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이제 겨우 1부인데, 진이 다 빠짐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것들도 많음
그래도 겨우 거머쥔 한 줌만으로도 얻어가는 바가 너무, 너무 많음
인간은 본질적으로 귀납적 사고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 끊임없이 패턴과 인과관계를 찾아내려 함
안정성과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초월적인 신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함
대신 과학, 기술, 정치 체제 등 세속적 권력 구조가 들어서지만, 이들 역시 불완전하고 모호함
불확실성과 비결정성에 틈새로 불안과 편집증이 발생하고, 인간은 더더욱 과학, 기술, 정치에 기댐
특히 과학은 이전의 종교나 형이상학적 체계를 대체하는 새로운 신앙처럼 기능함
그러나 이는 불확실성과 비결정성을 밝혀낸 장본인이 바로 과학이라는 모순을 드러냄
그 결과, 과학과 과학에 대한 맹목적 신앙이 뒤엉키며, 현실과 믿음의 괴리를 증폭시킴
이러한 면모가 두드러지는 장치는 바로 V-2 로켓임
'포물선'으로 상징되는, 정밀한 계산에 기반한 로켓이 '포아송 분포'로 대변되는 무작위적 공포의 도구가 된다는 아이러니
등장인물들은 '설명가능한 세계'라는 근대적 이성을 비웃는 확률론적 현실에 내던져진 채, 전쟁의 손아귀 속에서 발버둥침
이러한 상황에서 음모론이 자라남
음모론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총체적' 의미망을 제공하며, 불안을 해소하는 역할을 수행함
사람들은 혼란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에 직면하고, 그 배후에 감추어진 설계자가 존재한다고 믿음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정당화하려 함
'그들'로 대표되는 의문의 존재들, 주인공을 둘러싼 비밀기관들의 의심스러운 행태, 그가 어린 시절 받은 실험들...
세계의 혼란 배후에는 모든 것을 움켜쥔 음모가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짐
역설적으로, 음모론 속에서 사람들은 안식에 취하는 대신 악순환에 빠짐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를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살아야만 하고, 이런 두려움을 가시화하는(것처럼 보이는) 사태가 벌어지면,
그들이 지닌 두려움은 더 큰 두려움을, 불안을 더 큰 불안을 낳으며 피해망상적 체계의 되먹임에 기여함
중무의 1부는 온갖 사건사고들과 혼란을 종횡무진한 끝에 로저와 제시카 커플의 일상을 비추지만, 그 일상은 이미 불안에 잠식된 일상임
고양이들이 방에서 장난을 치고, 사랑하는 여자는 코를 풀며, 그녀의 자매들은 투닥거리는, 지극히 평범하고 조금은 순진한 일상이지만...
사랑하는 여인은 감기에 걸린 것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병에 감염되었다는 진단
로켓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할 방법도 없다는 것을 끝내 인정한다는 무력감
설령 그녀가 목숨을 부지한다 쳐도 남편이 찾아와 그녀를 데려갈 것이라는 분노
가정과 평화라는 합리적인 구조 속에서 그녀는 가정의 관료가 될거라는 씁쓸함
요컨대 다가올 상실을 지켜보는 서글픔이 로저를 젖어들게 함
49호 품목의 경매와 V.에서도 그러했듯, 아마 핀천은 2~4부를 거쳐도 결코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을 거라 생각함
이번 중무에서는 신비주의적 요소, 특히 카발라의 개념들을 언급하는 등 좀 노골적이라는 인상
파편들을 모아다가 배치하고 중첩시키며, 현실의 복잡성을 끊임없이 암시하는 방식을 택하겠지
그 파편들 속에서 총체성을 찾으려 해도, 그것이 완전히 닫히거나 온전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총체성의 결여가 더 명백히 드러날거고
그런 의미에서 작중 그웬디히의 장광설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게 들림
"아, 그 위협이 이렇다 저렇다 할 특정한 형태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정치적인 것도, 아니야. 만약 도시의 피해망상이 꿈을 꾼다면 그건 우리는 접근할 수 없는 꿈이야. 아마도 도-시는 또 다른 적대-적 도시의 꿈을 꿈꿨을지도, 강 하구를 침략하기 위해 바다 위를 건너 떠-가는 ⋯⋯ 아니면 어둠의 물결을 꿈꾸거나 ⋯⋯ 불의 물결을 ⋯⋯. 어쩌면 엄청나게 고-요한 어머니 대-륙에 다시 삼켜지는 꿈을 꾸었을지도 모르지?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도시의 꿈이라 ⋯. 그러나 만약 도-시가 자라나는 종양이라면 어쩌지? 수 세기에 거쳐, 늘 변화하며, 가능한 최악의 비밀스런 공포의 형상과 정확히 일치하도록 자라나고 있는 것이라면? 이 누더기 차림의 폰들, 불명예스러운 비-숍과 비겁한 나이트, 우리가 단죄한 모든 것들, 우리가 돌이킬 수 없이 잃어버린 것들이 여기에 버려져, 몸을 숨길 것 하나 없이 기다-리고 있어. 모두 알고 있어. 그건 부정하지 마 ─ 알고 있어, 포인츠맨!"
