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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스필드 파크」는 기대보다 훨씬 재밌는 작품이었다. 더부살이가 고귀한 사랑을 이루는 신데렐라 식의 클리셰는 이제 흔한 것이 돼버렸다. 하지만 「맨스필드 파크」는 다양한 사건들이 나오고, 이 사건들 하나하나가 패니를 둘러싼 관계들을 흔들고 패니의 성장을 도와준다. 다채로운 사건들을 쫓아가느라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고, 패니의 성장을 흐뭇하게 지켜보느라 진부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맨스필드 파크」가 「오만과 편견」보다 내 취향에 맞았다.

나는 「맨스필드 파크」를 연애 소설보다 패니의 성장을 그리는 교양 소설로 본다. 패니는 보면 볼수록 신비한 매력을 가진 주인공이다. 패니는 주도적인 인물은 아니다. 교착 상태에서 행동으로 상황을 역전시키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은 패니가 답답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패니의 처지를 볼 때, 인내 외에 다른 방도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맨스필드 파크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지만 결국 친가족은 아니고, 신세를 지고 있는 형편에 호의를 베푸는 사람의 뜻을 함부로 거스르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노리스 부인이 이 사실을 매우 불쾌하게 귀띔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패니는 매사에 순종적으로 임하면서도 자신의 운명을 뒤흔들 우려가 있는 사건에 직면하면 굳세게 나온다. 상대의 의지에 맞서 싸우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순종하지도 않는다. 미적지근하게 보일지라도 시간을 끌어서 상대가 인식을 스스로 바꿀 기회를 비축하는 것이다. 기다림에 한해서 패니는 이모부의 권위, 에드먼드의 감언에도 흔들리지 않고 단호하게 임한다. "사실 그분이 나한테 관심을 보인다고 해도, 그것도 분명 일시적인 감정에 불과할 텐데, 그런 이유만으로 억지로 관심을 갖고 싶지는 않았어요. 내가 어떻게 사랑 고백을 받는 즉시 사랑에 빠질 수 있겠어요? 그분이 원하기만 하면 사랑으로 응답할 준비라도 되었어야 하나요?" 이 말을 할 때는 아예 패니가 다른 사람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패니의 태도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요즘에는 자유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진 탓에 권위에 대한 저항이 오히려 미덕이 된 것 같다. 부당한 운명은 물론 거부해야겠지만, 나는 무턱대고 저항하다가 결례를 범하거나 일을 키우는 실수를 많이 목격했다. 이런 때 패니의 처사를 본받는 것이 정말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은혜를 베푼 사람에 대해 자신도 최대한의 도리를 다해 보은하려 노력하되, 자신의 운명을 뒤흔들 폭풍에는 휩쓸리지 않고 바람이 스스로 가라앉을 때를 굳건히 기다리는 태도를 나도 배우고 싶다.

한편 「맨스필드 파크」를 읽으며 선행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헨리는 패니의 마음을 사기 위해 오래 묵은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패니의 운명에 분명히 결정적인 사건이었으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패니는 그 선행 뒤에 숨겨진 헨리의 본성을 알고 있기에 어떤 달콤한 회유와 모범적인 선행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패니가 너무 고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얻기 위해 선하게 변해가는 듯 보이는 헨리를 조금은 믿어보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처럼 헨리는 결국 본색을 다른 곳에서 드러내고 말았다. 헨리의 실패는 선행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든다. 결과가 좋다고 다는 아니다. 결국 선행을 하는 사람이 선인(善人)인지가 중요하다. 진정으로 선한 행동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마음을 사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한, 헨리의 선행은 위선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행은 드물다. 따라서 헨리의 선행을 전부 비하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다. 하지만 패니가 운명의 폭풍우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헨리가 패니의 착한 마음씨에 진정으로 동화하여 진정한 선인으로 거듭났다면 애초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필귀정이라는 말은 선악을 가리지 않고 적용되는 법이니까.

다만 패니를 둘러싼 모든 일들이 바르게만 흐르지는 않은 것 같다. 패니는 맨스필드 파크에 살면서 상류층의 습속에 길들여진 탓인지 본가를 천박하게 보는 것 같았다. 그 점이 아쉬웠다. 패니가 본가에 있던 시절에 어떻게 지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본가에 계속 머물렀더라면 패니도 그 시끄러운 일가의 장녀로서 소란을 당연하게 여겼을 것이며 어쩌면 패니 자신도 소란의 원인이 됐을지도 모른다. 패니와 본가 사람들 사이에, 오랜 격리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생긴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당대의 신분 질서가 엄격했다고는 하지만 친가족 사이에도 그런 장벽이 생기는 것은 내 감성으로는 너무 받아들이기 어렵다.

어쩌면 제인 오스틴이 패니에게마저 흠결을 남김으로써 인격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당대의 폐단을 돋보이게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맨스필드 파크」도 제인 오스틴의 작품답게 당대의 사회상에 대한 풍자가 정말 많다. 러브 스토리를 그리는 척하면서 결국에는 재산을 밝히는 메리, 상류층으로서 매사에 체면을 살리려는 토머스 경, 너무도 쉽게 깨져버린 마리아의 정략결혼... 결국 당대의 사회상 자체가 개인(특히 여성)의 자유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이 속에서 여성이 그나마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면, 「오만과 편견」의 첫 문장처럼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를 낚아 남편의 재산으로 자유를 누리는 방법이 가장 좋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행동은 악하다는 말보다 약다고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성녀 같은 패니마저 이런 속물적인 굴레가 어느 정도 의식에 배었다는 점이 아쉬우면서도 현실적인 것 같다.

슬슬 감상문을 마무리하려 한다. 마침 「맨스필드 파크」의 마무리 부분(패니의 혼사)에서 좋은 문장들을 찾았다. "이 혼사는 이미 바라던 바였다. 야심과 재력 위주의 혼사에 질릴 대로 질리고, 원칙과 성품이라는 진정한 재화에 더 큰 가치를 두게 된 데다, 이제 자기한테 남은 가정적 행복을 가장 확실하게 모두 확보하고 싶은 마음도 컸고, 그간 두 젊은이가 각기 겪었던 갖은 실망을 보상해 주고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 줄 가능성이 있다고, 아니 가능성 이상이라고 진정 흡족한 마음으로 생각해온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결혼을 허락해 달라는 청을 기꺼이 수락하고, 패니를 며느리로 맞는 것은 대단한 보물을 얻는 격이라고 믿어 마지않았으니, 이런 모습은 일찍이 이 가련한 어린 소녀를 데려오자는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그가 보인 입장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시간은 인간의 계획과 결말 사이에 언제나 이런 차이를 빚어내, 당사자에게는 깨달음을, 그리고 이웃들에게는 재미를 준다." 마지막 문장이 모든 교양 소설마다 느껴지는 즐거움을 잘 말해주는 것 같다. 「맨스필드 파크」는 재밌으면서도 흐뭇한 이야기였다. 패니가 바르게 성장하는 모습, 자신이 바라는 운명을 얻기 위해 견디던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패니는 내가 좋아하는 여주인공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