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건너간 채 돌아오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돌아오자 죽어갔다.
어떤 사람은 영영 생사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아픈 패배에 울었다.
- 임화, <현해탄> 中
현해탄 콤플렉스는 한국의 근대문학은 메이지-다이쇼기 일본 문학의 이식에 불과하다는 임화의 주장에 대한 김윤식의 비판적인 가치 부여를 일컫는다. 여기서 현해탄 콤플렉스는 임화의 특정 문학이론에 대한 설명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더 광범위하게 한국 작가들의 일본 문학 및 서양 문학에 대한 지향성을 나타내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현대문학 분야 인용수 압도적 1위를 거머쥔 김윤식인만큼, 김윤식에 의해 정의된 ‘현해탄 콤플렉스’는 임화의 문학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툴로써 자리잡았다. 그러고 보면, 김윤식은 임화를 상당한 콤플렉스 덩어리로 보았던 것이 아닌가 싶은데, 현해탄 콤플렉스 이외에도, ‘가출 콤플렉스’, ‘누이 콤플렉스’ 등이 있다.
심지어는 중졸이 뭘 알겠냐며, 학력 얘기를 꺼내기도 하는데, 이게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김윤식의 임화 연구에서도 제법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임화의 학력 콤플렉스가 어떻게 표출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경성제국대학에서 맑스 철학을 연구한 신남철과의 대비를 통해 논하고 있다. (해당 내용은 <임화와 신남철>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들은 김윤식의 비판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임화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임화의 문학론은 단순히 현해탄 콤플렉스에서 움튼 열등감의 발현이 아니고, 조선의 정체성을 새로이 확립하기 위한 탈식민주의적인 시도였다고 보는 견해이다.
대표적으로 홍승진의 <눈물이 비추는 여명>에 대해 얘기해볼 수 있겠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임화의 ‘현해탄 연작’을 단순한 조선 청년의 ‘가련한 몽상’으로만 환원될 수 없는 점을 지적하며, 임화가 ‘애도’를 통해 조선적 아이덴티티를 보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해탄은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가는 길목이지만, 반대로 일본에서 조선으로 되돌아오는 길목이기도 하다는 것. 임화의 현해탄 연작은 그러한 상승 구조와 하강 구조를 활용해, 단순히 일본에 대한 동경만이 아닌 일제 파시즘에 대한 비판적 인식까지 다다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임화에 대한 양면적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는 이 문제를 다른 식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임화의 현해탄 콤플렉스는 곧 임화를 바라보는 김윤식의 현해탄 콤플렉스이기도 했다는 것. ‘식민사관’의 극복을 평생의 과제로 여겼던 김윤식, 그것을 위해 그는 김현과 함께 <한국 현대문학사>를 집필했으니, 그것은 김용섭의 ‘경영형 부농론’에 근거해 한국의 근대를 새로이 규정하기 위한 시도의 일환이었다.
그럼에도 김윤식은 말년에 이르러, 현해탄 콤플렉스는 완전히 극복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닌, 함께 가는 것이라 밝혔는데, 여기에는 식민사관의 극복을 목표로 하면서도 일본에 유학해 문학을 연구해야 했던 근대문학 연구자로서의 아이러니가 녹아들어 있다. 그는 이광수, 염상섭, 김남천 등의 일본 유학생 출신 근대문학인들이 일본 대학에서 어떤 것을 배워왔는지를 끈질기게 연구해야만 했으며, 비평의 방식에 있어서는 고바야시 히데오, 에토 준, 모리 아리마사 등의 일본 비평가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더욱이 결정적인 것은, 한때 논란이 되었던 ‘김윤식의 가라타니 고진 표절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김윤식이 쓴 <한국근대소설사 연구>의 2장 <문학적 풍경의 발견>이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기원>과 닮아 있던 것. 아니, 닮아있던 것을 넘어서 몇 페이지에 걸쳐 거의 그대로 가져왔던 것.
이것은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이명원 평론가에 의해 밝혀졌는데, 사실은 표절 폭로가 주된 목적은 아니었다. 그가 쓴 <김윤식 비평에 나타난 ‘현해탄 콤플렉스’ 비판>(훗날 김현, 김윤식, 백낙청, 임화를 다룬 <타는 혀>에 수록)에서 김윤식의 표절보다 더 중요하게 거론되는 것은, 김윤식의 무비판적인 수용에 있었다. 가라타니 고진이 만든 ‘풍경’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문학을 분석하는 편리한 도식으로 이용해버린 것. 이 부분에서, 우리는 김윤식 역시 현해탄 콤플렉스의 반경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다 보니, 임화보다 김윤식 얘기가 더 길어진 것 같은데, 아무튼 현해탄 콤플렉스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 지금의 우리로서는 다소 먼 얘기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일본에 대한 복잡한 양가 감정을 갖고 살아야만 했던 시대가 있었고, 그것은 문학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을 뛰어넘어야 했으나, 뛰어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일본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근대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근대를 초극해야만 하는, 이러한 ‘이중과제’는 식민지 국가의 지식인들이 겪어야 할 슬픈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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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홍승진 교수님이 이런 것도 쓰셨었구나
이거랑 <천상과 지상 사이의 형상>이라고 김종삼 관련된 평론도 있는데 그건 아직 안 읽어봄 - dc App
내 기억에 김윤식의 임화 비판에 대해서 이명원은 임화의 이식문학론을 김윤식이 대차게 비판했지만 정작 임화의 논리에 김윤식 자신도 함몰되었다고 김윤식을 비판하던게 기억나는데 맞나? - dc App
ㅇㅇ 어떻게 보면 김윤식의 현해탄 콤플렉스는 임화보다도 김윤식 자신에게 더 잘 맞아떨어지는 구석이 있음. 김윤식이 가라타니 고진의 '풍경'이란 개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고 이명원이 그 부분을 지적해낸 것.
그러한 현해탄 콤플렉스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김윤식 후대 평론가들에 의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느낌. 임화에 대한 재해석도 그 일환이라 할 수 있음.
ㄴ 그 부분이 재밌네. 김윤식의 계승이라는게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