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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작가 서머싯 몸의 『면도날』은 1944년 발표된 그의 대표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의 화자는 서머싯 몸, 작가 그 자신이며 관찰자의 시점에서 본 주인공 '래리'라는 청년의 방황과 자아 찾기가 주요 소재이다. 면도날이라는 제목은 인도 경전 우파니샤드에 '면도 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마치 성경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태복음 7장 13절-14절)과 비슷한 맥락 같다. 즉, 이 책의 제목은 남들처럼 편한 길을 두고 좁고 힘든 구원을 향한 길을 걷는 한 순례자의 이야기임을 암시한다.

작중의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미국의 경제 호황기와 경제 대공황 시대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수많은 젊은 청년들과 사람들을 무의미한 죽음에 몰아넣었다. 한 뼘만 한 땅을 차지하기 위해 매일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총알과 포탄에 희생당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전쟁의 목적과 공포, 그리고 전후 찾아온 경제 대공황으로 인한 생존의 위협까지. 이 시기 청년들은 시대의 폭압과 운명 속에서 삶에 대한 회의와 공허함을 느꼈을 것이다. 래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공군 전투기 파일럿으로 참전했었는데, 전장에서 자신을 대신하여 희생한 전우를 목격한 일이 그의 인생 가치관을 완전히 바꾸었다. 남의 생명을 대신하여 살아갈 만큼 자기 삶이 가치가 있는 것일까. 도대체 인생이 무엇인가라는 고민이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대전과 대공황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던져진 사람들은 더 이상 세계가 이전과 같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를 잃어버렸다. 이전 세계가 추구하던 가치관과 정의는 무가치하고 폭력적임을 목격한 인간들은 기존 체제를 따르길 거부한다. 래리는 당시 사회에서 나름대로 정답을 찾고자 헤매었던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기존 사회규범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못해 어디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기를 선택한 그는 그시대 시대상에 상처받은 영혼의 모습 같다.

"자네 목표는 뭔가?"

그는 잠시 망설였다.

"바로 그게 문젭니다. 아직 목표를 모르겠어요."

(p.58)

"그럼 뭘 하고 싶은가?"

그는 매력적인 미소를 환하게 지어 보였다.

"그냥 빈둥거리고 싶습니다."

(p.60)

작 초반 화자와 래리가 나눈 대화에서 그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전쟁에서 돌아온 그는 좋은 일자리 알선도 거절한 채 독서에만 전념하며 도저히 삶의 방향성을 찾지 못한다. 남들처럼 사회에 복귀하여 일하고 돈을 버는 것은 전혀 고려사항에도 없다. 단순히 일하기 싫은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삶의 의미와 목표를 상실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대신하여 희생한 전우의 몫까지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과 전쟁의 폭력을 경험하며 깨달은 인생의 공허함, 생명의 허무함이 그가 앞을 보지 못하고 방황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남들처럼 세속적인 삶을 추구하며 안락한 평화를 즐기기보단, 고행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관이 생성된 것이 아닐까.

" 잘 생각해 봐, 래리. 남자는 일을 해야 해. 이건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고. 미국은 젊은 나라이고.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건 남자로서 하나의 의무야.

……앞으로 미국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1930년쯤 되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될 거래. 정말 가슴 설레는 굉장한 얘기잖아?"(p.81)

래리의 전 약혼녀였던 이사벨라를 비롯한 그레이, 앨리엇 등 주변 인물은 래리의 심리와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은 현실적인 금전문제와 물질적 성공을 추구하고 피상적인 인간관계와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중시한다. 이들은 단순히 표면적으로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 찌들어 물질만 추구하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넓게 보면 당시 사람들이 회의감을 느끼던 구태 가치관, 체제를 상징한다 할 수 있다. 1차 대전 직후 1920년대 미국의 풍요사회는 '광란의 20세기(Roaring Twenties)'라고 불릴 만큼 자본주의적, 물질적 가치가 번성하던 시대였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서 묘사되듯 이 시기를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내면은 타락하고 어수선했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 후 내면의 혼란을 겪던 래리에게 이 시대상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역겨운 시대이다. 내적 성장을 추구하는 그는 결국 미국을 떠나 동쪽을 향해 깨달음을 찾는 여정을 떠나고자 결심한다.

