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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켐벨의 저서인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대략 4개월 전에 읽었지만 이제와서야 생각이 정리가 되었다. 내용은 다들 알다싶이 프로이트의 이야기를 서문으로 꺼내며 신화의 이야기에서 영웅이라는 자들의 일생으로부터 인간 삶의 원형과 지향해야할 방향을 뽑아내고 이를 어떤 개인의 꿈과 매치시켜보기도 한다. 나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연관시키며 봤다.
서문에 나와 있듯이 영웅들이 가지는 공통된 서사는 알기 어려운 형태로 쓰여져 있다. 표현 그대로 황새가 아기를 물어다주는 이야기에서 황새는 무엇을 뜻하는지, 이처럼 알기 어렵다. 그런 것들 중에 불멸성과 아버지에 대한 부분이 나오는데(길다)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보고, 엄중하게 자아를 통제하고, 애증을 버리고, 고독하게 살고, 용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데 힘쓰고, 이기심과 권세, 자만심과 색욕, 분노와 편견을 떨치고, 마음 안에서 정일을 얻고, '자아'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 이런 사람은 능히 불멸의 존재에 값하는 사람이라 일러 무방하다.", "하느님의 분노의 활이 굽혀지고 시위에 화살이 걸렸습니다. 정의가 여러분 가슴에 살촉을 겨누고 시위를 당깁니다. 한순간 화살이 여러분의 피를 마시게 하는 것은, 약속도 아니고 은혜도 아닌 하느님의, 노한 하느님의 의지 뿐입니다.(조너선 에드워즈)" 영웅은 인간으로서 악한(?) 것들을 내려놓아야 불멸성을 획득할 수 있고, 아버지의 악마적인 측면을 보여주었다. 악마라고 하면 나를 타락시키는, 약한 나를 죽이는 악한 것들이라 생각한다.
중학교 시절 밤에 잠이 안오면 이야기를 만들었다. 몇 년 동안 계속되어 글로 남기는 중이지만 부분 부분 고치기 이전의 원형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주인공을 신격화 시키기를 좋아했다. 욕망도, 욕구도 없는 주인공에게 슬픈 감정만 잔뜩 넣어놓고 그것을 이겨낸 끝에 눈에 보일 정도로 구체화된 불멸성을 부여했다. 여기에 슬픈 감정을 체운 건 아버지다.(어머니는 항상 비중이 0이었다) 아버지는 평범한 주인공의 일상은 부수고 타락시켰다. 끝에는 그 손에(다른 손을 하나 거치지만) 죽게 되고 아버지는 인간으로 죽으며 일종의 화해를 했다. 아마 내 어릴 적과 관련이 많은 것 같다. 5살 즘에 부모님이 맨날 싸우시다가 이혼하셨는데 나와 형은 어머니 쪽으로 가게 되었다. 다음 해인가 다다음 해인가 새아버지가 들어오셨지만 어린 내게도 아버지라기 보다는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없다시피한 생활을 이어가니 내게는 아버지라는 형이상학적인 형상이 생기지 않았다. 그 결과 아버지를 내 삶을 파탄낸 악마적인 존제로 본 것이 아닐까? 중학교 쯤 들어가서야 나는 아버지와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었고 어느샌가 인간성을 부여했다. 악마로서의 아버지는 죽고 인간이 된 것이다. 내가 이야기 속에서 인간으로서 죽게 한 것은 그만큼 내가 받은 상처가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위에 것은 내가 만든 3개의 이야기중 첫번째 것이고, 갈수록 현대문학처럼 변한다. 두번째 부터는 여성이라는 존재가 부각된다. 본문에서 발췌해보면 "모든 장애물이 극복되고 도깨비가 퇴치되었을 때 영웅이 치르는 마지막 모험은, 승리한 영웅과 세계의 여왕인 여신과의 신비스러운 혼례로 표산된다.", "세계의 여왕인 여신과의 신비적인 결혼은 영웅의 삶 전체가 완성되었음을 상징한다. 즉 여성이 곧 삶인데 영웅은 이 삶을 알게 되었고, 이를 완성하게 된었다는 뜻이다.(중략) 영웅의
시련은 자각의 위기를 상징한다. 이자각의 위기를 통해 영웅의 의식은 증폭되고, 어머니상의 파괴자, 천생연분의 신부를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것이다." 라는 부분이 있는데 2번째 주인공은 이야기의 시작부분에서 용을 만난다(용은 다 여성ㅎ). 이를 계기로 모험을 떠나면서 자신의 삶의 거부해왔던 것들을 점차 받아들이게 되며 결국엔 한 명의 여성을 배우자로 받아들인다. 스스로는 이미 불멸성을 획득했음에도 말이다. "이 과정에서 영웅은 자신이 아버지와 같으며 이제 아버지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사랑을 모르던 중학생 시절이 지나서 고등학생이 되어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 적립되기 직전에 만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남녀간의 사랑보다는 부모자식간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더 많이 담고 있지만 분명 내가 이때쯤 부터 사랑이란 것에 자각하고 있던 것 같다.
이미 신이 죽은 시대에 사는 우리가 인간의 신화라는 것을 만들기 위해서 소설가가 많은 소설을 보고, 운동선수가 많은 경기를 봤듯이, 이미 죽은 신화라는 이름의 신의 시체 속에서 양분을 받으며 자라나야 한다. 이미 우리는 그것을 키워내고 있다. 나는 우리가 그것을 문학이라 부른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신화의 연장이며 신화가 삶의 진리를 담은 이야기였던 것과는 달리 인간을 진리로 추앙하며 쌓아올리는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신화부터 현대문학까지, 처음에는 인간의 원형에서 신으로 표현되는 인간의 본성, 영웅의 인생, 문학으로 넘어와선 집단의 역사, 인간의 인생, 개인의 일화까지. 인간을 진리로 떠받들기 때문에 아주 단편적이고 편파적일 수도 있는 단순한 개인의 일생의 한 부분을 이야기로서 써내려가고 있다. 인간 그 자체가 진리이고 신이기 때문에 신이 그러했듯이 말하나, 행동하나가 진리의 일부분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튼실한 과실을 맺을 수 있을 지, 바람에 뿌리가 뽑혀 열매가 땅에 떨어져 썩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 신의 죽음 이상의 혼돈은 없을 것이다. 인간의 신화가 죽으면 무엇이 올라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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