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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감상만 주절주절


1. 지금까지 이청준 단편집 세 권 읽음

눈길(열림원X 문지스펙트럼 쪼끄만 거), 병신과 머저리, 소문의 벽

이청준은 작품의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은 편이라 보통 많이들 분류해서 보곤 하는데

눈길처럼 서정(또는 정념)/토속+관계/향토성의 문제, 병신과 머저리처럼 전후 트라우마와 무기력, 인간 실존의 문제, 소문의 벽처럼 메타 소설 형태, 그리고 치질과 자존심, 전쟁과 악기처럼 알레고리 소설의 형태(이외에도 전기 형태, 신학 소재, 권력 비판, 시선 비틀기 등등 다양한 양상이 있음)

대략 이 정도로만 쪼갠다고 하면 나는 이번에 소문의 벽 속 작품들 유형이 가장 재밌었음


눈길에 모여있는 보다 서정적이고 동화 같은 작품들도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초기 단편이었던 병신과 머저리에서 다양한 문제 의식들을 내보이는 작품들도 매력적이었지만 소문의 벽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는 소설, 글쓰기의 핵심적인 면을 파고 들어가면서 자유자재로 다루는 이청준의 '글놀음'이 마음에 들었음. 굳이 비교하면 병신과 머저리가 다양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으면서도 아직 '소설'의 육화까지는 가닿지는 못한 젊은 이청준이었다면, 소문의 벽은 완숙하고 내가 익히 아는 대가 이청준의 느낌이 나기 시작함



2. 작품 얘기도 간단히만 하자면 일단 전쟁과 악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음.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이청준이 알레고리를 다루는 게 가장 재밌다고 생각함. 소설을 단순히 관념, 서사, 정념으로만 나눈다면 알레고리 소설은 대체로 어떤 관념의 문제를 서사로 이끌어내면서 '소설적 육화'를 이루는데, 이청준 소설은 이것의 아주 탁월한 예라고 생각됨. 소설의 마력을 통해서 이청준이 제시하는 관념으로 초대하는 그런 느낌. 더할 나위 없이 재밌었음(아쉬운 건 결말이 마무리 지어지지 못한 느낌이라는 거?)


표제작 소문의 벽 읽으면서 느꼈던 건 1. 작품이 담은 서사/관념에 비해 분량이 길다/짧다. 2. 텍스트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솜씨가 감탄스럽다. 3. 부가텍스트들이 많아서 압축력이 대단하다. 1번은 되게 이상한 말인데 작품 큰 줄기, 표면적인 서사로만 따지면 이 작품은 그리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임. 그런데 텍스트들이 마구잡이로 얽히면서 제시하는 것은 아주 압축적임. 그래서 이 작품은 길고도 짧은 괴상한 작품이러고 느꼈음. 재미는 있었는데 상당히 피곤함...


그리고 여담인데 이승우가 이청준한테 영향 많이 받았다고 늘 이야기하는데 이거 읽고 나니까 생의 이면이 소문의 벽의(정확히는 소문의 벽을 필두로 한 이청준식 글쓰기의) 한 변주라고 느껴졌음


또 하나 이 작품집에는 소문의 벽처럼 소설의 문제를 다룬 소매치기 연작이 있는데 난 개인적으로 이게 참 의아한 작품이었음. 왜냐하면 난 두 번째 연작인 목포행에서 본래 이청준이 향토, 고유성의 문제를 다루는 것과 소설의 문제가 결합되면서 상당히 감동스러운 지점을 느꼈었는데, 세 번째에서 이걸 변주하면서 앞의 감동을 전복해버리는 터라. 소매치기(이거 자체가 이 연작에서는 소설에 비유됨)와 소설이라는, 글쓰기의 서로 다른 양면성을 보여주는 것 같긴한데 목포행에서 느꼈던 감동이 면도칼로 슥 떨궈지는 기분이라 아쉽더라



대충 이 정도 감상이 들었는데 결론은 재밌다 이거예요. 이청준은 국문학의 보배이고 신이고 어쩌고

청준좌 입문작이 뭘까로 이래저래 이야기가 많던데 난 눈길, 병신과 머저리, 소문의 벽중에 소문의 벽에 담긴 단편들이 이청준 정수라고 생각했음. 소문의 벽이 좀 길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거 넘으면 이후 이청준 작품은 술술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함


이제 슬슬 장편이나 연작도 하나 읽어야겠다

대청준 숭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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