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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의 겨울, 밤거리의 서울로 나온 는 포장마차 선술집으로 들어선다. 선술집에 들어선 가 바라는 것은 명확하다. 적당한 취기가 필요할 때 적당한 안줏거리와 함께 한 잔 들이키곤 떠나는 것. 곧 안과의 대화-실상 자신의 추억을 남에게 늘어놓는 것-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안과의 대화가 서로의 흥미를 돋우지 못해 대화가 단절되었더라면 는 같은 공간에 있던 타인에게 관여하지 않고 떠나갔을 것이다.


 안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타인과 관계하지 않으려고 하는 도시인의 방어적인 태도가 드러나고 있다. 생 그 자체이거나, 살아가는 것이 역동적일 수 있도록 하는 욕망이거나, 여하간 그러한 것에 충실한 상태가 되고 싶은 소망을 담은 단어인 꿈틀거림에 대한 탐구를 위해 타인과 진실한 교류를 얻고 싶어함에도 불구하고 내 손으로 잡아챌 수 있는 날아다니는 생물인 파리를 사랑한다는 의 기묘하고도 선뜩한 발화 이전까지는 침묵한다.


 힘겹게, 파리를 소재로 해 이들의 대화는 다시 시작된다. 그러나 이들의 대화는 엇물린다. 매 순간 구체화하지는 않겠지만, 사람이 경험적으로 체득하는 사실.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관여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 다른 배경을 가지고 살아온 이들이 단순간에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대화가 진행되며 드러나기 때문이다. 서로가 사랑하는 것이 다르며, 그렇기에 서로가 꿈틀거림을 두고 떠올리는 것이 다르다. 안은 욕망의 도시 서울에서 일어나는, 더 나은 생의 형태를 위해 투쟁하는 꿈틀거림, 어쩌면 안이 사랑하는 대상인 데모를 화두로 제안하려 시도하지만 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에서 오는 망설임, ‘의 할 수 있는 한 깨끗한 음성을 담은 모르겠습니다라는 거절에 의해 좌절된다.


 진솔한 대화를 원했으나, 서로의 이해가 뒷받침하지 못하는 대화상황의 허무함을 인식한 안은 꿈틀거림에 대한 자신의 갈망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그러나 는 안의 꿈틀거림이 이해되지 않기에 귀찮다고 여기며 대화의 주제를 틀어버린다.


 ‘가 꺼낸 다른 주제는 가 지각하는 일상의 시답잖은 사실의 나열이었다. 평화 시장 거리의 고장난 가로등, 불빛이 새어나오는 화신 백화점의 육 층 창들. 허무한 대화에 절망하던 안은, 기묘하게도 이 시답잖은 사실들에 위안을 얻으며 대화를 지속한다. 버스 구성원, 쓰레기통의 내용물, 가지가 부러진 가로수와 같은 것들. ‘는 그저 가벼운 주제를 꺼내 안을 골려주려는 마음이었지만, 안씨는 의미 없는 사실들의 나열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공유하고 있다는 상황, 그 사실만큼은 진실한 것이라는 상황에 안도하며 대화를 즐긴다. 그러나 배경이 다른 서로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또 타인에게 드러나고 싶지 않아하며 교류를 꺼리는 현대인의 기저심리는 여전히 해소되지 못했다. 이런 점들 때문에 대화는 때로 위화감 속에 단절되고, ‘꿈틀거림을 열망하는 안의 발화는 성립되지 못하며 그런 안씨를 거북해하는 가 있게 된다. 안은 결국 이러한 상황에 타협한다. ‘꿈틀거림을 탐구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설파하지만, ‘의 냉담한 태도에 의해 좌절된 끝에 서로 다른 길을 걸어서 같은 지점에 온 것 같습니다. 만일 이 지점이 잘못된 지점이라고 해도 우리 탓은 아닐 거에요.’라는 결론을 내린다. 서로에게 장벽으로 작용하는 것들을 해소하지 못하는 것이 그들의 책임은 아니라는 태도를 보인다.


