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훈(處容訓)」
달빛은
꽃가지가 휘이게 밝고
어쩌고 하여
여편네가 샛서방을 안고 누은 게 보인다고서
칼질은 하여서 무얼 하노?
고소는 하여서 무엇에 쓰노?
두 눈 지긋이 감고
핑동그르르…… 한 바퀴 맴돌며
마후래기 춤이나 추어 보는 것이라.
피식! 그렇게 한바탕 웃으며
"잡신아! 잡신아!
만년 묵은 이 이무기 지독스런 잡신아!
어느 구렁에 가 혼자 자빠졌지 못하고
또 살아서 질척 질척 지르르척
우리집까정 빼지 않고 찾아 들어왔느냐?"
위로엣말씀이라도 한 마디 얹어 주는 것이라.
이것이 그래도 그 중 나은 것이라.
-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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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의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에는 봐주자는 내용의 시와 봐줘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시가 함께 나타난다. 모순이라면 모순이겠지만 실은 이 무엇을 봐주고 무엇을 봐주지 말 것인가의 기준이 곧 그의 가치관을 잘 드러내는 척도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기실 이것은 현대에 들어와서 한국 문학이 유독 애용해온 테마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애용해온 만큼 그것의 태반은 너무나 뻔하게, 또 쉽게 이 문제를 푸는 것으로 끝마쳐 버리는 것이 보인다. 가령 작가의 작고를 계기로 최근 다시 읽기 시작한 신경림의 시집 가운데 『달 넘세』에는 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원혼을 소재로 한 시가 많은데, 그들의 용서와 복수의 문제를 가장 따분한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어 읽는 입장에서는 적이 짜증이 난다. 잘못된 복수심의 사례를 접하면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복수가 증오를 통해 이루어지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은 얼마간은 구별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정주에 따르면 봐주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신의 맡은 일을 충실히 지키는 일(「바보 온달 대형의 죽엄을 보고」), 예술의 완성(「황룡사 큰 부처님상이 되기까지」), 또는 자기 아버지를 잡아먹은 호랑이를 죽이고 그 뱃속에서 뼈와 살을 꺼내어 장사 지내는 일(「매사는 철저하게」)과 같은 것이다. 이 중에서 마지막 시의 경우 앞서 말한 식의 복수와 비슷해 보이지만 이야기의 주인공 최루백은 상을 마치고 그 호랑이의 고기를 자기 뱃속으로 삼켰다는 데에 차이가 있다. 한편으로 서정주는 봐줘도 될 것으로 특히 불륜과 관련된 연애 이야기를 주로 들고 있다. 간부(姦夫)에게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게 한 처용의 지혜는 증오 없이 복수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증오와 용서가 상극하는 것만은 아님을 일깨우는 데에 있다. 처용 설화에서는 불륜의 상대가 알고 보니 역신(疫神)이었더라는 내용을 하고 있지만 위의 시에서는 반대로 인간인 불륜 상대를 잡신으로 취급하며 놀리고 있는데 이것은 설화의 내용을 나름대로 설화적이지 않도록 만든 작지만 기발한 변형이다.
덧: 노벨상을 맞아 '펄 벅이 노벨상을 받았을 때'라는 뻘글을 올렸는데 시간대를 잘못 타서 완전히 묻힘.. 끌올하오니 봐주시면 감사하겠슴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663884
펄 벅이 노벨상을 받았을 때대척적인 자리에 서 있으나 제임스 조이스와 서머싯 몸은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는 공동의 무안함을 가지고 있다. 이 사실의 검토는 노벨상 신화의 정체를 밝혀 줄 것이다. 같은 영어권 작가인 미국의gall.dcinside.com
진짜 좋은 시 ㅈㄴ 많이 쓰심. 책 읽을 수록 나이 먹을 수록 느낀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