이상은 모든 비문학은 지식의 탈을 쓴 비지식적 킬링타임일 뿐이지
맞말 - dc App
각 잡고 공부해야한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그 수단이 꼭 대학교재여야한다는 점에는 동의 못 하겠다. 전 세계의 내로라 하는 석학들이 단지 대중들 타임 킬링 하라고 교양서를 쓸 것 같지는 않은데. 배우고 익히는 자세가 꼭 수반되어야겠지만, 괜찮은 교양서로도 인식의 지평을 조금이나마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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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들 뭐라하는 댓 밖에 없냐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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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유머러스하게 쓰면 좋을 텐데. 디시에선 그래야 읽힘
전에 문학을 읽는 이유도 그렇고 글 잘 읽었습니다.
뺄셈법도 중요하다고 생각. 일상의 자질구레함, 식상함을 덜어버리는 것 (?)
전자는 자코메티 후자는 들뢰즈가 생각나네
글 가독성 ㅆㅅㅌㅊ - dc App
적으신 내용만 보면 덧셈법과 뺄셈법은 둘중에 취사선택하는 개념은 아닌것 같네요. 살아가면서 무엇을 더해나가고 무엇을 빼나갈지 정해가는 수많은 경우의 수 하나하나가 결국 한사람 한사람의 고유한 정체성이 아닐까요?
ㄱㅆㅅㅌㅊ인데 왜케 혹평들이지. 키치적이라는 말을 여기에다 쓰는건 맞는 용법인지?
한 수 배워갑니다... - dc App
이 글 잼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