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즉 (...) 강한 애착을 갖게 되는 사람들은 동시에 파멸"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들의 사랑은 그들을 불행과 타인의 부정의의 인질로 만든다.


"일단 우리가 사랑을 하게 되면 우리는 상처 받기 쉽다.


즉 사랑을 하면서 동시에 사랑할지" 말지를 고민할 수는 없다. 


"조금도 상처 받지 않으려는 사랑은" 가장 좋은 사랑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을 할 경우 우리는 상해와 손실의 위험을 받아들이게 된다."


인생의 여러 경의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지식을 고려할 때, 


우리는 이러한 위험이 사랑을 멈추게 할 정도로 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랑에 대한 얘기들이 "현실에 흔히 있는 사랑에 있어서 타당할 경우,


당연히 그것은 질서정연한 사회"의 "정의감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존 롤즈, 『정의론』, 황경식 옮김, 이학사, 2003, 732-733면.) 

한국어판 번역이 별로인 부분은 내가 

(John Rawls, A Theory of Justice, Revised edition,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1999). 이거 보고 직접 번역. 



우리가 사랑에 진정 퐁당 빠지게 되면


수도꼭지 잠그는 것마냥 수틀리다고 걍 멈출 수가 없다.


정의감의 경우도 그렇다.


좋은 질서의 사회(a well-ordered society), 정의로운 사회에서


사람들은 정의감에 폭 빠져 사는 것의 위험이 


정의감을 버리게 할 정도로 크지 않다고 여길 것이고,


결국 그렇게 정의감에 폭 빠져 사는 사람들 중 극소수에게


목숨을 바쳐 정의를 사수해야 하는, 큰 불행이 닥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수도꼭지 잠그듯 그 순간 정의감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진짜 사랑을 하는 사람은 연인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순간에 사랑을 안 그만두듯.  


근데 (정의로운 사회에서) 정의감에 빠지는 게 왜 사랑에 빠지는 것만큼 일반적으로 득이 있는 걸?


그걸 알고 싶다면, <정의론> [86절 정의감은 선인가]를 직접 읽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