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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들은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 깨어진 영혼의 조각들을 어떻게든 쓸어모아도, 어느새 쏟아지는 선혈에 의해 다시 흩어진다.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그 조각들은 아직 누울 수 없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영혼에 깊숙히 박혀 펄떡거리고 있다. 영혼이 바스러진 사람들과 파편이 박힌 사람들. 눈꺼풀을 덮으면 보일 듯한, 각자만의 시선으로 완성된 한편 한편의 절규는 그렇게 그들과 공존하고 있다.  어쩌면 좋았을까. 그 사람들은, 유약하지만 강인했던 처녀는, 철 탄에 죽임당한 남매는, 어머니는, 아들딸 들은. 한 강 작가의 지향점이 묵직하게 느껴진 소설이다. 작가로서 한 강이 인간의 어떠한 점에 주목하는지, 광주 민주화 운동이 왜 한 강 작가에 의해 쓰일 수 밖에 없는 소재였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깨어지는 영혼의 시초는 균열이다. 균열은 인간이라면 성장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밖에 없는 타흔이다. 의식과 무의식 안에 단단히 자리 잡은 균열들은 유리나 빙하의 것이 그러하듯 스스로 쩌적, 하며 영혼을 가른다. 그 일은 보통 인간의 극심한 괴로움, 절망에 의해 일어나고 만다. 균열이 고통을 부르는지 그 반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인간의 영혼은 깨져 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균열의 존재를 스스로가 아주 잘 알게 될 쯤에, 인간들은 균열의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오르기 시작한다. 아주 주변적인 것들 부터 그들에게 갈망을 일으키는 풍경이나, 환멸을 자아내는 감정이나, 혹은 불쾌하지 않게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어떤 것이 그들에게 귀 시린 비명을 들려주는지 찾아내려 한다. 그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대면하는 자흔이나 또 다른 균열 있는 영혼들은 그들이 바란 적 없으나 겪게 되는 감정의 전환점들을 인간들이 통과하게 만든다.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전환일 것이라 단언할 수 없고, 사실 어떤 변화가 긍정적인지 조차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그저 바뀌게 될 뿐이다. 한 강은 이렇게 인간과 균열에 관한 흔적, 관계, 자아의 여정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한 강의 다른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 와 '검은 사슴' 을 돌이키며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런데 소년이 온다는 의도가 조금 다르다. 애초에 균열 따위의 것에 집중할 여유가 없다. 채 그런 것들이 생기기도, 느껴지기도 전에 이 소설 속 인간들은 부서진다. 커다란 말뚝, 나약한 인간으로써 어쩌지 못할 대못이 영혼 여기저기에 박혀 그저 으스러진다. 으스러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진다. 흙색의 감정을 밑에서부터 염색시켜 눈동자에까지 이르게 해, 맑은 영혼을 썩게 한다. 그만큼 5.18 민주화 운동의 실상이 글자 몇 개와 교과서의 몇 페이지, 그리고 5월의 하루로써 존재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거라고 작가는 결연히 말한다. 으스러진 영혼들과 그 파편, 피를 뒤집어쓴 영혼들의 삶을, 그래서 그렇게 그린 것이다.    

훌륭한 책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곳에서 자유로이 거닐 수 있는 자격을 미약하고 비겁하게나마 갖게 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