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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방에서 불편한 팔을 가지고 상이군인연금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빅토르 바통. 조건만 보면 전쟁을 겪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가슴의 번쩍이는 훈장과도 같이 주인공과 독자의 눈을 반짝이게 하는 고통과 비극을 다룰 것 같지만 <나의 친구들>은 그렇게 진행되진 않습니다.


이 소설은 결코 대단한 서사가 있는 소설은 아닙니다. 주인공은 단편 식으로 구성된 각 장의 상대방을 만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지만, 결국 사랑을 얻지 못하고 이길 수 없는 고독을 곱씹으며 외롭다고 울부짖는 심리를 묘사한 소설입니다.


바통의 취미는 대단히 특이한데요. 정상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즐기지 않는, 아니 즐기고 싶어도 즐길 수 없는 독특한 취미입니다. 그 취미란 무슨 일이 벌어질까 거리를 서성거리며 거닐기, 센 강 다리에서 우는 척 해서 무슨 일 있냐고 물어오는 관심을 갈구하기!


그의 욕망은 강렬하지만 단순하면서도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는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사랑받기. 운 좋게도 그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은인들을 만납니다. 그럼 그런 은인들을 소중히 여기고 잘 지내면 될 것인데 주인공은 그러질 못합니다.


그의 사랑과 관계를 방해하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자기 자신입니다. 그는 사랑을 호소하는 한편, 무진장, 무진장 불안해합니다. 깨진 독에 물 붓기 수준으로요. 내 진심은 이러한데, 상대가 내 진심을 곡해해서 받아들이면 어쩌지? 하며 불안해하는 한편, 너무 조급하게 스스로 관계를 앞서 가기도 하며, 그런 불안과의 싸움에서 끝내 패배해 스스로 관계를 매듭짓기도 합니다.


친구(였던 것)의 여자친구를 유혹하는가 하면, 자신을 취직시켜 준 부유한 사업가의 솜털이 가시지도 않은 어린 딸에게 집적거리기도 합니다. 이런 빌어먹을 여미새 같으니..


그렇기에 주인공이 파국 끝에 질질 짜는 것과 대비되게도 상황은 꽤나 코믹합니다. 이런 서툰 타입의 인물은 우리 주변에도 항상 꼭 있죠. 이들은 저돌적으로 돌진하지만 늘 자기 혼자 앞서가기 때문에 퇴짜를 맞죠. 그리고 저는 그 관찰자로 그들을 자주 비웃었습니다.


낄낄 최XX 병신새끼. 낄낄 바통 이 등신새끼 낄낄. 저는 덜 떨어진 바통을 보면서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습니다. 그건 분명 이 희화화된 인물에 대한 조소와 동시에 나는 저러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에서 말입니다.


물론 바통의 불안은 조금 기괴하긴 합니다. 관계 사이에서 혼자 망상으로 소설의 나래를 펼치다가 파멸로 고꾸라지는 사람들요. 그들은 좋게 유지할 수 있는 관계도 망치고, 스스로 엄청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들은 일평생 안정에 이르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오! 주여 이 불쌍한 자들에게 평안을 주시옵소서. 난 이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구먼...


오잉, 불현듯 제 모습을 떠올립니다. 전 바통에게서 얼마나 멀리 동떨어져 있는 사람일까요? 퇴근길에 누구를 만나서 같이 갈 수 있을까 플랫폼을 샅샅이 수색하고, 남의 미움을 산 거 같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공감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의 배설들을 독서 갤러리에 남기고 있습니다. 사실은 인간들에게서 배제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가득 안고 말입니다.


알고 보니 바통의 바통을 이어 받아 제가 그러는 겁니다. 겨드랑이와 등이 조금 서늘해지고 축축해지려고 합니다. 아 이런 시발... 나도 등신이었잖아?? 웃고 있을 때가 아니네...


그러나 다시금 생각해보면 관계 속의 불안을 느끼는 바통이 과연 특이한 사람일까요? 바통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라면 모두가 관계의 불안을 안고 삽니다.


불안을 다시 한 번 들여다봅니다. 인간은 누구든 자기가 사랑받길 원하지 미움받길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설령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고 전투 무장을 하며 되새기는 닳고 닳은 사회인이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들 역시 필요에 따라 선택과 집중을 할 뿐이지 사랑을 갈구할 대상이 필요한 건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할까 하는 불안 역시 마찬가지로요. 사랑이 필수적인 삶의 요소라면 불안 역시 필연적으로 사랑에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요? 사랑과 불안 그것은 어쩌면 커플들이 나눠 끼는 커플 반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명상을 하면서도, 임시방편으로 관계의 불안을 떨쳐버리긴 하면서도 사그라든 관계의 불안이 자꾸 맘 속에 피어나는 걸 원천봉쇄하진 못합니다.


내일 뭘 입어야 잘 보일 수 있을까 하는 마음 속에 불안이 축 쳐진 옷의 어깨 죽지 안감에 파리 끈끈이처럼 끈적하게 불안이 눌러 붙어 있기도 하고, 내일 이거 주면 좋아 하려나 포장이 된 조그만 간식 속에 불안이 끈적끈적하게 붙어있기도 합니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을까 두근거리기도 하면서 잠 못 이루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이 소설은 분명 인간관계 속에 보이지 않게 들러붙은 불안의 심리를 탁월하게 다룬 수작일 겁니다. 그것도 바통이란 어리숙한 인물을 통해 유쾌하게 말이죠. 하지만 그 유쾌함 속에 끈적거리는 무언가가 자꾸 느껴져서 기분이 껄적지근 했습니다. 제 안에 있는 불안이 자꾸 비춰보여서요.


그 불안은 분명 인간을 질겁하게 하는 즐겁지 못한 경험이지만 결코 떨칠 수 없는 영겁의 진리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