작품에서 래리 이외 등장인물들의 행적도 비중 있게 다뤄지는데, 그들도 각자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젊을 적 사교계에 몸담아 유명 인사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앨리엇은, 노년이 되어 아무도 찾지 않는 현실을 한탄하고 외로워하다 쓸쓸하게 사망한다. 오직 그와 가장 친하게 지내던 화자(서머싯 몸)만이 그의 임종을 묵묵히 지켜주고 안타까워할 뿐, 한때 화려한 삶을 살았던 이에게 다소 잔인한 최후이다. 그는 죽는 와중에도 자기가 아끼던 옷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뺏기지 않으려고 그 옷을 입고 관에 들어가는데, 끝까지 물질적 욕망을 버리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악하다고 볼 수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 같다.

또 다른 조연 인물인 소피는 래리처럼 사회 규범을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추구하지만, 영적 가치보다는 물질에 의존해 불완전한 모습을 보인다. 남들처럼 좋은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고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던 그녀는 한순간의 사고로 가족을 잃어 망가지게 된다. 이 점은 래리와 비슷하지만, 그가 내면의 성찰로 아픔을 극복하였다면 그녀는 술과 성적 자유로움이라는 물질적 욕망 추구로 사회 규범에 도전하여 자유를 추구한다. 그녀의 일탈은 근본적으로 회피와 쾌락이 뒤따르기 때문에, 자아를 갉아먹고 파멸에 이른다. 그녀는 마치 래리가 타락의 길로 빠지게 되었을 때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기성사회에 도전하여 자유를 추구하는 행위를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무분별한 일탈은 결국 무의미다는 경고를 그녀를 통해 조명한다.

래리는 끝내 인도에 도착하여 인도 종교철학을 수행하며 깨달음을 얻었다. 끊임없이 순환하는 영혼의 윤회, 자아(아트만)에 대한 담론, 만물의 고정적 영혼을 부정하는 무아(無我) 사상 등. 동양 철학은 그의 영적 초월을 이끌어준 중요한 소재다. 죽음에 의연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삶의 의미를 제시하는 동양 철학은 죽음의 공허함과 속세의 더러움에 지쳐있던 그의 영혼을 말끔히 씻어준다. 그가 긴 여정 끝에 내린 결론은 결국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비소에서 일하고 트럭 운전을 하겠다는 다짐을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와 화자에게 그동안의 여정과 결론을 얘기하는 장면은 오묘하면서도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듯한 허탈감도 느껴졌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무리 인생이 힘들고 살기 어려워도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이다. 자기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여 소소한 목적을 세우고 방향을 바로잡아 정진하는 존재는 얼마나 인간다운가. 날카롭고 고통스러운 면도날을, 좁고 험한 천국으로 이르는 길을 걸은 인간의 깨달음은 삶이란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또 한편으로는 래리라는 인물이 작위적이며, 작가의 가치관을 투영한 평면적인 캐릭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인생에 통달한 현자인 척, 영적가치의 중요성을 주장하며 돈에는 관심없는 척하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가식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서머싯 몸의 또 다른 작품 『달과 6펜스』의 찰스 스트릭랜드 같이 일부러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내세우면서 독자에게 교훈을 주려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렇지만 작가 본인이 화자로 등장하여 래리가 실존 인물이었던 것처럼 소개하고 관찰자로서 그의 표면을 독자에게 보여주는 독특한 작품의 형식은 과연 흥미로웠다.

최근 이 책이 유명세를 타 많은 사람들에게 알음알음 읽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오늘날 사회 또한 경제 불황과 취업난, 안보위협과 갈등으로 인한 불확실하고 암울한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사회가 불안할수록 염세적인 마인드와 내면에 집중하고 삶에 의문을 품는 정서가 커지는데, 대공황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심리가 오늘날의 젊은 층에게도 공감을 얻는 것 같다. 인류 문명 수천 년간 인생에 방황과 의문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고, 아무 고생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기에 래리의 인물상은 시대를 초월하여 가슴에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