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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4장

25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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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도덕적, 민족적 순결을 지향하는 이상주의는 현실에선 위태롭습니다. 새하얀 옷을 입고 외출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밥을 먹고 차 한 잔을 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너무 쉽게 오염되는 순전함.


야훼교 성립 초기엔 순백이었던 이 종교 숭배자들의 옷은 지금은 무슨 색일까요? 수천 년 이상 덧칠된 피가 말라붙은 녹슨 철의 빛깔이 아닐까 싶습니다. 창세기 34장은 그 순백의 옷이 최초로 피칠갑이 된 순간을 다룹니다. 


야곱의 딸 다나는 이방인인 히위 족속의 '딸들을 보러 나갔'다가 세겜이란 이방인 남성의 폭력으로 순결을 잃습니다. 사적 차원에선 타 민족과 교류하면서도 통혼 관계 등은 맺지 않으며 배타적으로 살아온 야곱의 가족들. 이런 조건에선 다나의 비극은 언제고 일어날 수 밖에 없는 필연이었을 것입니다. 유일한 예방책은 배타적 규범을 버리고 공존하는 것 뿐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 세겜의 아버지 하몰은 야곱을 찾아와 이 사실을 털어놓고 둘의 결혼을 허락한다면 세겜 민족의 땅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하겠다고 제안합니다. 가해자인 세겜도 야곱과 그녀의 오빠들 앞에서 평화를 요청하며 요구하는 혼수와 예물을 원하는대로 주겠다고 말합니다. 


이 제안에 대해 야곱의 아들들은 '속여 대답하여' 혼담의 수용 조건으로 하몰과 세겜의 성에 거주하는 모든 남성이 유대인 식의 할례를 할 것을 제안하고, 그들이 이를 시행하자 할례 후 가장 고통이 심할 때인 3일 째 성을 기습해 '그 모든 남자를 죽'여 버립니다.


이 참극 역시 사실이라 보긴 여러모로 어렵습니다. 늘 그랬듯 희미한 사료적 대조는 필요없이 성서 자체로도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34장 뒷부분의 야곱은 이 학살을 일으킨 아들들을 비난하며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죽이리니'라고 염려합니다. 당연하고 합리적인 추론입니다. 하지만 중동의 거의 모든 왕들과 싸워 이겼던 아브라함의 여생이 평온했듯, 이후 어디에서도 이 사건에 대한 가나안 민족의 보복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모든 남자'가 학살을 당했던 세겜의 후손들이 민수기 26장, 여호수아 17장과 이스라엘이 국가의 기틀을 세운 사사기 9장에도 기드온의 아들을 왕으로 추대하는 꽤 유력한 민족으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 기록에서 의미있는 것은 이 만행에 대한 창세기 저자의 가치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깊게 읽어보면 이 장면을 기술한 저자는 야곱의 아들 입장에 공감하여 분노하거나 세겜의 행실을 비난하기 보단, 이방인의 입장을 은근히 대변하며 그들을 비난하기 때문입니다.


세겜이 다나를 범한 직후 그가 다나를 '사랑하여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 아버지에게 바로 정혼 허락을 요구하는 장면, 세겜 부자가 야곱과 그의 자녀들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평화로운 공존과 넉넉한 혼수를 제안하는 장면이 10절이 넘는 분량으로 상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만약 현대에 일어난 어떤 성폭력 사건을 기자가 이런 태도로 묘사한다면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을 정도의 배려입니다.


무엇보다 확실한 근거는 앞서 말한 야곱이 아들들의 학살을 꾸짖는 장면과, 한참 후인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이 죽기 직전 유언을 남길 때 34장의 사건을 다시 거론하며 이 학살을 주도한 '시므온과 레위'를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이며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라고 다시 비난하는 부분입니다. 


재밌게도 이 예언은 민수기, 여호수아 대에 이르러 어느 정도 현실화됩니다. 시므온 지파는 출애굽 후 40년의 광야 생활 중 가장 큰 인구 감소를 보였다고 민수기 26장에 기록되었고 이후 사사기나 왕국 시대에도 별다른 존재감이 없으며 특히 역대상 4장에는 '그의 형제에게는 자녀가 몇이 못되니 유다 자손처럼 번성하지 못'했다고 서술됩니다. 레위 지파 역시 이스라엘 영토를 받아 정착하는 대신 성막을 관리하는 가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유언이 실현된 것이든, 후대의 저자나 편집자들이 끼워맞춘 서술이든 그 의미는 동일합니다. 창세기의 저자 혹은 편집자는 위와 같은 과격한 학살을 긍정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순백의 옷이 피로 물들었던 이 최초의 순간을 활용해 창세기 저자는 사적 폭력의 가해자인 이방인들이 오히려 화해와 공존을 시도하고, 사실상의 이방인인 에서에게 큰 용서를 받아 목숨을 부지하며 이들 사이에 정착한 야곱의 아들들이 동생과 자신들의 순결을 지키겠다며 종교 규범을 끔찍하도록 악용해 성 하나를 절멸시키는 폭력을 저지른 아이어니를 기술한 것입니다. 


이처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수준이었을 당대의 도덕관을 훨씬 뛰어넘는 창세기 저자의 윤리의식은, 후대에 이르러 처참하게 왜곡됩니다. 여호수아서에서는 세겜 학살을 몇 천배 뛰어넘는 대량 학살이 오히려 신의 명령이자 선민의 권리로 칭송받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