 ‘와 안은 타협한 대화에 적당히 만족하며 타자와의 관계가 성립되기 어려운 공간인 포장마차를 떠나 정식으로한 잔 하고 마무리하려 시도한다. 그들의 교류가 포장마차라는 공간에만 묶여 있기에는 다소 아깝다는 감상인 것이다. 그러나 이 때, 그들의 시선 바깥에 존재하던 아저씨가 그들과 함께 하겠다며 곁으로 다가선다. 그저 하룻밤의 적당한 교류를 즐기고 싶었을 뿐인 안과 는 음울한 기색을 풍기는 아저씨와 관계되기를 꺼리지만, 아저씨의 호소에 밀려 아저씨와 동행한다.


 아저씨는 빈궁해보이는 차림과 달리돈을 써 버리기로 결심했다며 중국 요릿집으로 가 와 안에게 끼니를 대접한다. 그리고 음울함의 원인을 고백한다. 아저씨의 아내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내를 카데바로 팔아넘겨 4000원을 얻었고, 4000원을 오늘 밤 털어 버리고 싶다는 것. 안과 는 동행을 파기하고 싶어하지만 결단하지 못한 채 아저씨와 함께 정처없이 거리를 헤멘다. 그들은 방황하며, 충동적으로 양품점에서 넥타이를 사고, 가고 싶은 곳도 정하지 못한 채로 택시를 잡는다. 아저씨는 택시를 잡곤 느닷없이 소방차 뒤를 쫓아달라 주문한다. 동행의 끝을, 그리고 적당한 유희를 바라는 은 그러지 말고 종삼으로 가자고 제안하나 아저씨는 거절한다. 그들은 끝내 화재 현장에 도달한다.


 화재 현장에서 그들은 서로 다른 것에 집중하며 아무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아저씨는 불길 속에서 아내의 환영을 본다. 죄책감이었을까. 아저씨는 환영의 불길 속으로 남은 돈을 던져 버린다. ‘는 아저씨의 돈을 털어 버리는 계약 관계가 이제 끝났다며 아저씨에게 작별을 고한다. 그러나 계약의 끝과 함께 불안감에 휩싸인 아저씨는 하룻밤만 자신과 함께 지내 달라며, 여관으로 향하자고 제안한다. 수중에 돈이 없던 아저씨는 계약의 연장을 위해 밀린 돈을 받겠다며 어느 집으로 향하지만, 실패한다. 실패한 아저씨는 문기둥에 손을 짚고 오랫동안 흐느낀다.


 시간이 늦어 일행은 근처 여관에서 밤을 보내기로 결정한다. 아저씨가 위태로운 상황임을 고려한 는 아저씨와 한 방에 들기를 권하지만, 안은 각방을 쓰자 제안한다. 아저씨는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안은 재차 거절하며 화투를 치며 시간을 같이 보내자는 의 제안도 거절한다. 그들은 각방에 들고 잠에 든다.

 다음 날, ‘와 안은 아저씨가 죽어버린 것을 발견한다. ‘는 아저씨가 죽어버린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만, 아저씨의 죽음에 연루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와 안은 황급히 여관을 이탈한다. 안은 아저씨의 죽음을 예측했으나 위태롭고 불안한 그를 홀로 두는 것이 더 안전하리라는 생각을 했다며 자신을 합리화한다. ‘역시 수가 없었다 평한다.


 걸음을 서두르던 안은 문득 가로수 밑에서 멈춰 선다. 그리고 에게 우리가 겨우 스물 다섯 살임에도, 너무 늙어 버린 것 같지 않냐는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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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과 소외는 현대인의 필연적인 문제다. 무수히 많은 타자 속에서 이익을 따라 관계를 형성하는 사회 속에서 합리적이지 못한 관계에 대한 투자는 피로감을 느끼게 할 뿐이다.


