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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감상으로 논쟁을 하고 싶진 않은 글이라 혹시라도 불나면 자삭함
몇 달 전에 마크 릴라의 <난파된 정신>에서 <복종>에 대한 평을 보며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던 책이다. 사실 예전에 <복종>을 처음 읽었을 때는 그렇게까지 감흥이 오지 않았다. 화제작이 될 만했고, 딱 그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좀 더 나쁘게 말하면, '지식인'의 몽정 같은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계의 기라성 같은 학자로 교수 자리를 꿰찼지만 그 이상은 없고, 별로 감흥은 없이 먹고 살만한 돈과 해마다 바뀌는 젊은 여자를 데리고 이런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운 좋게 정권을 얻은 이슬람 정권 속에서 잠시 당황스러워하다가, 영문 모르게 프랑스 인문학을 여전히 존중하는 이슬람 정권 아래에서 무한히 쏟아지는 오일 머니와 이슬람의 일부다처제의 행복에 만족해 별 생각없이 자족적인 행복을 찾는 이야기를 보며 할 생각이 이 이상으론 없을 테니까.
반면 마크 릴라의 평은 읽을 당시에는 솔직히 그리 주목하지 않았던 위스망스에 집중했다. 자신들을 현대에 다시 그 작가로서 살고 있는 이들이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교수의 말처럼, 프랑수아의 삶과 문제의식은 위스망스가 보여준 것과 상당히 흡사하다. 삶의 쾌락에만 집중하지만 거기서 공허함을 느끼다가 종교에서 답을 찾으려던 프랑수아는, 탐미주의자 위스망스가 죽기 얼마 전에 가톨릭으로 개종해 개종 3부작을 쓰던 것과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차이가 있다면 위스망스가 가톨릭에서 종교의 신비로운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현대의 가톨릭은 프랑수아를 품어줄 수 없었다는 점이다. 검은 마돈나, 수도원을 차례로 찾았던 프랑수아는 무언가 종교적인 경험을 하고자 했지만, 결국 실패한다. 가톨릭은 프랑스가 그렇듯 너무나 현대화되어 황폐해졌고, 이를 아직 유지하고 있는 이슬람을 통해서야 겨우 프랑수아와 프랑스는 안정을 되찾는다.
덕분에 <복종>은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과 대중주의가 기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소설로 나온다. 실제 프랑스 정치를 바탕으로 설정한 것이겠지만, 큰 틀에서는 좌1파에 속하는 중도좌2파/중도우파가 둘 다 이민자에 우호적이고 프랑스의 유럽 통합을 지지하는 반면, 극우파는 프랑스라는 별도의 국가를 유지하며 현재의 체계로부터 그 어떤 이득도 받지 못해 이를 망치는 데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는 이들의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보다 '세련된' 이슬람박애당이 대항마로 등장한다. 어느 쪽도 자신을 대변해주지 않아 극우파로 몰리는 사람들의 득세를 막기 위해 프랑스의 중간층은 늘 그렇듯 남은 좌3파에 힘을 몰아주는데, 유럽 연합 및 자본주의 제도에는 불만이 없되 종교 및 교육 측면에서 노리는 바가 있는 이슬람박애당은 체제의 현상유지를 위해 타협한 중도좌4파/중도우파 세력과 연립정부 합의를 이루는 데에 성공한다.
여기에서 잠시 유럽의 전통적인 몰락 서사가 잠시 멈추고 대중주의적인 반-이슬람/유럽화 세계관이 빛을 발하는데, 이슬람박애당의 수장은 프랑스와 유럽연합 사이의 연결고리를 유지하되, 범-이슬람주의적인 협력을 통해 유럽과 이슬람 세력을 연결시키며 유럽연합의 주도권을 점차 잡아간다. 프랑스가 겪고 있는 내전, 인종 갈등, 악화된 치안, 불안한 개인 등의 문제는 온 유럽의 문제에 가깝고, 프랑스에서 제시한 해결책은 다른 국가에서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며 중도파에 염증을 낸 사람들의 지지를 받은 이슬람 정권과 새로이 유럽연합에 속할 이슬람 국가들이 서로 손을 잡는다. 68혁명 이후 시작된 개인의 강조와 독립된 여성성은 빠르게 모습을 감추고, 그 밖의 큰 틀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세속 이슬람 정권 속에서 프랑수아는 이것이 소시민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그리 나쁘지 않다는 깨달음과 함께 결국 대학 교수로 복귀하기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한다.
