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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문학동네 예스리커버판으로 읽음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I would prefer not to."
이 짧고 강렬한 문장이 이 작품을 관통하는 대사이다. 세기의 걸작 《모비딕》을 발표한 작가 허먼 멜빌, 그의 노고가 담긴 소설이 혹평을 받으며 상업적으로 실패하자, 먹고살기 위해 투고한 단편 작품이다. 마치 그때 작가의 심정을 반영하듯, 작품은 내내 우중충하고 무거운 분위기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월스트리트는 현재는 금융권의 대명사가 되었다. 마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 영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처럼 화려하고 품위 있는 금융권 종사자들과 호화로운 삶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곳의 월스트리트는 음울하고 우울한 회색빛이 도는 암울한 곳이다.
This view might have been considered rather tame than otherwise, deficient in what landscape painters call “life.” …… In that direction my windows commanded an unobstructed view of a lofty brick wall, black by age and everlasting shade;
이 전망에는 풍경 화가들이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결여 되어 있어서 특히 단조롭다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쪽 창밖으로는 높은 벽돌 벽이 훤히 내다보였다. 벽은 오래되고 늘 그늘이 져 있어서 거무스름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사무실은 햇빛이 제대로 들지도 않고 창문 밖에는 바로 옆 건물의 벽이 코앞에 있을 정도로 좁디좁은 열악한 환경으로 묘사된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월스트리트의 풍경은 마치 끝없는 노동과 기계처럼 대해지는 노동자의 상황과 앞으로 바틀비가 만드는 우울한 분위기를 암시한다. 감옥 같은 사무실에서 끝없는 노동의 굴레에 갇힌 노동자는 기계의 톱니바퀴, 노예의 삶과 다름이 없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노예는 스스로의 주체성이 없고 결정권이 없이 노동에 종속되어 있기에 비천하다고 보았다. 키케로의 《의무론》에서도 '기술력이 아니라 노동력을 파는 모든 임금 노동자의 생업은 자유인 답지 않고 비천하다.'라고 하는 등 생계를 위한 노동에 갇힌 이들은 사유의 자유와 지적 활동의 자유가 차단된 노예와 다름이 없다고 본 시각은 오래되었다. 비참하게도, 시대를 거듭할수록 사회는 인간에게 무한한 노동을 요구하며 저임금에 효율적으로 노동자의 효용을 쥐어짜내는 방향으로 산업이 발전하였다. 사무실의 직원인 터키, 니퍼스, 진저넛은 이런 시스템에 고통받으면서 순응하는 인물을 상징한다. 터키는 자신의 일을 '오후의 헌신(afternoon devotions)', '아침의 섬김(services in the morning)'이라고 말하는데, 마치 노사관계를 주종 관계처럼 포장한다. 또한 바틀비의 노동 거부를 비난하며 그를 욕하는 직원들은 시스템에 저항하는 인물을 배척하는 노예라고 볼 수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작중 화자인 변호사는 스스로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속물적이고 지나치게 기계적인 인물이다.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예시로, 사무실 직원 중 한 명인 '터키'가 오후만 되면 이상행동을 보이며 다른 직원인 니퍼스는 오전에만 이상해지고 오후에는 멀쩡해지는 것을 알아차린다. 합리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그는 직원에 대한 인간적인 걱정이 아닌 업무의 효율성을 위하여 근무시간을 조정하려 한다. 좋은 외투를 주면 발작이 멈출까 싶어 선심 쓰듯 터키에게 코트를 선물해 주었으나 행동이 나아지지 않자, 그를 '말이 귀리의 영향을 받았다(resive horse is said to feel his oats)'라고 비유하는데, 직원을 말과 같은 부려먹는 가축 정도로 취급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 화자에게 있어"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바틀비의 말은 당돌하면서 충격적이다. 돈을 받으며 일을 하는 노동자가 당당하게 고용주에게 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니, 또 고용주는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하고 홀린 듯 그에게 휘둘린다는 게 기이하고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 문장의 원문인 'I would prefer not to.'를 분석해 보면, prefer to는 (다른 것보다) 선호하다는 의미로 일을 하느냐 마느냐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안 한다는 '차선'을 선호한다는 것이 된다. 또한 would라는 동사 때문에 그의 선택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확고한 의지임을 보여준다. 이런 식의 거절은 직접 듣는 화자도, 독자들에게도 충격적이고 괴상망측한 말이다. 여담으로 민음사판 번역의 경우 '그렇지 않은 편이 좋겠습니다.'