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도 유물론자라고 하고 검색도 다 유물론자라고 하는데
아무리봐도 마르크스를 유물론자라고 하는건 모순아닌가?
맑스 주장을 검토해보면
예를들어 나무를 벌목할때 도구를 선택할때
전기톱으로 나무를 써나 도끼로 써나
그 댓가를 똑같이 제공해야한다고 주장하는게 맑스자나
맑스는 노동이 축적 가능해 도끼에서 전기톱으로 발전한다는
그 자체를 부정하고
노동자의 노동시간에 신성을 부여한다는게
얘 논린데 얘가 왜 유물론자임? 유물론이라 함은 무릇 현상계에
기반한 존재들의 상호작용을 주로 삼고 추론하는 것 아니겠음?
전기톱으로 쉭쉭 썰리는 나무랑 도끼로 ㅈㄴ게 안썰리는 나무를 보면서 "아 ! 두 노동자는 평등하구나 중요한건 노동시간이야"
이런식으로 추론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관념론자같은데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됨
마르크스를 유물론자로 분류하는 이유는 그의 철학적 기반인 “역사적 유물론” 때문입니다. 역사적 유물론은 물질적 조건, 특히 경제적 구조가 사회의 발전과 변화를 결정한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즉, 인간 사회의 발전은 관념이나 이념보다는 경제적 생산력과 생산 관계 같은 물질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합니다. 당신이 언급한 마르크스의 노동 가치 이론과 노동 시간의 문제는 그의 경제 이론의 일부입니다. 마르크스는 노동의 시간에 가치를 두는 이유가 단순히 추상적인 개념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이 실제로 상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도구가 발전함에 따라 노동의 효율성이 향상되지만, 자본주의에서는 이러한 효율성의 증대가 노동자의 생활 수준을 반드시 개선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자본가가 이익을 취하는 구조에서 노동자들은 여전히 착취당할 수 있음을 비판한 것이죠.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착취 구조를 분석하면서, 노동자의 노동 시간과 임금 간의 불균형을 강조했습니다. 이때 “노동 시간”은 단순한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착취되는 방식의 핵심을 설명하는 도구였습니다. 전기톱이 더 빠르다 하더라도, 그 기술적 발전이 노동자에게 혜택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본가의 이익으로 귀결되는 구조를 비판한 것입니다. 마르크스를 유물론자로 보는 것은 그가 인간의 의식이나 이념이 아니라, 물질적 생산 방식과 경제적 관계를 사회 변화의 중심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CHATgpt-
전기톱보다 자본가의 노동이 더 가치 있고, 자본가의 활동이 노동이 축적된것이 부정되는건데 이게 왜 유물론인지 잘 이해가 안가여..
같은 논리대로 만약 노동이 축적 불가능라다면 러시아의 노동자들이 아프리카 노동자를 착취하는구존디 그자체로 모순아닌가야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을 바탕으로 한 그의 노동 가치 이론이 왜 유물론적인지를 이해하려면, 마르크스가 말하는 ‘노동의 축적’과 ‘착취’ 개념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르크스는 노동 그 자체가 축적되지 않는다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는 자본주의에서 노동이 어떻게 자본으로 전환되고, 축적된 자본이 다시 노동자를 착취하는 방식에 주목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동력과 자본의 구분입니다. 노동력은 실제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능력이고, 자본은 그들의 노동을 통해 생산된 부를 말합니다. 마르크스의 핵심 주장은, 노동자들의 노동이 축적된 결과(자본)가 노동자들 자신이 아니라 자본가의 손에 들어가며, 이 과정에서 착취가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왜 마르크스는 자본가의 노동과 노동자의 노동을 구분
왜 마르크스는 자본가의 노동과 노동자의 노동을 구분했는가? 마르크스는 자본가의 활동을 “노동”으로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자본가는 생산 수단(공장, 기계 등)의 소유자로서, 노동자의 노동력을 구매하여 생산을 조직하고 관리할 뿐입니다. 자본가는 노동자를 고용해서 가치를 생산하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를 자신이 독점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얻습니다. 이때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 중 일부는 임금으로 지급되고, 나머지는 ‘잉여 가치’로서 자본가에게 돌아갑니다. 마르크스는 이 과정을 ‘착취’로 간주했죠. 전기톱을 예로 들어보면, 자본가가 전기톱을 통해 더 많은 나무를 빠르게 베는 기술을 제공한다 하더라도, 그 기술은 자본가가 제공한 것이 아닙니다. 노동자의 노동을 통해 전기톱이 효율성을 발휘하고, 그 결과
더 많은 가치가 생산되지만, 그 추가된 가치는 자본가에게 돌아가고 노동자는 동일한 임금 혹은 더 낮은 임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해도, 노동자는 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자본가의 이익만 증가하는 구조가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지적된 것이죠. 러시아 노동자와 아프리카 노동자의 착취 문제 러시아 노동자가 아프리카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문제는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는 자본이 축적될수록 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하게 되고, 이 때문에 선진국(예: 러시아 자본가)은 후진국(예: 아프리카 노동자)의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하게 됩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국제적 착취 구조를 확대시킨다고 보았습니다.
