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냥 영원주의를 노스탤지어가 자본주의에 야기할 수 있는 해로움을 밀어내면서 동시에 과거를 수익화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한다. 영원주의란 예컨대 문화 컨텐츠를 예시로 태너가 보어주듯 과거를 끊임없이 현재화 하는 걸 말한다. 스타워즈 리부트, 슬램 덩크 영화버전 같은걸 생각하면 되겠다.

영원주의 보다는 현재완료진행형이라는게 더 적합한거 같은데, 왜냐면 시작 시점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거고 끝은 아직 모르니까. 어쨋거나 약 100페이지정도 되는 에세인데 올해 읽은 것 중에 가장 설득력이 떨어지는 축에 들어가네. 가장 큰 문제는 생산성에 방해되는 감정적 동요를 영원주의가 막아주는 것처럼 주장하는데 그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나라면 메스트로비치의 포스트 감정사회가 제출했던 자본이 우리 생활과 감정을 어떻게 하이브리드로 조합해서 연출하느냐, 삶을 포섭했느냐랑 연결 시켜서 논의를 해봤을 것 같다. 그게 더 설득력이 있었을거다.

태너는 그냥 레트로 열풍이라든지 빅데이터 시대에 수많은 것들이 다 저장, 축적되어온 현실을 살펴볼려고 고민하다 영원주의라는걸 제출하는거 같은데 집필 기회를 제안한 로랑 드 쉬테르 (나르코 캐피털리즘의 저자다)와 마찬가지로 얼핏 듣기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지만 그 이상이 없다.

원래 노스탤지어 연구자 같은데 왤케 괴작을 쓴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