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이해시키려는 표현의 충동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은 앞에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다.
나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스스로 명석한 인간인 척하려고 했으나, 그것이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충동에서 온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한 충동은 인간의 본성에 따라서 자연히 타인과의 사이에 놓이는 다리도 되기 때문이다. 금각의 미에서 느끼는 도취같이 나의 일부분을 불투명하게 만들었고, 이 도취감은 다른 한 도취감마저도 몽땅 박탈했기에, 그것에 맞서기 위해서 나는 별도로 나의 의지에 따른 명석한 부분을 확보해야만 했다.
남들의 경우는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명석함이야말로 나의 자기(自己)이지, 그 반대, 즉 내가 명석한 자기의 소유자라는 이 야기는 아니다.
여기서 왜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충동이 왜 타인 사이에 놓이는 다리가 된다는 거고 마지막 문장의 정확한 의미도 이해하기 어려움....
나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스스로 명석한 인간인 척하려고 했으나, 그것이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충동에서 온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한 충동은 인간의 본성에 따라서 자연히 타인과의 사이에 놓이는 다리도 되기 때문이다. 금각의 미에서 느끼는 도취같이 나의 일부분을 불투명하게 만들었고, 이 도취감은 다른 한 도취감마저도 몽땅 박탈했기에, 그것에 맞서기 위해서 나는 별도로 나의 의지에 따른 명석한 부분을 확보해야만 했다.
남들의 경우는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명석함이야말로 나의 자기(自己)이지, 그 반대, 즉 내가 명석한 자기의 소유자라는 이 야기는 아니다.
여기서 왜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충동이 왜 타인 사이에 놓이는 다리가 된다는 거고 마지막 문장의 정확한 의미도 이해하기 어려움....
금각사 예전에 읽었는데 이렇게 어려운 문장이 있었구나.. 지금은 뜯어읽으니까 대강 이해가 되는데 술술 읽은 그땐 뭘 읽은 건지?.. 본성에 대한 사전 정의가 본문에 나와있지 않으니 이 경우에는, 의식의 명석함과는 구분되는 인간 본성이 (일종의 사회성처럼) 자기의 내적 굴성과 위치를 자각하고 타인에게 도달하기 위한 그런 자기 이해라고 생각됨. 반면에 화자가 확보하고자 하는, 굳이 소통을 거부하는 고독한 명석함은 궁극적 미에 대한 도취가 나를 혼미하게 하므로 그 힘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려고 함. 마지막 문장은 명석함이 나의 본질이므로 마치 '명석한'이라는 것이 수식어처럼 나의 앞과 뒤에서 탈착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임.
그러니까 이해되기 쉽게 개념들간의 이항대립을 시키면, 사회적 동물로서의 위치를 배반하는 의식의 명석함은 반자연임.
자연은 '나'가 아님.
ㄱㅅㄱㅅ
스스로 명석한 인간인 척 하려는게 타인의 시선을 신경써서 한 행위일수도 있으니까 타인과 다리를 놓는 행위가 될 수도 있지, 금각이라는 절대적 가치 앞에서 내가 무화될 수 있는데 나의 존재의 자리를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남들과 다른 명석함을 내 정체성으로 삼는거고, 그래서 명석함이 곧 내 정체성인거지, 내가 먼저있고 똑똑한 내가 있는게 아니라는 뜻임
오 이해가 한번에 됬어요 ㄱㅅㄱㅅ
자기이해는 타인과의 소통에 중요한 다리가 된다. 이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 곧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는 의미. '명석함'은 나의 일부가 아니라 나의 전부와도 같다는 것. 내가 명석함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명석함 그 자체가 나를 정의한다는 말. 이로써 화자는 자신의 존재의 본질이 '명석함'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