라고 번역했는데, 이 문장에는 바틀비의 의지와 선택의 의미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바틀비의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는 일종의 소극적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평등하다'라고 헌법상 명시되어 있어도 실질적으로 평등할 수 없는 세상, 인간답게 살기 위해선 돈이 필요한데 돈을 벌기 위해선 인간 주체성을 버리고 기계가 되어야 하는 모순된 사회, 이런 사회에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가 일을 거부하는 것은 표면적으로 보면 사회 부적응자, 겉멋만 든 이상주의자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주어진 업무를 넘어 의식주라는 인간 생존의 활동까지 거부하면서 사회의 체제와 인간 삶의 무가치함을 시사한다. 단순노동을 상징하는 필경사의 업무는 인간을 비인격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데, 그는 이 활동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고 스스로 시스템에 녹아들길 거부한다.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노동이 아닌 생존 그 자체를 위한 노동을 하도록 압박하는 사회는 인간 본연의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리게 한다. 바틀비는 노동을 거부하고,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생활하며 퇴거를 거부하며, 감옥에 가서도 먹기를 거부하면서 끝내 숨질 때까지 스스로의 의지대로 인간으로서 주체성을 지키고자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소극적 저항도 역시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의 행동은 어느 누구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반사회적 인간으로 취급받을 뿐이다. 그는 주체적으로 자유의지를 실현하고 있는 것 같지만 끝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파멸에 몰아넣는다. 즉, 세상에 대한 저항이라고 하기엔 아무에게도 영향을 주지 못하고, 너무나 폐쇄적이고 수동적이다. 그의 죽음은 결국 인간은 사회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살아갈 수 없고, 세상을 이길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아 무기력하고 절망적이다. 저항을 하다 교도소로 끌려가 쓸쓸하게 끝까지 생존 활동을 거부하며 죽는 바틀비의 최후는 개인적 저항은 명백히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그의 활동이 의미가 정말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는 노예로 살기 보다 인간으로서 명예롭게 죽기를 선택한 것이다. 자유의지와 주체성이야말로 이성을 가진 인간만이 선택할 수 있는 능력, 짐승과 인간을 구분 짓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의 폭압에 순응하지 않고 인간으로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 '안 하는 편을 택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I would prefer not to.'가 차선을 택한 의미라는 해석을 미루어 보면, 바틀비의 선택은 그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었던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희망적인 것은, 그의 저항은 화자에게 어떠한 변화를 주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작품의 마지막 문장은 '아, 바틀비여! 아, 인류여!(Ah Batleby! Ah humanity!)'라고 끝난다. 작의 뒤로 갈수록 화자가 바틀비에게 인류애적인 동정과 슬픔을 공유하고있음을 볼 수도 있으며, 결국 그는 필경사에게 감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직원을 차갑게 대우하던 그에게 바틀비의 저항이 감정적 변화를 주었다고 볼 수 있다.
《필경사 바틀비》는 비록 짧은 단편이지만 너무나도 심오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다.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도 있고, 기이하고 우중충한 작품의 분위기는 독자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바틀비는 무작정 일을 하기 싫어 거부한 것이 아니라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노동 시스템과 인간을 비인간으로 만드는 사회에 대한 의문과 비판의 목소리를 던졌다. 오늘날 인간들도 이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돈만을 숭배하는 물질만능주의, 직장과 자산의 서열화를 당연시하는 문화, 돈에 종속되어 끝없는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철학적·정신적 가치가 소홀한 세상.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작품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 삶의 목적과 이유가 무엇인가. 나 또한 세상을 향해 이렇게 외치고 싶다. 'I would prefer not to.'라고.
채식주의자도 소극적 저항이라던데 - dc App
곱씹을수록 인생이 좆같다는 생각이 더해지는 작품인듯
resive -> restive 형용사 격식 (특히 지루하거나 불만스러워서) 가만히 못[안] 있는 미국∙영국 [ ˈrestɪv ]미국식 [ ˈrestɪ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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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으면 쿠폰도 없으니까 미리 확인해놓고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