어쨌든 러시아 농민과 아프리카 농민은 동일한 노동력(자본의 최소단위) 를 가진거고 러시아의 농민이 아프리카의 농민보다 더 구매력을 가지면 그것도 착취한거 아닌가여 진짜 머르겟슴
즉, 노동이 축적 불가능하다는 논리가 아니라, 노동의 축적이 세계적 차원에서 자본가들에게 집중되는 구조를 비판한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노동의 축적이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 아니라, 노동이 축적되는 방식이 자본가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며, 그 결과 전 세계적인 착취 구조가 형성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1. 노동력의 동등성 러시아 농민과 아프리카 농민은 기본적으로 같은 “노동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노동력은 그들이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즉 몸과 정신을 활용해서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보기에, 노동력이 동등하다는 사실은 그들이 처한 경제적 조건이나 생산 관계가 같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러시아 농민과 아프리카 농민이 같은 양의 노동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들의 경제적 상황과 자본주의 내에서 그들이 위치한 계급 구조에 따라 그들의 노동력이 창출하는 가치는 다르게 평가됩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 농민이 더 나은 기술이나 자원을 가지고 있다면 더 많은 생산물을 생산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더 높은 구매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2. 왜 러시아 농민의 구매력이 더 높을까? 러시아 농민의 구매력이 아프리카 농민보다 더 높은 이유는, 그들이 생산하는 제품이 더 높은 가격에 팔리거나, 그들이 더 나은 생산 수단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주의에서 구매력의 차이는 단순히 각 개인의 노동력 차이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 구조와 세계 경제 체제의 불균형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강대국(예: 러시아)이 후진국(예: 아프리카)을 착취하는 구조가 형성됩니다. 러시아 농민이 아프리카 농민보다 더 많은 구매력을 가진다는 것은, 러시아의 경제 구조가 더 발전되어 있고, 그로 인해 아프리카의 자원과 노동력이 불균등하게 착취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유물론이 아니라 관념론 아닌가요? 기독교나 인디언들이 공동체의 행복 같은것이 물질적인 이득보다 우선된다는 주장들은 전부 관념론으로 분류되자나요 맑스 주장도 이것들처럼 관념론같른데 왜 유물론이라하는지 모르겠어요
3. 착취란 무엇인가? 착취란 마르크스에게 있어, 한 계급(주로 자본가)이 다른 계급(노동자)의 노동력을 이용해 잉여 가치를 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제적 착취는, 선진국이 후진국의 노동력과 자원을 저렴한 가격에 취득하면서 그로 인해 부를 축적하고, 반대로 후진국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가치를 온전히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러시아 농민이 아프리카 농민보다 더 많은 구매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러시아가 아프리카보다 더 강한 경제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제 구조는 단순히 러시아와 아프리카의 농민 개개인의 노동력 차이가 아니라, 세계 경제 체제 내에서 형성된 불평등한 교환 관계에 의해 설명될 수 있습니다.
즉, 러시아가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고, 그로 인해 아프리카의 노동력을 저가로 이용하는 방식으로 착취하는 구조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당신이 말하는 “러시아 농민의 구매력”은 단순히 노동력 자체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 경제 구조의 불평등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분석할 것입니다.
1. 유물론 vs. 관념론 관념론(Idealism): 관념론은 정신적, 의식적 요소들이 현실을 형성하거나 규정한다고 봅니다. 즉, 인간의 의식, 이념, 철학적 개념 등이 세계를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기독교나 인디언 공동체에서 말하는 “행복”, “도덕”, “정신적 가치”는 이러한 관념적 요소에 우위를 두는 예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관점에서는 물질적 조건보다 의식적, 정신적 가치가 인간 사회를 결정짓는 주요 요소입니다.
유물론(Materialism): 유물론은 물질적 조건이 사회와 역사를 결정한다고 봅니다. 즉, 인간의 사유와 의식은 물질적 현실에 의해 형성된다는 입장입니다. 생산력, 경제적 구조, 노동의 조건 같은 물질적 요인들이 인간의 사상과 사회 변화를 결정한다는 것이 유물론의 핵심입니다. 2.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 마르크스는 역사적 유물론을 통해 관념론을 비판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인간 사회의 변화와 발전은 물질적 조건, 특히 경제적 생산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의식이나 이념, 정신적 요소가 역사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 수단과 경제 구조가 사회를 결정짓는 주요 요소라고 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의 사상이나 이념(예: 자유, 평등, 민주주의)도 실제로는 경제적 관계, 즉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관계에서 파생된다고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는 물질적 생산관계가 인간의 사상, 법, 정치 등을 규정한다고 주장했습니다. 3. 노동 가치 이론과 착취 문제 당신이 말하는 “러시아 농민과 아프리카 농민의 착취 문제”도 마르크스가 물질적 조건을 통해 분석한 것입니다. 마르크스의 착취 이론에서, 경제적 구조와 생산관계가 노동자의 생활 조건을 결정하는 핵심이라고 보았습니다. 그가 강조한 것은 “노동시간”이나 “잉여 가치” 같은 개념이 단순히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제로 물질적 조건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적 현상이라는 점입니다.
