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어디까지나 규정이 성질의 상태로 이행하는 한에서이며, 이보다 더 명확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내면성과 외면성의 본질 및 관계를 고찰하는 데에서, 그리고 더 나아가 가장 명확한 형태를 띠고 나타나는 것은 개념과 현실성의 통일로서의 이념의 고찰에서이다.


이미 여기서 어느덧 물자체의 의미도 드러난다고 하겠으니, 이것은 하나의 극히 단순한 추상체이지만 한때는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규정으로 간주됨으로써 우리는 결코 물자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하는 명제가 마치 어떤 어김 없는 타당성을 갖는 지혜인 듯이 여겨져 온 것이 사실이다.-말하자면 일체의 대타 존재로부터 사상될 때, 다시 말하면 사물이 아무런 규정도 지니지 않는 한낱 무와 같은 것으로 여겨질 때 바로 그 사물은 자체적, 즉자적이라고 불린다. 이러한 의미로 볼 때 물자체가 무엇인지를 결코 알 길이 없으니, 왜냐하면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그때마다 규정이 제시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규정이 내려져야만 할 바로 그 사물은 동시에 물자체, 다시 말하면 아무런 규정도 지니지 않는 것이어야 하므로 결국 이 물음 속에는 생각 없게도 답변의 불가능성만이 담겨 있거나 아니면 다만 이치에 닿지 않는 답변을 할 수밖에 없다. 실로 물자체란 그에 대해서 오직 그 속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일 뿐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 그치는 절대자와 다름 없다. 그런데 진실로 물자체란 과연 무엇인가, 아니면 오히려 즉자적이란 무엇인가? 하는 데 대한 서술이 다름 아닌 논리학 그 자체이다. 그리하여 어떤 특정한 사물을 놓고 그것이 즉자적으로 무엇인가라고 물을 경우 여기에 주어질 수 있는 단순한 논리적 대답이란, 다만 그 사물은 즉자적으로 바로 그 자신의 개념 속에 깃들어 있는 바 그대로의 것이라는 답변이다.


여기서는 무엇보다도 이른바 신 존재에 관한 존재론적 증명 방식의 기초가 되었던 전 시대의 형이상학적인 신 개념을 살펴봐야만 하겠다. 이때 신은 모든 실재성의 총괄 개념으로 규정되는 가운데 그러한 총괄 개념은 어떤 모순도 자체 내에 포함하지 않을 뿐더러 또한 그 실재들 중의 어느 것도 자기가 아닌 다른 실재를 지양하지는 않는다고 얘기되어왔다. 왜냐하면 그러한 실재성은 다만 어떤 하나의 완전성으로, 또는 여하한 부정도 내포하지 않는 어떤 긍정적인 것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여러 실재성들은 서로가 대립하거나 모순을 빚는 일도 없는 것이 되었다.


(중략)


결국 이상과 같은 신의 정의에 있어서는 실재가 규정된 질로 간주되면서도 어디까지나 이 실재성은 그의 규정성을 초탈하는 것이어서 이때 실재성은 더 이상 실재일 수가 없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실재는 공허한 일면적 즉자성을 띠게 될 뿐이다. 이렇게 볼 때 모든 실재 속에서의 순수한 실재라고 할 신, 달리 말해서 모든 실재성의 총괄로서의 신, 오직 그 속에서 모든 것이 하나일 수밖에 없는, 앞에서도 언급된 바와 같은 공허한 절대자나 다름 없는 몰규정적이며 몰내용적인 것이라고 해야만 하겠다.



-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대논리학 1권: 객관적 논리학 1부 존재론>, 임석진 역, 22년도 자유아카데미 판본, 132p~13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