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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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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증. 뉴스거리, 씹을 거리, 세금을 타 먹을 정치 제도적 수단이고, 핑계가 되는 것. 21세기 인신 공양의 제물이 되는 것. 누군가에겐 가족이고 친구이고, 누군가에겐 비극이며, 누군가에겐 그 조차 축복일 수 있겠으나 절대로 겪고 싶지 않은 일. 모두 다른 사람에게 건너 듣는 이야기들이다. 당사자의 시야는 철저하게 배제되어있다. 이 병의 특징은 고립이다. 생물학적 문제로 인해 여러 측면에서 정상적인 소통이 힘들다. 그 결과 사회에서 고립된다. 사회적 문제가 생물학의 문제를 방치하고 악화시키기도 한다. 문제는 고립의 원인이 단순히 사회가 그 사람을 거부한다는 데에 있지 않고, 이 병 자체가 외부 세계를 거부하는 병이라는 데에 있다. 자폐증 환자의 신경 체계는 과잉과 결핍이 얽혀있다. 감각의 과잉 때문에 우리가 대수롭지 않아 하는, 너무 사소해서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들도 그들에겐 너무 과하다. 외부 세상과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정서’ 라는 것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세상이 끊임없이 자신을 구타하는데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인지적, 정서적 결핍은 고립을 악화시킨다. 세상의 혼란이 정돈될 리가 없다. 껴안는 행위조차 감각 체계를 과도하게 자극하여 고통을 줄 수 있다. 어머니의 포옹마저 아플 수 있는 그들에게는 인간이 무언가에 집중할 때 생기는 신경 물질이 유일한 동아줄이다. <어느 자폐인 이야기>는 당사자가 쓴 구원의 이야기이다. 그녀의 이름은 템플 그랜딘이다.

자폐증은 신경의 비정상적 발달이라는 생물학적 원인을 공통으로, 감각의 과잉과 결핍에서 기인하는 무신경함과 집착증, 신경 발작을 증세로 갖는다. 무엇에 무신경하고 무엇에 집착하고 언제 신경 발작이 일어나는지는 환자 개인의 신경학적 상태와 경험, 환경에 따라 다르다. 이 비정상적 일상성이 자폐증 환자들 특유의 고립성을 악화시킨다. 신경학적 지식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자폐증세를 고치기 위해 행동주의 치료, 정신분석, 정신 지체 진단 등이 이루어졌다. 현재의 기준으론 오진에 불과했던 당시의 치료법들은 많은 자폐아의 사회적응을 방해하기도 했다. 안 그래도 어려운 일을 더 어렵게 만드는 일 역시 선의로 이루어질 때가 많다. 그것을 선의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그것은 명분에 불과할 때도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명분이란, 무의식적 억압의 표출을 정당화하거나 악의를 숨기는 수단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반면 보이는 그대로의 인과가 중요한 자폐증 환자에게 명분은 타당한 논리이며 행위의 근거이다. 어린 그랜딘은 교사가 분필로 어떤 학생을 가리키자 극도로 화를 냈다고 한다. 집에서 뾰족한 물건을 눈에 가져다 대는 행위가 위험하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녀에겐 정당한 행동이었다. 그녀에게 세계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세상뿐이다. 그 이면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러한 자폐적 논리는 보편적 인식과 충돌한다. 어른들의 가르침과 청소년기 또래들의 놀림은 자폐적 논리로만 환원되어 그녀가 고립을 자초하게 하기도 했다. 어린 그녀는 보이지 않는 선의도, 숨겨진 악의도 이해하지 못했다. 심화되는 고립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더 어렵게 만들고, 혼란스러운 주위 환경은 신경을 어지럽힌다. 자폐아는 소음으로만 가득 찬 외부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적 세계로 도피해야만 한다. 고착증은 일종의 방어기재다. 고착증은 다시 고립을.. 고립이 다시 어려움을... 가중된 혼란은 고착증을... 고착증은 다시..... 보편적 인식 안에는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선의와 명분으로 숨긴 악의, 둘 모두가 포함된다.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선의에는 어떻게 보답할 것이며, 악의에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녀의 감각 수용 패턴에 맞추어 훈육을 이어갔던 어머니와 이모, 교사와 의사들의 정성 덕분에 사회적 행동의 필요성을 점차 익혀나갔음에도, 이해로의 도약은 불가능해 보였다.

