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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게 문장의 묘미라는 작가의 말 답게, 간단하지만 감정이 듬뿍 들어가 있는 흥미로운 문장에 감탄.

분명 문장 형태만 보았을때는 그 문장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비가 와서 우산을 쓰고 학교로 걸어갔다."와 같은 건조하고 유치하고 뻔한 초등학생의 일기 속 문장과 다를바 없는 성질을 가져야 마땅하나, 그러한 성질이 유령처럼 존재하면서 깊음과 재미가 병존하니 마치 대가의 마법을 직접 눈앞에서 보는듯하다.

초등학생의 일기속 문장처럼 고양이의 순진함과 천진난만함을 드러내면서도, 뛰어난 묘사를 통한 엄청난 몰입감은 작가에 대한 감탄으로 이어진다.

나같은 미물은 명시적으로 알수 없는 대가 만의 은연중 밀고 당기기가 서술 안에 있는듯 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단순한 문장이 귀여울수가 없기 때문이다.

문장의 대부분이 귀엽다.

또한 "지금 생각하니 그때 이미 집 안에 들어왔던것이다."와 같은 문장은 상황에 굉장한 자연스러움을 부과한다. 그것은 마치 술에 잔뜩 취한 사람이 소변기인줄 알고 그곳에다 소변을 누었으나 알고보니 그것은 자신의 침대였다는, 행위자의 정신적 어리숙함을 보여주는 상황과도 같다.

나는 새끼 고양이의 있는 그대로의 감정과 모습을 서술하고 있을 뿐인 이 글이 어떻게 그렇게 귀여울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이때까지 고양이의 귀여움이 주였다면, 이제는 아저씨에 대한 한심함이 주로 다뤄진다.

교사인 아저씨가 면학가 행세를 하며 서재에 틀여박혀 낮잠만 자는 모양새를 고양이가 엿보는 것은 웃기다. 아저씨는 그 고양이가 자신을 그렇게 인지하고 있는걸 모를테니까 말이다.

이제는 그런식으로 인간들을 욕하는 고양이들의 뒷담이 서술되지만, 정작 인간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주인공 고양이는 축복받은듯 하다. 주인공 고양이가 같이 뒷담을 하고 있는 다른 고양이들 주인과는 다르게, 한심한 아저씨는 한심하기만 할 뿐이다. 따라서 그런 아저씨를 욕하고 인간을 깎아내리는 주인공 고양이도 오만해보이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오만이 오만을 깎아내리는것이다.

그런 난장판도 이 소설 1장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난장판을 빠르게 눈치채는 것 또한 역설적이게도 주인공 고양이다. 이때까지 하는 짓을 봐서는 어리숙하고 천진난만해야 마땅하나, 이상하게도 눈치가 빠르고 관찰력이 뛰어난 주인공 고양이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주인집 아저씨에게, 미학을 전공한 친구가 조언을 하는데, 그 친구의 비웃음을 그 아저씨는 보지 못하고 주인공 고양이만 본것이다. 이러한 불균형은 주인공 고양이의 아저씨에 대한 비웃음을 강조한다. 아저씨가 더욱 더 멍청해지는것이다. 결국 어리숙한 고양이에게 어리숙한 아저씨가 비웃음 당하고 만것이다. 이것또한 난장판이다. 난장판의 연속이라 할수 있겠다. 누가 오만하고 누가 어리숙하고 누가 약삭빠른지 모르는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수없이 많은 비판과 비난이 난무하고 있다.

이후에 주인공 고양이를 사생하고 있는 아저씨를 배려해 소변을 참다가, 도저히 참지못해 움직인 고양이를 향해 분노한 아저씨다. 여기서는 그 고양이가 불쌍하게 느껴지고 아저씨가 나쁘게 느껴질수 있겠으나, 그 고양이가 그렇단 이유로 그 아저씨를 비난하며 또 다른 험담을 꺼내온것은 다른 집 고양이가 그 집 주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건에 대한것이었다. 결국 또 자기 편한줄 모르고 자기 집 주인만 비난해대는 주인공 고양이다.적어도 주인공 고양이는 그 정도의 부당한 대우는 받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그 험담의 서술과, 또 그 이후의 주인공 집 주인 아저씨에 대한 한심함에 대한 서술은 대단하다. 이때까지 말한식으로 한심함과 한심함이 연속되는 난장판 속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한심함이 서술되고 있는것이다. 그렇다고 불쾌하진 않고 웃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웃을수는 없는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