4. 왜 마르크스는 관념론이 아닌가? 기독교나 인디언 공동체에서 “행복”이나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것이 관념론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그들이 물질적 현실보다 정신적 가치에 우위를 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인간의 의식과 가치관조차도 물질적 조건에 의해 형성된다고 보았습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에서 핵심은 물질적 생산관계가 인간의 사회적 존재와 사유를 규정한다는 것입니다. 즉, 그가 노동시간이나 착취에 대해 말할 때, 이는 단순한 관념적 가치가 아니라 물질적 현실에 기반한 사회 구조의 분석입니다. 경제적 생산이 인간 사회의 모든 측면을 결정한다는 주장은 본질적으로 유물론적입니다.
결론적으로 마르크스의 주장이 유물론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그는 인간 사회의 발전을 물질적 생산 관계와 경제 구조에서 찾았기 때문입니다. 노동과 자본, 생산 수단의 변화가 사회를 결정하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착취와 불평등은 물질적 조건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보았기 때문이죠.
바보래요
마르크스가 도끼에서 전기톱으로의 진화를 부정했던가?
댓가를 똑같이 제공해야한다<<<이 주장 깐게 마르크슨데 뭔소리야
그건 노동축적을 부정한후 프롤레타이아에게 특권을 주면서 착취구조를 바로잡으러고
아니 그냥 노동가치설은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을 따지는거지 몇시간 일했냐 따지는거고 또 노동시간만큼 분배해줘야한다는 주장을 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런 발상 자체를 부정하는데
맑스 책 전권은 안읽어서 거까진 못읽었는데 뭐라고 하나요?
전기톱으로 일하는놈 백명 도끼로 일하는놈 백명 있으면 둘의 중간값 어디께에서 사회적 노동시간이 형성되는거고 그들이 생산하는 가치가 그만큼이라는건데 애초에 노동시간에 따라 노동이 교환가치로 평가되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인거고 이런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자는게=사회주의 마르크스 주장이고
정확히 말하면 마르크스는 노동이 가치를 창출하는 유일한 원천이라 생각함. 이거는 뭐 리카르도에게 영향을 받아서 그리 된 거고, 전기톱과 나무톱으로 하는 노동이 동일 노동으로 취급받아야 하느냐? 그게 아님.
저 전기톱 << 을 만드는 데 들어간 기술과 자본이 이미 축적된 노동인 거임.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런 축적이 고도화될수록 생산력은 증가하지만, 이 축적된 노동의 고도화 때문에 이윤이 감소한다는 게 마르크스의 생각이었음. 변동비 대비 고정비의 폭이 점점 커지는데, 마르크스의 기준에서 진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건 노동뿐이잖음? 즉 변동비만이 진짜유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 이 사상에서 --> 축적되었다 해도 같은 집단인구 전체의 적당한 평균값이 있다 ->> 따라서 저 값이상으로 가져가면 착취다 ! 이렇게 이해했는데 맞나여?
ㄴㄴ 그정도가 아니라 마르크스는 걍 노동만이 유일한 잉여가치의 원천이라 생각함. 자본은 그자체론 자본가들의 경쟁에 의해 가치 창출의 원천이 되지 못하고, 딱 노동자 몫을 빼먹은 몫만큼만 자본가가 가져간다 본 거
물론 나는 노동가치설을 딱히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걍... 맑스의 입장이 그랬다 정도인 얘기...
저도 궁금해서 책읽어봣서요 도움 감사핮니당
이윤인데 변동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드니까 갈수록 이윤이 줄어드는 거임. 맑스가 같은 노동시간에 같은 임금을 줘야한다 같은 빡머가리 소린 안 함.
전제부터 잘못되었으니 이상한 결론으로 빠지는구나. 좌1좀 빨2갱이 거르고 털보가 언제 같은 시간 = 같은 가치를 주장하고, 무식하게 기술 발전을 부정했노?
평가자가 어떤 존재론/인식론을 취하는가에 따라 마르크스는 유물론자 또는 관념론자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의 가치론을 오래 전에 연구한 입장에서 저는 마르크스의 가치론은 '논리적으로 일관되지 못하며(자본론 1권과 3권을 잇는 전형문제의 해결 불가능성), 환경문제에 관한 기술 만능주의의 위험을 내포한 해로운 이론(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노동과정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젊은 마르크스 연구자인 사이토 고헤이는 마르크스의 만년 초고 연구를 통해 마르크스가 만년에 생태적 사회주의로 넘어갔다고 주장합니다. 사이토의 저서들은 국내에 번역되었습니다.
한번 읽어볼게영 감사합니당
전형문제는 애초에 해석오류이지 이론적 문제가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