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6장
6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7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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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장 전체는 에서 후손의 족보입니다.
같은 조상과 신앙을 공유하면서도 분열될 수밖에 없는 사정이 7절의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라는 구절과 함께 드러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은 야훼 신앙에 대한 동경이 이스라엘 주변 민족에게 있었음이 확인됩니다.
현대 이스라엘의 농업은 서방의 지원과 악착같은 개발과 투자로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국토의 60%는 여전히 사막이고, 강수량은 우리나라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700mm 남짓이기 때문에 밀을 포함한 곡식과 사료 등 넓은 농토가 필요한 작물은 모두 수입에 의존하는 농업 순 수입국입니다. 수천 년 전 이스라엘 즉, 선주민의 기름진 땅을 차지하지 못해 유랑하던 시기 유대인에게 허용된 토지는 얼마나 황량했을지 간접적으로나마 유추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한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순금 같은) 승리'이고, 또 다른 아들 '르우엘' 역시 '하나님의 친구'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 신앙의 적통에서 배제된 후에도 신을 찬양하는 의미를 담아 아들의 이름을 지었던 에서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연관성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후에 할 테지만 <욥기>의 주인공은 분명 유대인이 아닌 '우스' 지역의 이방인이라 명시되었습니다. 또 그의 세 친구 중 한 명의 이름은 아예 '엘리바스'로 에서 아들과 동일합니다. 더 굥교로운 것은 그는 '데만 사람'으로 소개되는데, 데만은 에서의 아들이었던 엘리바스의 아들의 이름이라는 점입니다. 창세기 36장의 족보에도 후일 이 데만이 에돔 민족의 주요 갈래의 시조가 된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으니, 에서 후손의 야훼 숭배의 전통이 적어도 수 세대 후에도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저자의 특정한 목적 하에 편집되거나 창작된 부분이 많은 구약 성서 속에도 분명 이방인들에 대한 포용과, 민족 종교를 넘어선 보편 종교로서의 유대교의 가능성이 보이는 부분이 많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멜기세덱과 욥은 물론이고, 여호수아에 등장하는 여리고의 기생 라합, 모압 여인이었던 룻 등의 여인들은 구원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예수의 족보 속의 어머니가 됩니다. 주요 종교 중 적극적 전도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것이 유대교이지만, 요나는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성 전체의 이방인들을 구원하기도 했습니다.
에서의 자손은 선택받지 못한 이방인이 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야훼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때든 지금이든 그들의 이름을 잊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니느웨인까지 구원하라는 여호와의 명령에 저항했던 요나와는 다르게도.
족보 또 너야???? 아무튼, 적어도 욥기까진 연재해 주시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
성경은 그 울타리 속에 들어온 이방인을 잊지 않는다 말씀하신 부분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