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버는 중국을 가산제 국가라고 규정했다.
왕이 집안재산처럼 국가를 운영하는게 가산제국가다
가산제국가는 왕이 자의적으로 통치하는 체제다
왕과 관리들의 관계는 수직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왕이 전국토의 주인이라는 왕토사상에
기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왕에 의존하는 관리들은 백성을 착취대상으로
여기고 착취했다. 자기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왕에게만 잘 보이면 되기 때문에 백성들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봉건제에서는 왕과 제후들간의 계약에 의해서
상하관계가 맺어지고 그 관계라는 것도 지극히
형식적이다. 왕은 제후들의 봉토를 마음대로
빼앗을 수 없다. 왕은 계약에 나와 있는 것만 제후에게
요구할 수 있었다.
가산제국가는 전통을 존중한다. 왕은 성인군자여야
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신하는 임금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유교이념은 가산제적 통치이데올로기로서
역할을 했다. 상호계약에 의해서
사회질서가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 복종과 공순을 강요하는 도덕에
의해서 사회질서가 규정됐다
중국을 막스베버는 엄청나게 까는데
나 역시 막스 베버의 생각에 동조하게 된다
한국 역시 중국과 크게 다르지않다고 봄
경험해본적 없는데 동료 사회학자들의 연구와 자기사고만을 통해 중국의 경제체제와 자본주의 발전의 한계를 통찰한 베버는 참 대단하다. 특히 가산제국가의 특징을 정확히 잡아내고 나아가서 전통(도덕)의 고착화/종교화의 가능성까지도 내다본건 정말 입이 벌어진다.
오 베버 뭔책임??
<지배의 사회학>임. 절판된지 오래된 책임..
사실 가산제는 조선이 더 왜곡된 가산젠데
역사가들이 베버이론 그대로 따르진 않을텐데. 당시에는 그때의 연구결과를 최대한 반영한 결론이겠지만서도 왕과 봉건제후의 관계가 중국의 황제 관료보다 자의성이 약했다는것은 맞지만 지배층과 농노의 관계는 고려하지 않은듯
유럽중세사회는 공동체중심이었음. 영주는 농노들을 개별적으로 지배한 것이 아니라 마을공동체의 촌장이나 마을대표를 상대해서 계약을 했음. 중세사회는 동일한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집단을 만들었다. 상인길드 수공업자길드 농촌공동체 등등 이런 공동체을 중신으로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것이 유럽중세다. 왕과 제후만 상호계약을 한 것이 아니다.
블로크의 봉건사회에서 영주도 장원의 관습을 존중했다고는 보았지만 명시적 형태의 계약을 맺었다고는 본적이 없음. 도시나 대학, 길드라면 모를까 장원의 농노 대표하고 영주와 계약을 체결한 사례가 있으면 좀 제시좀
진짜 조선시대 생각하면 우리가 백여년 만에 엄청 발전했구나하는걸 절감하게 됨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