한편 그녀는 올리버 색스의 책 <화성의 인류학자>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룬 자폐증 환자 사례 중 하나로 등장한다. 이미 사회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성공한 인물이었던 그랜딘은 올리버 색스와 무서울 정도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다. 그녀는 동물들과 교감하면서도 도축업의 생리를 이해하고 윤리적 도축의 길을 턴 선구자이기도 했다. 그녀는 도축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녀는 코요테에게 물려 죽는 닭을 예시로 들며, 도축이 도태보다 훨씬 인도적인 처사임을 주장한다. 윤리적 도축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각종 동물 심리학 연구는 물론, 본인이 직접 도축 트레일러와 농장 구조를 설계한다. 도면도 직접 그린다. 그녀는 성공적인 산업 디자이너가 되어있었다. 삶의 연속성을 차치해보고 말하자면, 이 모든 성과는 서른 살 즈음을 기점으로 시작 되었다. 다시 삶의 연속성을 가져와 보면, <어느 자폐인 이야기>가 이 간극을 메워준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마태복음, 요한복음. 성경의 말씀들. 이야기의 형태를 띤 가르침. 어느 날 저녁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나온 그랜딘은 문자 그대로의 해석을 실행에 옮긴다.

“그 후 며칠 동안 나는 사랑과 환희가 열릴 수 있는 문을 찾았다. 옷장 문, 목욕탕 문, 앞문, 마구간 문 등 모든 문들을 열심히 관찰했으나 나의 기대에 어긋났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숙소로 걸어가는 길에 기숙사 건물 확장 공사를 하고 있는 곳을 발견했다. 일꾼들은 그날 일을 마치고 돌아갔다. 나는 증축하는 곳을 두리번거렸다. 그 곳에는 사다리가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책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사다리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갔다. 작은 플랫폼이 4층 건물 밖으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고 그 곳으로 나갔다. 거기에 문이 있었다!”

그 문을 열자 벌어진 하나의 경험은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의문들, 이해로의 도약들. 이해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서 고요하게 존재하는 하나의 깨달음. 상징의 실제적 구현을 통해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된 순간이었다. 자폐증 환자는 집중해야 한다. 과도하리 만치 집중해야 한다. 그 때 뇌에서 분출되는 신경 전달 물질이 그들의 혼란스러운 감각을 안정시켜 준다. 꼬여있는 신경과 그로 인해 과잉되고 결핍한 감각이 그들의 정서를 저해하기 때문에 자폐아는 감각의 안정화를 무엇보다도 필요로 한다. 꼬여있는 신경을 인정하고 감각을 안정시킬 수 있을까? 감각이 안정화된다면 어머니의 포옹도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나도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 사랑을 경험한 자폐아들은 완전히 치료될 수 있을까? 이해로의 도약이 이루어진 구원의 순간, 그 구원 이후에 벌어진 이야기는 증명으로의 여정이다.

“그 압박기가 나를 편하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도록 나를 부추겼다. 이것은 나의 괴상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닌 실제적인 것이었다. 내 일상에서 처음으로 나는 학습의 의미를 느꼈고 학습의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았다. 가축 압박기의 압력시 어떻게 놀란 소를 진정시키고 나의 신경을 안정시키는가? 나는 이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그녀는 압박기라는 기구를 통해 감각을 안정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을 꿈꿨다. 압박기라는 아이디어에 집착했다. 가축에게 사용하던 기구가 자신에게 효과가 있음을 증명하려는 여정이 동물 심리학으로, 산업 디자인으로, 나아가 자폐아들의 치료로 이어졌다. 자폐증 특유의 고착증을 수단으로 삼아 자폐증 자체를 극복하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읽어볼 수 없는 독특한 감동을 전해준다. 압박과 사랑의 역설적 관계로부터 그녀는 이제 삶과 죽음, 신과 도덕을 고찰한다. 템플 그랜딘이 묘사해나가는 세계에 대한 이해와 증명의 이야기는 단순명료하며 또 진솔하다. 그녀는 자폐증 치료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나도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데 권력이나 돈에는 관심 없어요. 죽은 뒤에도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 거지. 이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요. 그래야 내 삶도 의미가 있죠. 그게 바로 나라는 존재의 핵심이라고요”

올리버 색스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 당황스러운 울음을 터트렸던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존재의 두려움을 치유한 듯하다. 그런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신경 체계가 보여주는, 보이는 그대로의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녀의 세계에서 ‘그렇게 보인다’는 말이 ‘그렇다’ 라는 말과 같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