감상만 읽어도 돌아버릴 것 같네
질서를 바라는 개개인이 엉성하게 제안된 음모론이라는 유사 질서를 가지고 어떻게든 무작위성에 맞서보려고 하지만 갈피를 잡을 수 없어서 악다구니로 어그러지는 모습이 그려져서 흥미롭네요
과잉된 분위기지만 서글픔이 느껴지는... 그런 책이라 생각함
귀납적 요소들을 조합해 파악하려는 인간의 세계 이해 방식, 그것을 패퇴시키는 현실의 방대함과 복잡성, 이론과 구별 불가능한 음모론들, 신격화된 그러나 사실 무력하고 불완전한 과학... 이런 포스트모더니즘 유파의 흐름을 곰브로비치 코스모스가 거의 다 선취했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핀천은 코스모스의 현대 미국적 리얼리즘 삽화본이라 생각된단 말이지. 코스모스가 개인-미시적이라면 중무는 사회-거시적인. 근데 사실 핀천은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어. 번역물은 거의 전부 품질 엉망이란 소리가 따라붙고, 그렇다고 영어로 읽을 능력도 안 됨. 이악물고 번역판-원문 대조해가며 읽기엔 위에 적었듯 핀천이 새로운 인식 같은 걸 주지는 않으리란 생각도 있고.
국내 번역 여건상 믿을 만한 평을 찾기도 힘들단 말이지.. 이런 조건에도 핀천을 읽어야 할까? 그 정도로 가치 있고 위대한 작가인가? 솔직히 미국 한국 인터넷에서 추종하듯 찬양하는 건 별로 신용이 안 가거든. 당연히 잘 쓴 소설을 읽는 건 그 자체로 즐겁겠지만, 그 이상으로 위대한 소설은 새로운 인식을 주는데, 핀천이 위에 적은 그 인식을 반복해서 표현하는 것 이상으로 새로운 인식을 전개했을까 살펴보면 그런 얘긴 안 보이고. 두서없는 얘기지. 읽어서 좋을지 어떨지는 나도 모르는 건데 꼭 해답을 달라고 쓴 건 아님.
로스나 벨로우면 몰라도 핀천에게 리얼리즘 삽화본이란 표현이 너무 안맞는데.? 초현실적 요소, 의식의 흐름, 언어유희 등 차라리 율리시스-조이스에 가까움 애초에 코스모스 나도 즐겁게 읽었고 중무랑 공명하는 지점도 많지만 중무가 곰브로비치의 삽화본이란 생각은 별로 안드네 코스모스 이전에 핀천이 쓴 V.도 있기도 하고 근데 뭐 나도 영역본 곁에 끼고 대조해가며 읽는 처지기도 하고, 그런 의구심이 든다면 굳이 고생해가며 읽을 필욘 없지
ㅇㅇ 난 하마평 참고해서 조금 깔짝거린 게 전부니까 핀천에 대해선 잘 몰라. 암튼 다 읽으면 완독 감상 올려줬으면 좋겠다. 감상도 잘 정리 안 될 책 같긴 한데 이런 식으로 나열만 해 줘도 꽤 갈피가 잡힐 듯
서평만 봐도 핀천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가가 아니라는 게 보이는데 이해하기 쉽게 서평 써줘서 ㄱㅅ - dc App
좆같이 재밌겠다
마침 중무 초반부 읽고 있던 참인데, 반가운 글이네... 전작 49호 V. 느리게 배우는 사람 읽어 봤지만, 중무는 초반부만 읽어도 확실히 궤를 달리하는 독특한 구성임... 특히 푸아송 분포로 삶의 확률성을 부여해 미래의 비결정성을 박식하게 표현한 대목은 당시 근대성을 이루는 중추를 제대로 가격한 셈이니...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