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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데라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언제나 소설 속 인간의 실존을 강조해왔다. 삶의 이면에 스며든 유희, 좁은 구석에 놓인 작은 유머, 총체적으로 봤을 때 무의미에 가까운 몸짓들은 그의 소설의 핵심이었고 다른 소설가들의 소설에서도 탐구를 시도한 주제였다.

모든 소설은 개인이, 혹은 특정 집단이 존재함을 드러내야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영역을 탐색해야한다. 그렇기에 과거의 단순한 반복은 무의미하며 현실의 인간들의 삶과 동떨어진(여기서 마술적 리얼리즘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의도적으로 실제와의 괴리감을 통해 현실을 효과적으로 부각하는 것과 그냥 현실과 동떨어진 것은 다르다) 내용은 지양되어야 마땅하다.

이것은 비단 소설에만 해당하지는 않는다. 쿤데라의 마지막 에세이 《만남》에서 그는 이전까지 주장한 자신의 소설적 지향점을(완전히 같은 방식은 아닐지라도 그 장르의 특색에 맞게) 다른 장르의 예술에 대해서도 주장한다. 미술에서는 프랜시스 베이컨을, 음악에서는 베토벤과 야나체크를, 영화에서는 펠리니 등을 언급하며 그가 나아가야할 길로 여기는 예술가들을 소개하고 그들이 보여준 예술적 탁월함에 찬사를 보낸다.

《만남》의 내용 중 1/3은 이전 에세이에서도 다룬 그의 소설적 철학에 대한 것이다. 또 다른 1/3은 제목 그대로 그 영혼 곁에 존재하는 훌륭한 예술가들에 대한 존경과 평가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마지막 1/3은 쿤데라가 현대 사회의 예술에 대해 표하는 희망, 그리고 실망이 드러난다. 에세이의 제목과는 반대로 그 내용은 헤어짐이 부각된다.

쿤데라의 이전 어떤 에세이보다도(그나마 비교하자면 《배신당한 유언들》이 가까운 정도일 것이다) 이 에세이집은 작가의 의견을 단호하게 주장한다. 스스로의 가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유럽인들, 기술적 가치에 목을 맨 영화광들 등 그의 기준에서 비예술적(또는 키치함)에 속하는 대상들에 작가는 주저하지 않고 비판을 가한다.

책의 끝으로 갈수록 쿤데라는 현대의 주류 예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어찌 보면 상당히 보수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나는 상당히 동의하는 바이다. 지금의 주류 예술이 미학적 가치보다는 수용자의 즐거움에 관점을 두고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지 않은가? 쿤데레에게 예술은 여전히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탐구하는 영역이나 앞으로의 사회에서 그런 일은 더욱 적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뭐가 됐던 간에 나는 쿤데라를(그리고 그의 주장을)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에게 새로운 소설의 길을 제시해준 작가가 쿤데라이니 말이다. 《만남》을 마지막으로 그의 에세이는 끝이 났고 앞으로 새롭게 읽을 쿤데라의 책이 두 권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