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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씨라서 제목 어그로가 안끌리는 것 같아서 바꿔봄





Close Range : Wyoming Stories 1 / 애니프루



1.

더 이상 라스를 붙들어 둘 수는 없었다. 열여섯이 되던 해, 이 껑충한 젊은 청년은 집을 나가서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토론토, 보스턴, 신시내티 등지로 나돌았다. 그가 무엇을 기대했고 무엇을 경험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는 돌아오지도, 편지를 보내지도 않았다.

그 시대의 딸들이 다 그렇듯, 관심을 못 받고 등한시되던 그들의 딸은 나쁜 버릇을 가진 카우보이와 결혼해 벡스로 이사했다. 홈 틴슬리는 결국 양 치는 일을 포기하고, 시장에 판매할 채소밭을 일구거나 양봉설비를 갖춰 통조림용 토마토 및 문앤스타 수박을 재배하는 데 주력했다. 1년 정도 지나자, 라스의 말은 이웃 목장의 클리카스에게 팔았다.

1933년, 아들은 집을 나간 지 5년이 되었으나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 엄마는 커튼을 바라보며 아이가 왜 편지를 쓰지 않는 걸까, 하고 애를 태웠다. 그때, 부표처럼 부풀어 오른 원피스 차림의 아기가 어두운 굽이를 돌아 조용히 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모습이 선하게 떠올랐다. 하긴, 누가 이런 엄마에게 편지를 쓰겠어? 그런 생각에 닿으면 그녀는 한밤중에도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내려가서 천장, 탁자 다리, 남편 부츠의 밑창을 박박 문질러 닦고, 은색 광택을 내기 위해 바나나 껍질로 낡은 고기 그라인더를 닦고 또 닦았다. 비록 그녀가 살인자인지는 몰라도, 아무도 그녀의 집이 꺠끗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133p)




2.

홈은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듯 라스에게 말했다. 그의 인지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무슨 수로 안단 말인가? 아무 움직임도 없이 잠자코 앉아 있을 떄, 그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한단 말인가? 나무 아래 스치는 스산한 바람? 금속성 비명 소리를 내며 도로에서 튕겨져 나가던 차와 온 세상이 거꾸로 뒤집혀 보이던 일? 아니면, 단지 지지직거리는 회색화면처럼 희미한 이미지만 돌아가고 있을까?

"말을 탈 수 있겠니?"

그는 그럭저럭 탈 수 있었다. 그건 신이 내린 뜻밖의 선물이었다. 홈이 먼저 안장을 얹어 주어야 하건만, 라스는 그새를 못 참고 아침을 먹자마자 말을 타고 나가서 몇 시간이고 돌아다녔다. 그들은 선명한 초록색을 배경으로 평원을 누비는, 가느다란 섬광을 내뿜는 자욱한 먼지 연기 같은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틴슬리 부인의 마음속 한 구석에는 차츰 두려움이 자라나고 있었는데, 언젠가 텅 빈 안장을 얹은 주인 없는 말이 느슨한 고삐를 달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게 될 거라는 공포심이었다.(139p)





3.

"라스 너에게 할 말이 있단다. 내 말 잘 들어 둬. 너 지금처럼 계속 그렇게 돌아다니면 안 돼. 여자들한테 그렇게 거시기를 함부로 보여 주거나 하면 안 되는 거야. 나도 안다, 라스. 너도 젊은 남자고, 그런 욕구가 없을 수는 없지. 그러나 지금 하는 방식으로는 안 돼. 그렇다고 희망을 버리지는 말거라. 찾아보면 너랑 결혼할 여자를 찾을 수 있을지 몰라. 아직은 안 찾아봐서 모르지만 말이야. 그러나 네가 하고 다니는 행동은 여자들에게 겁주는 것밖에 안 된단다. 그리고 그 카우보이들 있잖니, 던마이어네 작자들이 너한테 해코지할지도 몰라. 네가 계속 여자들을 괴롭히고 다니면 네 거기를 잘라버리겠다고 큰소리치고 다니거든.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잘라 버린다는 거 이해됐어?"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라스는 성한 한쪽 눈으로 그를 묘하게 쏘아보며 꺽꺽거리는 소리로, 홈이 지금껏 들어 본 적 없는 섬뜩한 소리로 웃어 대기 시작했다. 그는 그것이 웃음소리라는 건 알았지만, 그런 소리를 내며 웃는 이유는 짐작도 못했다.(147p)






4.

