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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까치발을 들어 올려다보면 꽂혀있던,
아버지 서재에 무거운 벽돌 책 중 하나.
아버지의 그림자를 밟기 위해,
언젠간 넘어야할 큰 산이라고, 어린 나는 항상 생각했었다.
이책은 19세기 초, 나폴레옹 시대에 살았던 러시아 귀족들의 삶을 다룬다. 중간 중간 나오는 로맨스는, <오만과 편견>과 결이 비슷하여 <오만과 편견>을 지루하게 읽은 나같은 사람에겐, 다소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우스터리츠, 보로지노 전투현장의 생생함과, 나폴레옹, 알렉산드르 등 역사적 인물을 직접 만나보는 듯한 재미에 이 책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똘스토이는 각 캐릭터마다 각각의 개성을 부여하고, 그러한 그들만의 성격과 가치관이, 전쟁이라는 이벤트를 겪으며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책 중간 중간마다,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역사는 무엇에 의해 창조되는가?’
우리가 역사학을 논할 때, 흔히 역사속 일정한 기간을 상정하여, 그 시간 속에서 벌어진 어떠한 사건을 하나의 주제로 묶는다. 대공황, 1,2차 세계대전, 나폴레옹 전쟁 등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역사는 연속적인 것이어서,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그러한 ‘주제’들이 언제 시작되며, 언제 끝나는 지에 정확한 구분점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주제들의 원인은 무엇인지, 무엇이 그것들을 촉발시키는 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역사학은 아직(1860) 내놓지 못했다는 것.
2차 세계대전의 시발점과 종결점을 탐구한다 가정해보자.
우선 2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을 2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
히틀러인가, 혹은 독일 국민의 의지에 의한 것인가?
히틀러는 왜 전쟁을 일으켰는가?
A.히틀러는 본인의 사상, 즉 아리아인 우월주의에 심취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독일 국민을 선동하고 세뇌했다.
Q.그렇다면, 히틀러가 아닌 다른 인물이었더라도, 독일 국민을 선동하여 비슷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어찌하여 독일 국민의 전체 의사가 아닌, 히틀러 개인이 모든 일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가?
톨스토이:히틀러는 결국, 독일 국민의 전체 의사의 표지에 지나지 않으며, 운명적으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던 거대한 움직임(2차 세계대전)의 일부에 불과하다. 파도를 타고 해변에 휩쓸려온 조개가 파도의 원인이라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조개는 파도의 발로일 뿐이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어떤 극단적인 관점에선, 히틀러는 독일의 일개 병사보다 2차 세계대전에 기여한 부분이 적다 할 수 있다. 히틀러는 명령만 내렸을 뿐이지, 직접 전투나 생산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촌평이 내내 이어진다.
결국, 역사학의 가장 깊은 논의에 다다르면, 역사의 흐름은, 권력자들의 언동에 의한 것인지, 혹은 필연적인 운명과 그것에 따른 다수의 의지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앞서 톨스토이는, 나폴레옹, 히틀러와 같은 권력가들은, 결국 일정한 역사의 방향성에 붙여진 표지에 불과하며, 그들이 곧 원인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대신, 밭을 일구고 직접 창검을 들어 적진에 뛰어들었던 이들의 의지의 총합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그러한 의지의 총합을, 세세하게 미분하여, 일개 병사와 농부의 용기, 공포, 슬픔, 분노, 행복까지 다다랐을 때, 그 미분값들의 원인은 또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곧 인간의 자유의지와 운명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그러나, 자유의지와 필연성(운명)에 관한 논의조차, 역사학의 가장 근본적인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어떠한 사건에 개입된 자유의지와 필연성의 비율을 논할 때, 그것은 결국 과거의, 즉 역사학의 큰 범주 내에서 논의되기 때문이다.
어느 사건의 자유의지와 필연성을 따질 때, 다음 3가지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1.사건의 주체와 환경 간 관계
2.어떤 사건과, 해당 사건이 논의되는 시점 간 시간 차이
3.원인과 사건의 결과 간 관계
이 3가지에 관한 깊은 이해와 더불어, 인간의 자유의지와 필연성에 의한 구속력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있기 전엔, 역사학은 막연한 사건들의 나열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가 살던 과학혁명의 시대엔, 과학의 한계와, 신에 대한 부정에 관한 논의까지 이어질 것이다.
이쯤에서 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인간이 떠올릴 수 있는 것엔 한계가 있어서,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봤자 다 하는 말은 다 똑같다는 것. 그러니 양의 허영심에 빠지지 말라는 것.
이 책도 그렇고, 다른 책도 마찬가지인 것은(물론 본인이 세상의 모든 책과 사상을 양지한 것은 아니지만), 탐구의 깊이가 끝에 이르러, 가장 본질적인 것을 건들게 되면, 결국 그 맛이 확 식어버린다. 가장 작은 단위까지 미분하면, 그 이상의 개진은 연역법보단 귀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니까.
흠
마침 읽으려고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개추. 며칠 걸림?
1시간에 50페이지 정도 읽어서 대충 33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