 안의 태도가 현대인의 이러한 특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익관계에 매몰된 경제활동이 발생하는 낮보다는 개인의 욕망이 드러나는 밤과 밤거리, 더 나은 세상을 갈망하며 세상을 향해 도전하는 데모, 더 나은 살아감을 위한 욕망을 사랑하는 안은 그러한 낭만적인 사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작 중 어떤 등장인물보다도 이기적이고 냉소적이다. ‘꿈틀거림을 이야기할 수 없는 대화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종삼과 같은 즉물적인 쾌락에 친숙하고,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아저씨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득이 될 것 없는 교류를 일관적으로 기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안으로 대표되는 이기적이고 냉소적이며 타자에게 무관심한 태도는 서울, 1964년 겨울을 이끌어 나가는 주된 소재가 대화임에도 그 대화와, 대화를 통해 형성되는 관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와 안 모두 밤이라는 일탈적 시간을 인지하고 있고, 그 속에 허용되는 쾌락을 추구할 뿐 상대방을 진정으로 이해하려 들지는 않기 때문에 그들의 일탈이 관계로 연결되며 연장되지 않고 밤이라는 한정된 시간만을 소비하는 허무하고 피상적인 대화로 그친다. 그들의 관계를 단발적인 만남에 한정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하며 관계가 발전할 가능성을 없앤 것이다. 그렇기에 아저씨와 서울을 떠돌면서도 아저씨에게 공감을 보이지 못하고 정처 없이 헤맨 거리와 화재 현장에서 서로 다른 것을 인식하며 맞물리지 않는 대화를 반복한다.


 끝내 타인의 처지에 무관심한 그들의 태도는 아저씨의 죽음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사별한 아내의 친지와 연락할 수 없고 아내의 시신마저 팔아넘긴 그는 아내의 흔적과 단절되었다. 그를 극복하고자 맺은 하룻밤의 물질적 계약관계도 돈을 탕진함에 따라 끝을 고하자 홀로 남은 방에서 자살을 택했다.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자산을 처분한 아저씨가 극도로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으나, ‘타인의 불행에 연루되고 싶지 않은 와 안은 회피적인 태도를 고수하며 아저씨를 구원하지 않았다.


 일련의 사건을 겪고 난 후 안의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하는 자문은, 개인이 품은 이상점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한계를 단정하고 현실과 타협하며 개인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냉소적인 현대인에 도달한 자신에 대한 어렴풋한 자각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인의 삶 속에서는 타인과의 진실한 교류가 좌절되기에 성취하고 싶어하는 욕망으로 남는다. 그렇기에 그러한 꿈틀거림이 낮의 규율에서 벗어난, 밤과 같은 일탈적 상황에서 등장하게 된다. 작중에서는 냉소적이고 이기적인 현대인의 특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진실된 소통을 향한 욕망이 존재하기에 시답잖은 개인적 사실을 나열하며 그것을 통해 기쁨을 얻는 나와 안의 모습이 존재한다. 자본논리에 의해 전통적인 가치와 공동체의식이 훼손되어 인간적 유대감을 상실하고 있는 현대의 문화적 특성과 그 속에서 드러나는 개인의 비인간성, 전통적 가치로의 회귀에 대한 향수가 등장인물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결코 긍정적으로 묘사되지 않는 도시적 비인간성은 거대해질수록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자본에 의해 도시가 지지되기에 극복될 수 없는 지점이 존재한다. 작 중 안과 같이 경험에 대해 천착함으로써 우리가 우리의 비인간성을 인지하고 그것을 경계할 순 있겠지만, 우리가 도시에 살아가는 이상 이러한 문제의 완전한 해소에는 도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비인간성에 대한 우리의 경계가 점차 마비되어가고 있다. 우리의 밤은 확장되고 있으며, 또 모호해지고 있기에. 우리의 삶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직사각형 평면의 액정 속에 어느때나 비춰지고 있는 이 일상을 침식하고, 또 일상이 밤을 침식하고 있다. 이익과 유희의 경계가 흐려지고, 일탈과 일상의 경계가 흐려지며, 낭만과 현실, 또 도시, 거리, 농촌, 겨울, 여름과 같은 것들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우리에게 성찰의 기회는 남아 있는가?


 우리가 밤낮조차 분간할 수 없게 된다면, 우리는 무너진 일상의 피상적 관계 속 만성적 허무주의에 붙들려 살 수밖에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