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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는 철학자보단 예술가였죠 아마

제목이 반항론이 아닌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카뮈의 철학적 접근은 유동적이고 개방적인 것 같습니다 전통적 철학자랑은 좀 멀죠

이론적 틀과 논리적 체계로 개념을 고정하기보다 삶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직관적으로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인간 본질에 대해 명확한 정의나 엄격한 구조는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유동적이고 모호한 개념을 탐구하는데 집중하는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뭐 사람은 복잡하고 모순적이고 실존적 상황 아래에서의 반항을 찾는다면 명확할 수 있느냐 싶긴 해요


이걸 철학서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싫어지는 포인트인데 본인도 철학자도 아니고 철학서도 아니라 했었고

그렇게 생각 안하고 읽으면 인간적이고 맘에드는 에세이였구요


카뮈는 인간 본질에 뿌리내린 반항의 개념을 연대와 공동의 가치를 통해 확장시키며

반항의 모럴이 다소 허무주의적인 폭력과 테러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경계를 명확히 정했습니다

여기서 반항은 시지프 신화에서보다 나아갔고 개인적 반발의 영역에서 벗어났습니다

반항은 인간 본질의 보편적 가치확인이라고 생각할 있겠네요


반항하는 인간에게도 사회는 필연적인가봅니다

반항의 연대 개념을 확장시켜 살인과 테러를 정당화할 수 없는 이유를 연역해낸게 제일 단단한 논지였던것같습니다

이 공동체 구조는 필수적이라 공동체를 지키는 형태로써의 반항을 옹호하게 되는거같네요


폭력과 테러에 대해서 이 행위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경우, 그리고 이 예외를 정해야만 하는 필연성은 현실적인것 같습니다

처형에 반대하기 위해 살인을 할 수 있다는게 참 인간적이에요

그렇게 죽이고 나면 다음엔 스스로가 죽어서 정당화해야 한다는건 카뮈스럽고…

아무튼 폭력을 좀 제한적인 틀에 집어넣어야만 하긴 합니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폭력행위는 종국에 완전히 배제되어야겠죠 근데 이건 예언적인 성격인 감이 있고

결국 지금이라는 시의성 아래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예외가 있어야한다

라는건 명확한 통일에선 멀어도 현실이죠 나름

그래서 샤르트르랑 갈라섰나 싶구요

샤르트르가 원하는 마르크스적 사회, 국가 구조의 해체 이상향으로 가는 과도기에는

프롤레타리언의 필연적인 고통과 억압이 있을거니까요


저는 그래서 샤르트르가 실존을 위해 선행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게 구조적 해체라면

카뮈는 어떤 구조 아래에서던 반항이라는 개념을 견지하는 것 자체만으로 실존이라는 입장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카뮈편이구요

만약에 제가 기득권이었으면 샤르트르 편이었겠습니다


요즘 사회에선 개인이 스스로가 행하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다분한 것 같은데요

카뮈가 살았던 세상에선 국가와 명분이 폭력을 정당화한 문제였거든요

카뮈가 경계했던 반항의 허무주의적 폐혜가 오늘날 현실이 된걸까요?

아니면 자본주의의 필연적 억압구조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예외의 방향성이 어긋난걸까요?

(저는 공산당원이 아니구요 체제에 억압은 필연적이라 생각하는겁니다 오해말아주세요)


봉건제의 계급이 체제 아래에서는 계층이 되었고 신은 국가로 변모했는데

이 새로운 구조에서 결국 달라진건 뭘까 싶습니다


이 점에서 말은 참 공허하네요

현상을 정확히 포착할 수 없구요


국가의 경계가 흐려졌고 때아닌 종교전쟁을 하고있고

사람들은 사고를 인터넷에 의탁하는 세상입니다

이념 아래 조직된 학살이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데 세상이 체제와 이념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는게 아닌지


개인이 스스로에 대한 명철한 인식과 함께 거듭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있다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카뮈가 언급한 철학이나 각종 이념들을 제대로는 잘 모르고

학문적 성격의 작품에 대한 감상 정리를 제대로는 처음 해봐가지고

정리를 제대로 했는지는 모르겠네요


아무튼 카뮈빠인 저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