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비(非)자본주의적 영역의 존재를 전제로 정상적 작동이 가능한 체제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는 두 가지 형태의 비자본주의적 영역과 관계를 맺어왔다:
- 17-19세기: 구체제(Ancien Régime)의 후봉건적 전(前)자본주의
- 20세기: 소련 중심의 체제적 반자본주의
조셉 슘페터(Schumpeter)가 지적했듯이, 자본주의는 자신의 진보를 가로막는 것들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동시에 자신의 붕괴를 막아주는 지지구조도 파괴했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시대에 부적합한 비자본주의적 형태가 제거되고 새로운 적합한 형태가 등장한 것이다.
세계화의 승리로 체제적 반자본주의가 제거되었으나, 이는 자본주의의 장기적 위기를 초래했다. 자본주의의 정상적 작동을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 산업자본주의와 그 도시적 생활양식을 통한 충분한 사회적 부의 창출
- 중심부-주변부, 메트로폴리스-식민지 간의 체계적 분업
- '긍정적 자본주의'와 '부정적 자본주의'의 공존
세계화는 이러한 조건들을 파괴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해체를 가속화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자본주의 지배계급이 의식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해체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징후들에서 확인된다:
- 민주주의적 제도의 약화
- 공법적 영역의 축소
- 정치와 행정 체계의 퇴행
- 국민국가의 쇠퇴와 글로벌 금융자본의 강화
이러한 변화는 1975년 『민주주의의 위기』 보고서 이후 기업국가가 추진해 온 오랜 프로젝트의 결과다. 이들은 자본주의라는 체제적 제약으로부터 자본을 해방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자체를 해체하고 있다.
기업 국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러한 전략을 채택했다:
- 지구적 자원의 감소
- 인구 증가
- 중산층에 대한 대응
이는 16세기의 '체제적 일탈'(systemic transgression)과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자본주의 해체는 더욱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연구기관들이 이른바 '강철군화'(Iron Heel) 세계관을 위한 지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단순한 자본주의의 위기가 아닌, 지배계급에 의한 자본주의의 의식적 해체와 새로운 지배체제로의 이행이라는 역사적 국면에 직면해 있다. 이는 미래의 탈자본주의적 세계의 성격을 규정하기 위한 상층계급과 중산층 간의 투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현대 자본주의는 그 내부로부터의 해체 과정을 보이고 있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반자본주의 세력이 아닌,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부에서 시작되었다.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은 '자본 해방'이라는 기치 하에 자본에 대한 모든 제약을 제거하고 있으며, 이는 20세기의 어떤 좌익 운동보다도 효과적으로 자본주의의 토대를 침식하고 있다.
세계화는 자본주의의 죽음을 상징한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완성은 동시에 그 종말을 의미한다. 세계화는 핵심부의 평화를 가져왔고, 체제적 반자본주의를 제거했으며, 주변부 사회의 저항 가능성을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그러나 이러한 승리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모순을 심화시켰다. 세계적 이윤율의 지속적 하락, 비자본주의적 영역의 소멸, 그리고 이로 인한 내부적 착취 강화의 필연성이 그것이다.
지배계급은 이러한 상황에서 특권과 부의 보존을 위해 자본주의라는 체제적 제약으로부터의 '이탈'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약화, 시민사회의 쇠퇴, 국민국가의 해체, 그리고 소위 보편적 가치의 퇴조로 나타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러한 변화가 무작위적이거나 자연발생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의 종말이 아닌, 자본주의적 제약으로부터 해방된 새로운 형태의 지배체제의 등장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중산층 및 기타 사회계층과의 전면적 대립을 수반할 것이다.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