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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한국 시를 읽을 때 어두운 정서가 느껴진다면 대체로 뭔가 비장하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매번 그런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런 인상을 받았던지라, 이렇게 뭔가 무겁지 않게 어두운 시집은 처음이라고 할까.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마치 호러 쯔꾸르 게임에서 받는 느낌을 시집으로 받은 것 같았다. 미묘하게 소박하지만 우울한 일본 서브컬쳐 잔혹동화스러움과,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있지만 그 어느 것을 골라도 차이가 생기지는 않는다는 체념, 급작스러울 정도의 장면/시점 변환의 천연덕스러움, 화자와 배경이 모호한 원형의 글쓰기, 주제의식-혹은 최소한, 시 내부에서 느껴지는 슬픔, 고통 같은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에 대한 단서-이 미묘하게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 등등. 하나하나 쪼개며 생각하고 있자니 각각은 다들 다른 원천이 있을 듯한 인상이지만, 아무래도 이 전부를 합치면 나한테는 이게 호러 쯔꾸르 게임으로 다가온다.
창문에 돌을 던졌는데
깨지지 않는다
생각날 때마다 던져도
깨지지 않는다
밤이면 더 아름다워지는 창문
환한 창문에 돌을 던져도
깨지지 않는다
어느 날엔 몸을 던졌는데
나만 피투성이가 되고
창문은 깨지지 않는다
투명한 창문
사람들이 모두 그 안에 있었다
[채광], <Lo-fi> p.17
가장 인상적이었던 시 [채광]으로 예를 들자면 동화 <성냥팔이 소녀>를 연상시키는 분위기, 투명하기 짝이 없는 안온한 내부의 공간, 대접받는 이들을 보며 느끼는 염오, 그 안에 들어가거나 경계를 부수기 위해 여러 선택지가 있지만 아무런 차이도 만들지 못한다는 자각 등이 있다. (또한, 창문이라는 것이 외부에서 깨려고 하는 것처럼 내부에서도 탈출하기 위해 파괴하려 하는 물건인 탓에 시 초반에는 화자가 내부에 있는지 외부에 있는지 모호하다는 점까지 넣고 싶지만, 사실 몇 번 더 읽다보니 그건 그냥 초회독의 오독에 가깝지 않을까 싶어서 줄인다) 시 [저지대]에서는 이미 내려갈 운명이 결정된 채로 가라앉고 있는 사람이 마찬가지로 가라앉고 있는 사람을 만나며 이미 망할 운명이 결정된 상태로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 없이 시가 끝난다. 거기에 뭔가 이유라곤 없이. 죽음보다는 시의 끝이 훨씬 더 종말에 가깝게 나타나며 이야기를 강제로 닫아버린다는 느낌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좀 더 길어질 것 같은데, <Lo-fi>에서 죽음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릴케의 <말테의 수기>를 연상시키듯, 스스로의 죽음을 선택하다 못해 산 채로 죽은 채 그대로 지속되는 삶, 살아서 하지 못한 일을 죽어서 하고 죽어서 하지 못한 일을 살아서 하는 이상한 뒤엉킴 따위가 눈에 띄는데, 이 죽은 이들이 빨리 이승에서 떠나줬으면 하는 마음이 어디에도 없는 건 참 특이한 일이다. 특유의 시점 변환까지 곁들여 살아 있는 사람과 죽어 있는 사람이 뒤바뀌는가 하면, 소외된 사람과 이를 관찰하는 이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뒤바뀌며 사회에서 사람으로 조명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 사이의 차이를 그리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완전히 노골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 게 아무래도 그 모호한 주제의식의 영리함 아닌가 싶다. 유일하게 노골적으로 느껴졌던 시는 [말을 때리는 사람들]인데, 직접적인 노동을 해본 적 없이 중상류층의 삶을 살며 자연스럽게 착취를 이어가는 정신을 드러내는 것만 같다.
마찬가지로 [채광]에서 오독이었던 걸 하나 더 추가하자면, 원래는 이 투명한 창문으로 둘러싸인 따뜻한 공간을 화자 역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데 통과할 수는 있되, 무턱대고 들어가자 피투성이가 되어서 나오는 모습. 마치 무도회장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입바른 말을 믿고 자신의 신분을 포함한 미묘한 계급을 무시하고 행동해보려다가 어느새 암묵적인 비웃음을 받으면서 모욕당했지만 누구도 이를 제대로 티를 내지는 않고, 도저히 버티지 못해 나오려 하자 아무도 자기를 신경 쓰지 않아서 멍한 얼굴로 돌아나오는 순정만화의 장면이 떠오른다고 해야 할까? 이 분리된 따스한 공간,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쉽사리 되지 않는 그런 공간이 시집 전체에서 종종 등장하곤 하는데, 정작 [채광]에서는 애초에 통과할 수 없는 공간이었던 것 같아서 뭔가, 과잉해석이 약간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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