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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위대한 개츠비》에는 한 가지 수식어가 붙는다; 굉장히 재미없는 소설. 이러한 수식이 주는 딱딱하고 무거운 느낌 때문에 《위대한 개츠비》는 독서를 시작하고도 오랜 시간 외면해온 소설이었다. 최근에서야 교양용으로 구매하고 독서를 시도하였으나 선뜻 첫 발을 내딛기가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소설을 읽기 시작하자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다. 《위대한 개츠비》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뛰어나다고 평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 정도면 가장 정석적인 방식으로 잘 만든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중간중간 감성을 울리는 문장도 드러나고 묘사도 감각적이다(그러한 사실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20세기의 미국에 대해 로망을 품고 있는 사람이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어쩌면 가장 미국적인 소설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 덕분에 현재의 평가와 상업적인 성공을 얻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 때를 추억으로 가진 사람들이 소설을 읽고 노스텔지어를 느낀 것이 아닐까.

읽던 도중 《노르웨이의 숲》이 생각났다. 사실 한 세기의 끝과 시작에 자리한 서로 닮은 소설이 아닐까. 두 소설이 비교가 가능한 수준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데 글쎄, 《위대한 개츠비》가 위대하지 않던가, 《노르웨이의 숲》이 대단하던가. 난 후자같다.

어디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20세기의 소설은 동쪽의 《율리시스》와 서쪽의 《위대한 개츠비》로 요약할 수 있다는 말이었나. 자세한건 《율리시스》를 읽어봐야 할듯하나 아직까지는 미심쩍은 말 인듯하다. 차라리《율리시스》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더 어울리지 않으려나. 《위대한 개츠비》는 소설적인 위대함 보다는 독자의 공감이 만든 명성이 주가 된 소설이라 생각한다. 《호밀밭의 파수꾼》과 같은 소설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