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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을 읽은 것은 스포일러 때문이었다. 문학적 기법에 대해 알아보던 중 생뚱맞게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의 결정적인 트릭을 알게 됐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이 나란히 꽂혀 있는 책장을 지날 때마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이 괜히 눈에 들어오고, 또 괜히 스포일러가 생각이 난 것이다. 결국 트릭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는지는 모르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는 판단하에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을 직접 읽고 깔끔하게 미련을 털어내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나의 판단은 들어맞았다. 사실 스포일러가 너무 결정적이어서 범인이 누군지는 금방 알아챘지만, 그러고도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과 추리를 도대체 예측할 수 없었다. 그래서 포와로의 회색 세포를 따라가는 재미는 전혀 죽지 않았다.

평소에 나는 감상문을 쓸 때 줄거리에 대해 말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만큼은 개인적인 유감 때문에라도 스포일러를 되도록 흘리고 싶지 않다. 이 책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다른 것은 '절대' 찾아보지 말고 그냥 이 책을 바로 집어 들라고 말하고 싶다. 400쪽가량의 책이지만 몰입감이 엄청나기 때문에 금방 읽게 돼 있다. 추리를 따라가는 것도 어렵지 않다. 다만 포와로보다 먼저 상상하기 어려울 뿐이다. 

그래도 명색이 감상문이니 나의 감상을 쓰지 않을 수는 없다. 우선은 전반적으로 오싹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비밀이 절대 있을 수 없는 시골의 폐쇄적인 분위기, 저마다의 욕망으로 동상이몽에 잠겨 있는 인물들... 누구의 말도 단번에 믿을 수 없어서 결말을 내심 짐작하고도 끝까지 긴장감을 갖고 읽을 수 있었다. 또 궁지에 몰린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모두가 서로를 아는 시골에서도 정 하나로만 일이 돌아가지는 않는다. 각자의 사정이 각자를 압박한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 정감 따위는 제쳐두고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는 이런 갈등을 담은 심리극으로서도 인상적이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읽는 것은 처음이다. 범인이 누군지를 알면서도 끝까지 숨죽이게 읽을 수 있어서 놀랍다. 다른 작품도 읽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