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6장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다툼)이라 하였으며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대적함)라 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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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죽고 이삭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하지만 아들도 아버지의 고난과 시행착오 즉, 흉년 등 타의에 의한 방랑, 신의 언약 받기, 실수까지도 의아할 정도로 똑같이 반복합니다. 이삭도 흉년을 피해 이방인의 땅으로 들어가고, 그 직전에 여호와로부터 번성하리란 약속을 받으며, 이방인들에게 아내를 빼앗길까 두려워 누이동생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달픈 방랑과 거짓말의 결과로 재산을 크게 늘린다는 부분까지 똑같습니다.
어쩌면 이런 반복과 뚜렷한 결실이 없는 시행착오의 연속은 성경 족보 상 기원전 20~18세기 쯤인 이삭 시대와, 실제 역사 속 히브리 민족 혹은 이스라엘이란 국가가 등장한 기원 후 4~5세기 사이의 거대한 공허 즉 이스라엘 민족이 유의미한 존재감의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한 1000년 가까운 시간을 설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늘린 서사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26장은 이토록 오래 전부터 이질적인 유일신 신앙을 고집한 소수 민족이 중동 지역에서 어떤 고통을 받으며 살아왔는지를 추측할 수 있게 합니다.
잦은 흉년, 그때마다 나일강의 범람을 활용할 대규모의 관개 사업과 그런 대규모 공사를 할 수 있는 강력한 왕권으로 거대 국가를 이룬 이집트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 사방의 이방인이 자기 혈족의 여자를 노리고, 죽을 고생을 해서 파놓은 생명같은 우물을 빼앗아도 저항할 수 없으며, 그들의 지도자와 평화 협상을 해도 한 세대만 지나면 유명무실해지는 약육강식의 야만적 환경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물론 아버지 대에도 300명이 넘었던 전쟁도 가능한 부하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왜 이들은 그런 능력과 재산을 갖고도 아직 정착하지 못한 것인지 의문이 들지만 역시 앞서 말했듯 창세기, 어쩌면 여호수아까지는 사실적 역사적 기록을 읽듯 읽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기록의 이면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 꽤 많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말했듯 창세기를 기반으로 하면 이삭이 위의 일을 겪은 것은 기원 전 20~19세기 사이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혹은 히브리 민족에 대한 실제 역사의 기록은 기원 전 14~12세기의 이집트의 기록이 최초입니다. 실제 역사 즉, 당대 중동은 물론 세계적으로 봐도 최강대국이었던 이집트의 기록 속 히브리인이나 이스라엘은 당연히 10가지 재앙을 쏟아부으며 출애굽을 한 엄청난 민족은 아닙니다. 그저 이집트에게 조공을 바치던 가나안의 여러 국가들을 산발적 저항으로 귀찮게 해 외교 문서에 실린 게 전부입니다. 그 문서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척박한 고지대에서 몇 백명 단위의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는 '유랑자들(하비루, עפירו)'이거나 '강을 건너온 자들(히브리, עברי)' 정도로 묘사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희미한 시대가 이스라엘 민족의 '0번째 침묵의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구약의 마지막인 말라기가 쓰여진 기원 전 5세기부터 예수가 활동했던 기원 후 1세기 까지를 '침묵의 시대'라 합니다. 전쟁 패배와 중동을 장악한 제국들의 식민지배 등으로 이스라엘은 거의 붕괴되고, 신에 의한 기적과 승리는 물론 제사장이나 선지자를 통한 간접적 개입도 없던 시기. 하지만 이 시기는 종교 및 사상적 관점에서 본다면 가장 역동적이며 창조적인 시기였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끔찍한 비유지만 부모의 목소리만 들으며 살아온 아이를 상상해 봅시다. 비록 부모의 얼굴은 볼 순 없지만 아이가 병에 걸리거나 너무 외로워할 때면 이따금 목소리로나마 아이를 위로해왔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무리 큰 고통을 당해도, 아무리 크게 비명을 질러도 부모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하루, 일주일, 일년 혹은 그 이상.
절망에 빠진 아이가 극단적인 선택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부모 혹은 부모와 자신의 관계, 지금 처한 상황의 원인과 의미 등을 아주 본질적인 부분부터 의심하고 다시 생각하지 않을까요?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스라엘 민족도 분명 이 침묵의 시대에 신과 인간에 대해, 구원에 대해 근본부터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 이 고민의 결과가 다양한 형태로 신약 성서의 기반이 되었다고 추측합니다.
그리고 저 막연하고 너무 오래된 아브라함과 이삭의 시대, 후일의 침묵의 시대만큼 실감이 나질 않는 유일신에 대한 신념을 고수하기로 마음 먹었던 히브리인들 역시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요셉 등이 당한 것과 비슷한 고통을 겪으며 약 1000년 후 창세기의 재료가 될 이야기와 사상을 마련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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