이렇게 꽤나 당혹스러운 세계관과 성적인 것에만 집착하는 프랑수아의 모습이 참 너무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글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문득 그게 당시 탐미주의를 보던 시선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스망스가 이름도 잘 모르겠는 온갖 감탄스러운 그림과 매음굴의 창녀들과의 만남을 계속 묘사하던 게 프랑수아의 시선과 과연 큰 차이가 있을까? 아마 그래서 릴라는 <복종>을 전통적인 프랑스 문학의 문법에서 읽은 듯한데, 그건 참 묘한 일이다. 릴라가 <분별없는 열정>을 비롯한 여러 정치철학 저술에서 보여준 태도는 '분별없는 열정' 자체보다는 열정을 반대하는 냉담한 현대적인 태도에 가까웠던 탓이다. 물론, 레오 스트라우스를 다루는 글처럼 사상의 근본이 빈약하기 짝이 없는 미국을 조소할 때는 <복종> 서평처럼 매우 유럽적인 태도였지만. 그리고 이를 생각해보면 사실 이슬람권에서 <복종>을 그리 좋아할 수는 없겠거니 싶기도 하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서구적인 관점에서의 글이니까.
따지고 보면 우엘벡은 <투쟁 영역의 확장>부터 지금까지 대체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고 있는 편이다. 68혁명이 촉발한 현대 자유주의의 파괴적인 영향력에서 탈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질문은 나왔지만 우엘벡의 어떤 글도 그에 대한 해답을 제대로 주진 못했다. <복종>은 비교적 해답을 제시하는 글이라 할 수 있는데, 세속화 테제부터가 문제였다는 뜻이다. 가부장제 하에서 돌아가는 보편적인 사회 구조와 이를 응집시켜주는 집단의식 및 종교 의식이 희박해지면 희박해질수록 우리는 불필요한 욕망에 끌려다니는 무기력하고 추한 개인이 될 뿐이다. 프랑수아의 성적 집착은 작중 묘사와는 달리 프랑스의 '이슬람화'가 진행될 수록 오히려 희석되고 미약해지며,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적인 입장의 반대편에 파편화된 개인과 강요된 성적 욕망을 놓고자 한다. (비록 <복종> 초반에서 프랑수아가 마초적이라고 말하는 대사에서 대놓고 말하듯, 그런 말을 들으면 이미 주체적으로 되어버린 여자인 나는 무슨 말을 해야겠냐고 하겠지만)
덕분에 이슬람은 이런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는 프랑스, 혹은 유럽에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온다. 본디 우엘벡은 이슬람의 역할을 가톨릭으로 맡게 하려 계획했었다고 하지만, 가톨릭은 이미 그 신비를 너무 잃어버렸다. 대신 가톨릭의 자리를 꿰어찬 이슬람은 마치 포르노에서 흑인 남성이 나오는 것과 같은 역할을 맡는다. 본질을 잃어버린 우리를 대신 교육해주며 원래의 영광을 되찾게 해줄, 정말로 중요한 게 뭔지 아는 사람. 이슬람 세력이 득세하기 전부터 이미 프랑스는 매일 같이 폭동이 일어나고 있었고, 프랑수아를 비롯한 소수의 수혜자를 제외하고 불평등은 점점 거대해지며 제도 바깥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지만, 자유주의와 누적된 지식은 이를 해결할 생각도 없다. 대신 더욱 더 프랑스를 무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보편적인' 것으로 넓혀나가며 돈을 벌어들일 생각 뿐이니까. 이슬람박애당이 제시하는 비전은 그것과 반대되는 경제 및 사회의 개별화, 작은 정부를 지향하되 가정 회복을 최우선시하는 태도인데, 프랑수아는 자신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따스한 가정을 늘 염원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원히 아이처럼 사는 여러 첩과 함께? 