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작품은 여러모로 고유하고 특질적인 부분도 있지만

어찌 보면 동시대에 공유하는 의식이랑 비슷한 부분도 다수 있다

특히 몸-여성-세계라는 연결고리나 현실을 뛰어넘는 환상의 이미지는

다른 후보였던 다와다 요코나 찬쉐도 상당히 잘 풀어내는 편이라

같이 읽으면 상당히 재밌다


한강 읽기 전에 묵은지부터 읽는 루트도 있지만(뭔가 비슷해보이지는 않지만 연관성이 없다고는 절대 하기 힘듦)

동시대 작품들을 더 훑고 싶을 때의 루트도 소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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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랑 김숨은 뭔가 결이 아주 비슷한 작가다. 그냥 이름 수가 같아서 그런가?

특히 시적 산문 꼽을 때 자주 묶이는 게 한강이랑 김숨이다

한강도 김숨도 일반적인 산문의 호흡이 아닌 자신만의 리듬을 형성해서 글을 쓰는데

이런 특유의 글빨이 둘의 매력으로 많이 꼽히는 부분이다

공유하는 의식도 어느 정도 비슷하다


하긴 신체-세계가 연결됐다는 의식과 하나의 건드림이 세계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건 요즘에 안 말하는 작가가 없을 듯

그리고 무엇보다 초기의 작품 특질에 반해서 갈수록 역사-증언으로 천착하려 하는 작가 의식의 발전이 거울상 같은 점이다...

아직 증언에 대한 김숨의 고민은 완결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완결될 수 없을지도, 되어서는 안될지도 모르고).

어쩌면 언젠가 김숨도 소년이 온다 같은 걸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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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배수아 소개하려 했는데 찾아보니까 뜬금없이 뉴스에 차?세대 작가라고 소개되어 있기에 썸네일도 가져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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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배수아는 차세대는 아니고 김숨처럼 동시대라는 말이 더 가까울 것이다 둘다 같은 연도인 1993년에 등단했기 때문이다

배수아와 한강을 읽다보면 의외로 두 사람이 90년대 문학의 시류를 자기식대로 받아들인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배수아는 파격적인 작가로 많이 인식되는데 애초에 90년대가 한국사에서 파격적인 것이 많이 등장한 시기였다

물론 그렇다고 배수아가 덜 파격적인 건 아니다 굳이 분류하면 한편에는 윤대녕 신경숙과 같은 작가들이 있었고, 한편에는 90년대를 자기 언어로 풀어내는 배수아 같은 이들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배수아에게도 현실-일상-환상-꿈이란 도식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


신기한 점은 배수아의 글은 90년대를 벗어날수록 더 파격적이라는 점이다

마치 90년대가 오히려 글을 가둬둔 껍데기였던 것처럼 배수아는 이전의 글쓰기를 부수면서 새로운 글쓰기 지평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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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 쿼터제는 채웠으니 나머지 둘은 앞에 언급한 두 사람, 다와다 요코와 찬쉐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다와다 요코는 한강보다 10년 일찍 태어난 일본-독일 소설가다

그러니까 나보코프나 콘래드처럼 다중언어를 채득해서 글을 쓰는 작가다

우리나라에 첫 소개된 작품인 <목욕탕>도 독일어로 쓰인 작품이며, 일어와 독어를 오가면서 글을 쓰는데 독일에서도 꽤나 인정받는 느낌인듯 하다


이 다중언어 자체가 이미 다와다 요코의 글쓰기 의식에 깊이 침잠해있는데, 요코는 언어-몸-세계의 세 가지 문제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언어는 곧 몸이고 몸은 곧 언어다. 요코의 문학이 세계를 투과하는데 있어서는 이 몸으로서의 언어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베케트의 글쓰기를 평할 때 그가 불어를 택함으로써 모국어를 구사할 때는 드러나지 않는 낯섦의 감각이 드러난다는 지점이 주로 지적된다. 요코의 글쓰기도 비슷하다. 요코는 모어가 아닌 몸을 택함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의 낯선 감각들을 체득한다. 존재 자체가 이미 이런 낯섦으로 가득한 것이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글을 지배하는 것은 현실적인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딘가 직조된듯한 우화적인 이미지다. 이 이미지들이 얽히면서 요코의 낯선 세계는 완성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서 읽고나면 뭔소린지 모르겠는 게 대부분이다. 다만 낯선 감각으로 빚은 강렬한 이미지는 맛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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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찬쉔데 솔직히 지금 읽다가 힘들어서 던진 상태라 뭐라 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찬쉐는 한강 및 앞서 소개한 작가들 중에서 '허구'라는 것을 가장 잘 다루는 작가다

찬쉐의 글에서 내보여지는 이미지들은 그거 자체로 이미 몽환적인 하나의 세계다. 여기에는 찬쉐가 몇 번이나 허구적으로 비꼰 각양각색의 내재율이 존재하며 그것으로 찬쉐는 자신만의 '찬쉐 월드'를 가감없이 풀어낸다.


다른 말로 하면 솔직히 읽다보면 뭔소린지 모르겠다

찬쉐가 나보코프류 작가들처럼 독자에게 일종의 게임을 제시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글 자체가 자기 역량대로 허구와 현실과 이야기, 테마, 주제의식, 이미지들이 구분선 없이 한데 율동하는 하나의 테마파크 수준이다.

이 율동하는 이미지에서 핵심 줄기를 따라가기가 어렵다(아니면 그거조차 그냥 허구일지 모른다). 이미 글 자체에서 시점이나 중점되는 서사들이 휙휙 전환되곤 하기 때문이다. 다만 세계 내부에서 변주를 통해 형성되고 제시되는 어떤 요소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처럼 끝없는 이미지의 변주로 이루어진 찬쉐 파크에서는 길을 잃기 쉽다. 그런데 놀랍게도 찬쉐 글이 마냥 이 이미지만 제시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역사적 알레고리나 현실의 맥락을 알게 모르게 등장시킨다는 점이다. 문제는 그 기호들을 파악하는 과정이 그리 녹록치가 않다...


그래도 당연히 아주 훌륭한 작가인데다가 최근에 번역도 많이 되었으니 하나쯤 찍먹해봐도 괜찮을 것이고, 여기를 새로운 기점으로 삼아 다른 중국 아방가르드로 넘어가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 되겠다.


이 정도면 한강라이크? 작가의 마무리로 적절하지 않을까...




그외에도 한강과 비슷한 주제의식을 공유하며 나름의 글쓰기를 강구하는 여러 작가들이 산재해있으니 한강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다양한 독서를 시도해본다면 지금 시류를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사실 한강라이크로 시작했지만 톺아보니 한강만의 힘을 가진 작가는 한강뿐인 게 맞는 것 같기도

나도 던져둔 찬쉐랑 미리 빌린 희랍어 시간이나 마저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