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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과 그에 따른 가치관의 붕괴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제 고리타분하게 느껴진다. 포스트모더니즘을 힐난하는 말들은 책 뿐 아니라 유튜브나 커뮤니티 등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그만큼 상대주의적 가치관이 도처에 널려있다는 의미이며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들도 적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그 중 포스트모더니즘보다 더 고리타분하지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기독교일테다. 위버맨쉬니 진화 심리학이니 하는 화려한 도구들로 가치 상실의 세기를 돌파하려는 노력이 무색하게 기독교는 태연하게 신적 질서를 논한다. 생각해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이 겨냥한 것들 중 대표적인게 기독교이니 당연하긴 하다.


이 책 『경이라는 세계』는 이 세계가 신이라고 하는 존재being의 사랑이 넘쳐 흐르는 곳이며 도처에서 마법적인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으니, 우리의 눈은 그러한 발견을 통해 경이를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럼으로써 베버가 근대사회의 특징이라고 주장한 '탈주술화'에서 다시 '주술화'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미신으로 복고하자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생동하는 것으로 재발견하자는 의미이다. 그러한 논리를 전개하기 위해 C.S.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를 길잡이 텍스트로 삼고 플라톤의 경이Thaumazein 개념, 하이데거의 존재 개념을 인용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 세계는 무관심한 원자들이 기계적으로 운동하는 곳이 아니다. 현상만이 존재하는 전부이며 배후에는 아무것도 없는 자명하고 투명한 세계가 아니다. 이 세계에는 신의 사랑이 깃들어 있다. 아니, 신이 그 자체로 사랑이다(요한일서 4장 16절). 그래서 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서 신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손길은 시계를 만드는 시계공의 손길이 아니라 리듬을 연주하는 음악가의 손길이다. 우리는 그러한 봄을 통해 경이를 느낀다. 세상은 신나는 곳이며 즐거움에 겨워 춤추기에 충분한 곳이다.


나는 비종교인으로서 이러한 논리를 믿지는 않는다. 경이라는 감정은 인간 종이 복잡한 환경에 적응한 결과 갖게 된 부산물이며 세상은 기본입자들의 상호작용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무신론자는 아니다. "왜 세상은 무가 아니라 유인가?"하는 하이데거의 유명한 말처럼, 존재에 대해 논하지 못하는 과학의 인식론적 한계 또한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비록 내가 기독교를 믿지는 않더라도 세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첨언으로 이 책은 아주 쉽고 친절하며 얇다. 종교에 호의적인 독자들과 기독교인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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