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고서 위 제목과 같이 요약했었다. 주인공은 인간의 폭력성을 혐오하는 것 그 이상으로 자기 자신도 인간이라서 폭력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스스로 혐오하면서 약육강식적 본능과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그 최소한의 본능도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주인공은 가부장제에서 억압을 당하면서 포식당하는 입장에 있었던 한 여성이었고 동시에 살기 위해 육식 동물을 별 의식없이 섭취하고 환경을 파괴하며 동물들의 터전을 잃게 해온 인간 종족의 한 일원이었다. 이 사실은 폭력의 피해자인 그녀가 동시에 타 생명체에 대한 가해자이면서 인간에 의해 희생되는 타 생명체들에게 공감하게 된 배경을 설명해준다. 자신에게 큰 잘못을 했던 가족들의 폭력성이 자기 자신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동물들을 통해서 발견한 주인공은 타협하기 보다는 폭력성을 극도로 거부하면서 자신과 나무를 동일시하기에 이른다.
가정 내 폭력에 의해 상처받은 주인공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실질적인 노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내면이 무너졌다. 사실 이를 극복하려면 형부와 싸우거나 공론화하는 등의 적극적인 방향으로 기존 가정 내 위계질서를 타파해야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폭력성을 제거하는 방향 즉 자신을 죽여가는 방향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는 강요된 선택이다. 여성은 가정 내의 화합과 화목을 위해서 큰 목소를 내지 말아야하며 가부장의 질서에 순응해야하며 심지어 강간을 당했어도 가족 내 평화를 위해서 침묵하고 이를 알게 된 다른 가족은 방관함으로써 그 문제에 동조해야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누구도 가정 내 최약자인 그녀의 편을 들어줄 리가 없다. 이해받지 못하며 공감받지 못하는 그녀가 동물들에게 공감하면서 죄책감과 자기혐오감을 느끼면서 병들어갔다. 그녀가 자신과 또한 자신과 닮은 약한 생명체들과 연대하며 폭력성에서 해방될 수 있는 해결책은 그녀가 나무가 되는 것이었다.
에밀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는 얘기를 했다. 자살자가 속한 한 가족과 한 국가의 입장에서는 일원의 자살에 대해서 "민폐"라고 비난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즉 더 나아가서 자살은 타인에게 민폐를 끼침으로써 타인을 공격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주인공이 육식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서 가족들은 이를 존중하기 보다는 자신들이 육식을 아무리 주인공에게 강요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 분노하며 그 자체로 공격당했다고 느낀다. 그녀는 자신의 폭력성을 거세하며 자신을 죽여가던 과정에서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억압해온 가족들을 본의 아니게 완곡하게 공격한 것이다. 가족들이 강요라는 폭력을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공격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채식주의자는 명작이다. 섬세한 심리 묘사와 인간 세계에서 사슬의 최약자가 병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타인을 향한 폭력성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그리고 폭력성이 표현되는 여러가지 다양한 방식과 그 역동을 잘 묘사한 탁월한 작품이었다. 혹자는 가정내 성폭력 장면을 꼭 담아야했냐고 반문하지만, 이 장치는 꼭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성폭력 자체도 주인공에 충격적인 일이지만, 주인공의 언니의 폭력성은 그 성폭력을 방관함으로 표출되었는데 이는 가족에 대한 주인공의 인간적 신뢰와 기대가 무너진 이유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기 편이 없다는 것에서 무력함을 느끼고 정신적으로 무너지기에 충분한 사건이었으며 또한 왜 주인공이 현실에 저항하기 보다는 자신의 폭력성을 제거하려고 인간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며 나무가 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는지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동물에게 내재한 폭력성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뻔한 얘기지만 자신의 폭력성이 타인과 세상에 위해가 되지 않도록 이를 조절해야 하는 의무가 인간에게 존재한다.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의도했던 것은 인간에게 내재한 폭력성과 그 폭력성이 직간접적으로 어떻게 표출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줌으로써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ps.
한강 작가님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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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씨통검으로 채식주의자 검색하다 좋은 글 잘 읽었음 - dc App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