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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하기로 결심했을 때 처음 꺼내든 책은, 원래 '노인과 바다'가 아닌,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이었다. 이를 선택한 이유로, 첫째는 따로 도서관에 갈 필요 없이 집 책장에 꽂혀 있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어렸을 적 한번 완독을 한 경험이 있기에 독서를 가볍게 시작하기에 좋은 발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있던 책은 특이하게도 '동물 농장'과 '1984'가 함께 실려있었는데, 한 번의 독서로 두 가지 이야기를 취할 수 있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위해 목차를 펼친 순간, 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작은 글씨가 내 눈에 들어왔다. '1984년 - 다이제스트 판'. 의구심이 들어 검색을 했더니 1984는 다른 이야기와 함께 실릴 수가 없는 분량이었다. 내가 읽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 실은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과 다름없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고, 이내 내 안에서는 작은 투지가 불타올랐다. 그렇게 나는 손에 쥔 책을 덮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대략 1984년. 오세아니아 전역에는 빅브라더가 텔레스크린을 통해 사람들을 감시하며 지배하고 있었다. 윈스턴 스미스는 하급 당원으로서 기계의 톱니바퀴 같은 삶을 살아가며, 이러한 체제에 불만과 의문을 품고 있었지만 결코 소리 높여 말하지는 않았다. 조금이라도 낌새를 보이는 순간 사상1경찰이 그를 찾아와 이 세상에서 '증발'시킬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오브라이언과 눈을 마주친 것을 계기로, 그는 과거 골동품점에서 샀던 공책 위에 일기를 적기 시작한다. 나아가 줄리아와의 만남을 통해 그는 진정한 인간으로서 삶의 기쁨을 느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했던 대로 사상1경찰이 나타나 그를 연행한다. 사랑부으로 끌려간 그는 갖은 고문을 당하며 몸과 마음이 으스러지지만, 인간으로서 가진 순수하고 본원적인 감정만은 지켜내고 있었다. 그러나 감시를 통해 개개인이 무엇을 극도로 혐오하는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들은 윈스턴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두려운 것으로 고문하려 하자 윈스턴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마음을 배신하고 만다. 그렇게 모든 것이 그들의 뜻대로 통제되어 그는 인간이 아닌 영사의 꼭두각시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고, 자신의 바보 같던 망명 행위를 후회함과 동시에 뒤늦게 깨달은 빅브라더의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며 죽음을 맞이한다.
책장을 덮었을 때 오싹한 기분이 온몸을 감돌았다. 암울하면서도 참담한 결말에 압도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묘한 기시감이 내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기 때문이다. 1부 중 빅브라더가 신어 편찬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사임이 말하길, "표현할 말이 사라지면 사고의 폭 또한 좁아진다." 이는 내가 이 독후감을 쓰고 있는 이유를 정확하게 관통하고 있었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이 슬로건은 아직까지도 지나간 역사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며 싸우고 있는 우리에게 더욱 통렬하게 느껴졌으며, 텔레스크린을 통해 감시하며 위험 분자를 '증발'시키는 시스템은 우리와 인접한 '어떤' 국가들이 강하게 연상된다. '빅브라더'라는 용어도 단순히 소설 속 허구가 아닌 이제는 통제와 억압, 독재의 대명사로 종종 쓰이는 것을 보며, 출간된 지 70년도 더 된 작품이 아직까지도 우리 삶 속에서 회자되고 있는 것은 이 작품이 얼마나 선구자적인 가치를 가졌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와는 별개로 작품 내적으로는 몇 가지 개인적인 의문점이 강하게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인지하면서도 인지하지 못하는, 거짓인 것을 알지만 그것을 진실로 믿는, 없던 일을 있던 일로 만들고 있던 일을 없던 일로 만들어버리는, 아주 모순적인 단어인 '이중사고'는 디스토피아 독재의 핵심이며 반드시 필요로 하는 능력이지만, 이는 나에게 '판타지'스럽다고 느껴졌다. 또한 101호실의 고문은 단순히 일반적인 고문의 연장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며, 사람이 위기에 처하면 '누군가'를 찾게 된다는 그들의 변명에 대해서도 납득하기 힘들었다. 다만 이런 의문에도 불구하고 1부의 숨 막힐 듯 갑갑한 분위기 속에 윈스턴의 불안과 의심을 한순간에 깨부숴 버린 줄리아의 쪽지는 덩달아 내 가슴도 뛰게 만들었고, 그들의 일탈은 우리가 당연시하고 있는 지금의 일상이 얼마나 멋지고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번 일깨워 주고 있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고문이라고 하는 것은 굴복을 목적으로 하는 협박이라고 생각했건만 굴복이 아닌 계몽을 위해 고문을 한다는 그들의 말은 내게 매우 파격적으로 들렸으며, 결국 사상 개조를 당해버린 윈스턴의 최후는 억울하고 나약한 죽음보다 더한 비극이었다. 최고의 마무리에 감탄이 절로 자아나지 않을 수 없었다.
1984가 왜 고전 명작이라 불리는지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는 나에게 조지 오웰과 디스토피아에 관한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조지 오웰 또 다른 대표작 '동물 농장'과 디스토피아의 또 다른 명작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글을 쓰는 것은 여전히 힘들지만, 슬슬 독서가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
+) 여담으로 '사상1경찰'이 금지 단어로 설정되어 있던데 적었다고 문제 되는 건 아니겠죠?
이중사고나 오세아니아를 보고 북한 중국 러시아를 떠올렸다면 다음에는 한국 미국 유럽도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