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 분노의 포도'를 섞은 그럴듯한 제목을 한번 지어보고 싶었습니다. 아마 제목 말고는 내용물은 부실할게 뻔하거든요.
특별히 독서문을 잘썼다거나 글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 쓰려하는 짤막한 감상문이니 더더욱 말입니다.
사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너무나 유명하지만 실상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난장이에 비유한 무슨 내용이겠거니 했을뿐이었습니다. 직접 읽고난뒤 그 난장이라는 단어에 함축된 뜻과 감정들은 조금 힘겨웠다라는 감상만 간신히 말할수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난해하기도 했고, 읽는게 버거워 중간에 자꾸만 책을 덮다 말기를 반복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아직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다면 철거당하는 집에서의 마지막 식사와 생계비를 생존비라 불러야 했던 영수의 시점이 있습니다. 전자는 그 슬픔을 담담하게 혹은 닥쳐올 슬픔이 없으리라 희망하는것처럼 느껴졌고 후자는 그 말의 의미를 어느정도 알고 있던 제 삶의 굴곡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에비해 '분노의 포도'는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면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난쏘공에 비해 아주 잘 읽혔습니다. 사실 난쏘공과 연관지어 읽으려던게 아닌 우연이 겹쳐 읽게 된것이기도 하고 말이죠.
분노의 포도는 난쏘공의 뜻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힘겨워 덮었다면, 분량이 많아 나눠 읽은편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분노의 포도에서 주목한 인물이 있다 하면 목사 '케이시'인듯 합니다. 목사의 직분이 어울리지 않다며 방황한 그는 신이 했어야 했을 일들을 스스로 해내려 하는 존재였습니다. 헌금이나 걷으러 다니며 자신의 종교를 믿지 않는다며 저주를 퍼붓는 자들과는 전혀 다른 진짜 종교인이었죠.
이 두가지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생각해본게 있다면 산업화에는 많은 필요치 않은 희생이 뒤따랐고, 기업들은 굶주림과 분노가 종이 한장 차이라는 소설속 문구를 무시하는 행태가 가슴이 아팠습니다.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주는것이 아닌, 그들의 폭동을 두려워해 무기와 보안관보를 고용하는 형태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은 굶주리지만, 그들의 재산인 짐승들은 풍족히 지낸다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기업이란 존재가 무조건적으로 '악'이라는 생각은 결단코 하지 않습니다. 기업의 존재가 없다면 현 사회의 구조는 생겨날수도 없으며 그로 인한 이점 조차도 누리지 못함을 알고 있기 떄문입니다.
제가 할수 있는것이라고는 이런 비극적인 사태가 완화되기를 바라고, 이런것을 단순히 목도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주지 받은것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노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