솔직히 프랑수아가 정말로 그걸 원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우엘벡이 <복종>을 통해서 뭘 말하고 싶은지는 알겠고, 뭐가 문제라고 생각하는지도 알겠지만, 그 해결책을 진심으로 제시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어쩌면 온건한 이슬람화 같은 방식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하고 반어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수준이라고 할까? 대신 확실하게 느껴지는 건, 이렇게라도 이 문제를 얼굴에 들이밀어도 차별 문제를 화두로 꺼내며 이것이 그보단 덜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감 쪽이지 않나 싶다. 우엘벡은 정말 현대와 자유주의를 싫어하는 사람이고, 자기가 그래야 할 이유를 알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나도 굳이 따지자면 그쪽에 더 가깝겠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일단 위스망스를 한 번 제대로 읽어보고 내 생각이 맞았는지 좀 알고 싶다.
라도 카운터가 사라지고 좌1파 카운터가 생겼구나
암튼 거시적으로 보면 자유는 불확실성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무작위적인 붕괴와 확산으로 사회를 이끄는 그런 게 있지 않나 싶은데 또 그 거시적인 틀 자체에 대한 가치판단은 사회를 이루는 개인이 하고, 그 개인 중 일부는 항상 자유라는 걸 더 위에 두기 때문에 사회는 항상 불안정하게 오락가락 하는 존재가 아닌가 싶네요
자살은 하면 안 된다 -> 왜 하면 안됨? 같은 구도는 대화라기보다는 양쪽이 삶에 매기는 가치의 대비에 더 가깝고, 이러한 사적인 대비가 공적인 영역으로 투영된 게 사상적 대립의 지분을 어느정도 차지하지 않나 싶은데 음
우엘벡이 보는 프랑스 사회나 그의 접근과 별개로 소르본 대학을 자본이 (겉보기엔 다른 방식을 취하면서) 사는건 가까운 미래에 가능할지도 모름. 아직은 상징성이 있으니까 꺼려지겠지만 프랑스 공립대학들 상황이 열악함.
현대 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세속 이슬람 정부가 정말 '대안'인지 알 수 없긴 함. 본문에서도 프랑수아가 정말 그걸 원했을까, 하고 있듯이, 솔직히 이슬람주의도 세속주의와 결합하는 순간 또다른 근대 혁명이 될 뿐임(이란 혁명이, 그에 따르는 많은 논란과 신정화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근대 혁명이었듯이).
그러니까 사실 세속화까지 문제를 소급해내는 접근법은... SF 소설에서 괴악하게 뒤틀린 방식으로 역사의 종언을 다룰 때나 의미 있지 않나 싶다
cuckold sissy 유럽이라
내 생각엔 프랑수아가 알제리 출신 창녀들이랑 쓰리썸 조진 게 개종 터닝포인트였다고 본다 ㅋㅋ
포르노에서 흑인 남성이 나오면 "대신 교육해준다"고는 생각해도 "원래의 영광을 되찾아준다"고 생각하진 않을거임.
답은 유교 대동사회다!!! - dc App
자유주의유럽과 이슬람사회를 생태학적으로 풀어낸게 참 인상깊었는데, 재생산력이 높은 이슬람사회가 자연에서 재생산력이 높은 군이 우세를 점하는거로 해석하는게 참 우엘벡답다 싶었음 ㅋㅋ - dc App
그거 음모론적으로도 꽤나 진지하게도 자주 나오는 이야기라 아마 누구였더라 엠마뉘엘 토드 같은 양반이 얘기하는 거랑 비슷하지 않나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슬람권에서도 무깟디마가 있을 정도로 유서깊긴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