그는 병실에서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방에서 나왔을 때, 그는 대야와 얼룩진 수건을 싱크대에 내던지고 탁자에 앉아 머리를 숙인 채 숨죽여 울기 시작했다. 우, 욱, 우욱.

"무슨 일이에요? 상태가 더 나빠진 거에요? 왜 그래요?"

그녀가 물었다.

"세상에, 저러니 아이가 내 면전에서 그렇게 웃어 댔지. 그 자식들이 벌써 저질러 버렸어. 그것도 더러운 칼로. 이미 괴저가 일어나서 피부가 까맣게 변해버렸어. 사타구니 밑으로 한쪽 다리가 발까지 퉁퉁 부어서..."

그는 몸을 앞으로 구부려 그녀와 얼굴을 가까이 맞대고 노한 눈으로 말했다.

"당신! 아이를 침대에 눕힐 때, 몸을 왜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거요?"

아침 햇살이 세상의 가장자리를 따라 물밀듯 넘쳐 들어왔다. 그 빛은 창문 유리로 쏟아져 내리며 벽과 바닥을 물들였고, 악취 나는 침대와 부엌의 탁자와 차갑게 식은 커피 잔에 노란 담요를 드리웠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검은색과 노란색으로 된 수천 마리의 메뚜기 떼만 동쪽 벽에 내부딪었다.


이 모든 이야기는 60년도 더 지난 일이다. 힘들었던 그 시절은 모두 지나갔다. 던마이어 일가는 건기에 목장이 다 망가져 버려 그 고장을 떴다. 틴슬리 일가는 어딘가에 묻혔고, 문앤스타 수박이 자라던 곳에 이제는 가축 목장이 들어서 있다. 우리는 새천년을 살고 있으며, 더 이상 이런 절망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이것을 믿는다면, 다른 어떤 것도 믿을 수 있을 것이다.(149-150p)







영화로 많이 알려져 있는 '브로큰백 마운틴'이 들어가있는 단편집. 국내에는 생각보다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20세기 초반 미국 시골지방을 다룬 문학 위주로 써서 한국독자들이 흥미를 가지기 힘들다는 점도 있긴 하겠다. 그래도 소재를 감안해도 한번쯤은 읽을만하다.

마초적인 남성상을 강요하는 미국 문화, 그 사이에서 질식하듯 시달리듯 미국 남자들. 포기를 모르는 강인한 카우보이조차 어느 순간에는 두려움과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당시의 미국 사회는 '두려워 하는 남성'은 얼간이 취급받을 뿐이다.

그렇기에 어디에도 두려움을 털어놓을 수 없다. 도태된 남자는 라스처럼 남성성이 거세된 채 죽어갈 뿐이다. 미국에는 한때, 그런 끔찍한 세계가 존재했다.

이 단편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브로큰 백 마운틴은 그 이야기의 정점을 찍는다. 개인적으로 동성애는 싫어하는 편이라 영화로는 별 감명을 못 받았지만, 이미지가 덜 형상화되는 소설로는 아주 감명깊게 봤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 비극적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결말. 많은 서술, 많은 대화 없이 몇 가지 문학적 장치로 모든 감정을 표현해내는 작가의 역량에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문학적 역량이 굉장히 뛰어난데 많이 인정받지는 못한 그런 작가라고 본다. 삶의 비애를 담백하게 가장 잘 보여주는 작가 중 하나가 아닐까? 브로큰 백 마운틴 만큼은 감히 레이몬드 카버에 버금간다고 생각한다.

아마 한국에서는 '브로큰 백 마운틴'으로 제목이 붙어있을텐데, 한 번쯤 도서관에서 찾아 읽어보는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