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을 듣고 아 데뷔작을 안읽어봤구나, 데뷔작이 뭐였지?? 하고 허겁지겁 읽어봤습니다.
읽고 대충 느낀 점은, 아 이미 첫 작품부터 자신의 스타일과 생각을 밀고 나간 작가구나 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작가도 그렇겠지만요

1. 폭력성에 대한 거부
주인공은 아버지의 자녀살해 후 자살시도의 피해자로서, 존속으로부터의 폭력성에 대한 트라우마로
결벽증과 구토로 표현되는 신경증적 증세를 갖고 있습니다.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거부가 체화되어 표출되는 현상'은
이후 작품에도 반복되어 표현되는데요
폭력성과 신체을 향하여 작가의 시선이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봉준호 감독이 첫 작품 '플란다스의 개'에서 부터 지하라는 공간에서부터 시작되는
수직적 층위를 통해 사회를 읽어내는 반복변주가 결국 '기생충'까지 이어지는 것과 같이
작가의 초기 작품부터 시선은 폭력성과 몸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네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잊고 있었던 메를로-퐁티와 들뢰즈를 다시 읽어봐야 겠습니다.

2. 특유의 서정성
작가의 문장 자체가 투명하고 유려하다고도 평가가 수상 이후에 많았잖아요?
왜 독자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서정문학의 문장들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사성과 서정성 경계가 굉장히 옅음을 볼 수 있습니다.
감정의 개인적 느낌, 순간적인 변화,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문장들이
지속적으로 작품에 등장합니다.
사건 역시도 지속적으로 장면을 바꾸어가며 분절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요.
굳이 사건의 흐름이나 주제의식의 강조를 힘들여 서술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는 최신 현대문학의 경향성이기도 하지만 이미 첫 작품을 쓴 94년도에 작가는 이를 완성했고
그 서정성의 수준도 굉장히 높다고 생각됩니다.

3. 최신의 문학이다.
데뷔작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물론 좋은 90년대 문학들도 많지만
2020년대 이후 이상문학상 수상작들과 유사한 최근 트렌드의 느낌이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한림원이 왜 한강작가에게 주목하였을까를 생각하면
최근 현대문학과 현대문화시류의 방향인 서사와 서정의 경계 해체를 잘 구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계의 해체는 현대 예술의 첨단입니다.
최근 인스타를 비롯한 유행하는 사진 경향성을 보면
정석적 구도를 따르지 않고 분절되고 피사체의 일부가 강조되며, 순간적인 감정을 담은 사진들이 나타납니다.
영화라는 장르가 쇠퇴하고, 숏츠가 유행하고 있죠
이런 세태에 대한 호오는 차치하고
분명히 지금 문화와 사람들의 감정선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말하는 경계의 해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강의 작품은 그 경계의 해체와 분절성 안에서도 분명한 주제의식과 인간에 대한 주관이 있습니다.
특히 '채식주의자'가 3편의 중편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형성하는 것처럼요.

그렇다고 단편적이고 격정적인 감정들만 드러내고,
주제의식이나 삶에 대한 고찰이 부재하며 문장들이 표류하는 작품들과 달리
밀도있는 심리묘사와 특유의 서정성을 통한 의식의 확장
분명한 주관과 주제를 향해 얽어가는 글쓰기 특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현대문학의 첨단에 서 있는 글쓰기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 한국문학 작가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거대서사의 해체와 주관적 경험의 강조
그렇지만 최신작가들이 보여주지 못한, 공유될 수 있는 경험과 보편타당한 인간에 대한 의식
그 두 가지의 모두를 써낸 작품들을 작가가 써냈기 때문에 수상했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찬사만 한 것 같은데
물론 데뷔 단편들에서는 지금의 작품과 같은 깊은 주제의식은 드러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수의 사랑' 마지막에서 주인공이 도망치듯 도시에서 빠져나와 기차에서 내려 승강장에서 서성이고 있는 것처럼
작가가 찾아나선 '자흔'과 같은 존재. 즉, 상실과 사랑 그리고 근원에 대한 탐험이 '여수의 사랑'에서부터 시작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들이 겪은 혹독했던 무더위의 1994년이 지나고 작품이 세상에 나온 것 처럼
정확히 30년 후 2024년 엄청난 무더위가 지나고 수상을 했다는 것이, 참으로 공교롭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