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어는 한자로 만들어진 단어를 말하는 것이지 구어냐 문어냐를 알려주는 말이 아니다. 둘을 헷갈리는 것은 범주 오류다.
'현현하다'가 일상어가 아니라서 부적절한 번역이라면 '이데아'는 그럼 일상어인가? '비유'라는 말을 냅두고 굳이 '메타포'라는 말을 꼭 써야겠는가?
하루키가 일상어를 의도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루키의 일상어'는 한자어와 외래어를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다. 뉴욕 생활을 통해 미국 문화를 접하고 영미권의 지적 문화를 일찍부터 흡수해온 하루키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다음으로 번역의 문제. '추상적이고 언어적인 관념이 일정한 형태를 얻어 물질세계에 구체화/시각화하다'라는 뜻을 정확하게 가리키는 단어가 한국어에서 '현현하다'라는 한자어 외에 다른 대안이 있는가?
'나타나다'라는 말을 제안했는데, 사전적인 의미로는 맞지만, 이럴 경우 '나타나다'의 다의성이 문제가 된다. 아무런 맥락 없이 책 부제에다 냅다 '나타나다'라고 쓰면 그 단어는 '현현하다'라는 뜻으로도, '등장하다'라는 뜻으로도 읽힐 수 있다. 플라톤이 이데아라는 개념 자체를 주창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이데아'인지, 이데아라는 관념이 특정 상징으로 물화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이데아'인지 알 수가 없다.
근데 뉴욕이 맞던가 모르겠네 걍 미국 생활이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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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라 하루키 본인이 현현하다 라고 안썼다는 게 가장 중요. 다른 건 다 잡썰임
하루키 본인은 '나타나다'에 대응하는 일본어 고유어 단어 역시 쓰지 않았음. 이 논쟁은 국한문 혼용을 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듯.
하루키 본인이 나타나다 라고 (아라와레루) 라고 썼음. 그걸 일반적으로 쓰는 현 자가 아니라 좀 어려운 현 자로 썼을 뿐이지 그런다고 단어 뜻이 바뀌는 건 아님
그거야 시각적으로 한자의 도움을 받았으니 가능한 거고. 좀 어려운 현 자를 쓴 거랑 '나타나다'를 '현현하다'로 쓴 거랑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범주오류가 아니라 동양권에서 문어가 될수록 한자어가 되고 서양권에서 라틴어 그리스어화 되는 건 그냥 일반현상임. 그리고 마지막 문단에서 나온 나타나다의 다의성은 어차피 그걸 일본어 원문으로 읽어도 동일한 상황이므로 논점일탈이고 메타포나 이데아는 작가가 그 단어를 썼기 때문에 그대로 한국어로 옮긴 것 뿐이므로 더더욱 논점일탈임
너가 말한 경향성이 있는 건 알겠는데, 일상에서도 한자어 충분히 많이 쓰고 학술 용어에서 무리하게 '일상어'를 도입하려다 오히려 '일상'에서 멀어지게 되는 경우도 숱하게 많지 않더냐.
각설하고, 현현 전이를 무슨 대단한 문어체로 보는 것이 잘못이란 소리다. 먹물 좀 먹고 허세 좀 들고 문화 적당히 아는 자들에게 충분히 일상어가 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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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현 전이를 한글로 쓰니까 문제임 한문으로 병기하던가
책 표지에다가 대문짝만하게 그렇게 하면 너무 추하지 않겠냐. 이건 도무지 다른 방법이 없다. 국한문혼용도 싫다. 난 지금 이외의 다른 대안을 도저히 생각해낼 수가 없다.
한문으로만 쓰면 되지 그럼 실제로 옛날엔 그렇개 썼음 그게 더 있아보임
꺼져
이건 나도 원글에 동의함. 오늘 독갤에서 언급되기 전엔 모르던 거지만, 그냥 '나타나다'를 쓰려면 現われる를 써도 충분했을 것을, 같은 발음이지만 굳이 顕れる를 썼기 때문임. 그래서 '현현하다'는 꽤 잘 고른 단어라고 봄.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