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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의 작가로 유명한 허먼 멜빌의 또 다른 중편 소설 《선원 빌리 버드》는 전시 영국 해군에 강제 징집된 선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허먼 멜빌 특유의 만연체와 서사와 관련 없는 장황한 다른 이야기, 기독교적 색채와 인간 군상을 담고 있기 때문에 《모비딕》의 느낌이 약간 나면서 멜빌 다운 소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작품에서 묘사되는 빌리 버드는 순수함과 아름다은 몸을 가진 선원이다. 선악과를 먹기 전 아담과 같이 때묻지 않은 심성을 지는 그는 모든 선원들에게 사랑받고, 화합 분위기를 만드는 데 능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런 특성 때문에 해군 장교에게 눈에 띄어버려 본래 상선에서 근무하던 그는 영국 해군 벨리포텐트함으로 강제징집된다. 그 배에서 부사관 클레거트에게 모함을 당해 우발적으로 그를 살해, 사형을 당하기까지 이야기가 이 작품의 주요 소재이다.
빌리 버드에게서 예수의 모습이 떠오른다. 작품에 기독교적 은유와 인용을 즐겨 쓰던 작가의 성향을 고려해 본다면, 보통 인간을 초월한 순결함과 사랑, 박해와 인류를 위한 자기희생이라는 모티프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겹쳐 보인다. 예수는 인간들의 원죄와 구원을 위해 태어나 무조건적 사랑과 가르침을 설파하였으며, 인류를 구하고자 박해와 죽음도 무릅쓰고 고고한 순교를 받아들였다. 그의 죽음은 신성시되어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종교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각종 창작물의 모티브가 되고 있다. 빌리 버드는 사형을 당하는 순간에도 하느님의 어린 양처럼 부드러운 광채를 띤다던가, 목이 매달린 몸이 몸부림치지 않고 평화롭게 죽었다고 하는 등 아름답고 장황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묘사된다. 활대에 매달려 사형당한 그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처럼 성스럽다. 심지어 죽기 전 유언으로 '비어 함장님께 하나님의 은혜가 있길!(God bless Captain Vere!)' 라고 외치는데, 자신을 죽게 만든 이를 전혀 원망하지 않고 축복을 비는 그는 원수도 사랑하라는 예수의 사랑과 자비가 느껴진다. 사랑과 용서, 그야말로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희생한 구원자의 이미지다. 예수의 순교로 인해 기독교가 받아들여지고 널리 퍼졌듯, 빌리 버드의 죽음은 선원들 사이에서 어떠한 성스러운 감정을 고조시키고 전설로 남아 살아있게 된 것이 아닐까.
반면 빌리 버드를 모함하는 클레거트는 예수를 탄압하던 박해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7대 죄악에 해당하는 교만과 질투를 상징하는 듯하다. 별다른 특별한 이유 없이 빌리를 싫어하여 그가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모함한 클레거트는 신성과 순수함을 더럽히는 악마의 화신이다. 루시퍼가 하늘에서 떨어져 타락 천사가 된 원인을 그의 하느님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 신성에 대한 의심이라고 흔히 말하듯이, 클레거트는 빌리를 시기하는 악의 상징이다. 빌리가 우연히 뻗은 주먹에 맞아 한 방에 죽은 그는 마치 천벌을 받는 것과 같다.
벨레포텐트함의 비어 함장은 빌리의 우발적인 살해를 눈 감지 않고 사형으로서 군기 확립을 주장한다. 함장은 인간적으로 빌리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우발적이어도 살인 행위를 법대로 처벌하지 않는다면 배의 질서와 체계가 무너질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고통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 또한 빌리가 얼마나 순결하고 훌륭한 인간임을 잘 알고 있지만, 스스로 박해자의 역할을 자처하여 그를 처형한다. 마치 그의 죽음이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던 것처럼 함장의 역할 또한 필연적인 악역 같은 느낌이다. 성경에서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간 본디오 빌라도가 떠오르는 인물이다. 빌라도가 예수가 무고함을 알면서도(누가복음 23장 22절: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대중을 두려워하여 그를 사형에 처하게 했듯, 함장은 법과 정의에 얽매여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인간의 법과 정의가 인간의 순수성과 충돌할 때,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떠오른다. 하지만 오히려 죽음으로 인해 빌리의 가치가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고난을 당하지 않았다면, 기독교가 이렇게까지 번영할 수 없었을 테고, 자기 신념을 위해 목숨도 내놓는 고귀한 순교자들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마찬가지로 질서 확립을 위한 사형에 이의를 달지 않고 순순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빌리는 너무나 고결하고 존귀한 인간의 가치를 모든 인류에게 설파하기 위해 태어나, 죽음으로 목표를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존재이다.
이 작품을 읽고 톰 행크스 주연 영화 《그린마일》이 생각났다. 누명을 쓰고 들어온 사형수 '존 커피'와 교도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 또한 예수의 순교를 모티브로 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을 행하고 악이라곤 전혀 찾을 수 없는 순수한 때묻지 않는 이 사형수는 빌리 버드와 닮은 모습이 있다. 점점 그의 기적에 감화되어 누명을 벗겨주려는 교도관들의 노력도 마다하고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존 커피와 사형 집행을 망설이는 교도관의 모습은 예수의 죽음이 떠올라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빌리 버드 또한 작가의 기독교적 사상과 신념이 투영된 인물로서 진정한 인류애, 박해와 사랑, 용서와 자비라는 가치를 말하고자 한 것 같다.
그 외에도, 전시 강제 징집과 국가 권력에 의한 개인의 인권 침해에 대한 사회적 비판 시선도 느껴졌다. 19세기 영국 해군은 부족한 수병의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바다에서든 육지에서든 아무나 무력으로 끌고 와 강제 징병을 했었다. 원치 않게 끌고 가면서 정당한 대가 없이 다루며, 그저 노예 취급하면서도 그들을 믿지 못해 폭력과 통제로 감시하고, 이 때문에 수병들의 불만과 선상반란이 빈번하던 사회였다. 이들의 노고를 전쟁의 영광, 국왕에 대한 봉사로 포장하던 이 시대에 작가는 권력과 권위에 의한 인권침해를 비판하고자 기독교 모티브를 차용한 것 같다. 거대한 국가 권력에 의한 개인의 희생, 질서 및 정의와 인권 사이 합의점 같은 윤리적 문제를 종교적인 사랑과 순수성을 함유한 인간으로 조명한다.
《선원 빌리 버드》는 멜빌의 작품답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과연 미국 현대 문학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고, 기독교 사상이 우세하던 19세기 미국 그 자체인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또 다른 걸작 《모비 딕》을 다시 펼쳐서 읽어 보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다.
영화 <아름다운 직업>이 이거 각색한 거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