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0장
5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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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벧엘의 사다리 꿈으로 선택된 자라는 확신을 얻고, 라반 밑에서 일할 때의 얼룩무늬 가축의 꿈으로 재산을 늘릴 지혜를 얻었습니다. 요셉은 곡식단과 천체의 꿈으로 자신이 10명의 형을 제친 선택과 사랑을 받은 존재라는 확신을 얻고, 꿈을 해석하는 지혜로 노예이자 죄수로 전락한 현실을 전환시킬 뿐 아니라 타인과 인류를 구할 힘까지 얻습니다.
요셉의 감옥 동료는 파라오의 술과 떡을 담당하는 관리들입니다. '애굽 왕에게 범죄'했다는 설명이 붙지만 암살 음모나 음식의 흠결 같은 중범죄였다면 절대 권력자인 파라오가 그들을 감옥에 넣는 수준으로 처벌했을 리는 없습니다. 변덕스러운 수위의 나일강에 국가와 자신의 권력의 흥망을 걸고 있는 이집트의 파라오의 위태롭고 예민한 내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실제 이집트의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의 흥망이 모두 나일강의 수위 변화와 일치한다는 것은 상식이며, 한반도의 역사 속에서도 흉년과 가뭄은 의례히 왕의 잘못이 그 원인인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쓸 때는 물론이고 읽을 때도 이집트 만한 왕정국가를 세우지 못했음에도 절대 권력의 속성을 파악한 저자의 혜안이 더욱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파라오가 자신들에게 어떤 처분을 내릴 지 두려워하는 관원들의 모습은, 여호와의 알 수 없는 뜻 앞에서 두려워하는 유대인이나 예측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떠는 보편 인류의 불안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아무리 든든한 왕좌나 신전도 그것을 인정하는 이들의 믿음 위에서만 유지될 뿐입니다. 좀 다른 결의 생각이지만 여호와의 보좌와 그의 '내면'은 어떨까요? 일반적인 생각처럼, 혹은 곧 등장할 모세에게 했던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당당한 선언처럼, 절대적으로 완전하고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은 자족적 상태일까요? 역시 한참 후에 등장하긴 하지만, 이사야서 43장 21절의 신의 고백은 이런 맥락에서 한 번쯤 생각해 볼만 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그들이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박수와 환호와 찬양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신.
아무튼 보디발을 섬기고 감옥에서 보낸 13년 이상의 시간은 요셉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아버지의 차별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미 날카로워진 형들 앞에서 그들을 폭발하게 할 꿈 이야기나 하던 색동옷을 입은 철부지가, 타인의 '근심의 빛'을 알아챌 만큼 사려깊고 이타적인 인간이 된 것입니다.
관원들의 불안을 감지한 요셉은 그들이 꾼 꿈을 해석해 술 담당 관리의 회복과 떡 담당 관리의 사형을 예견하고 이는 곧 실현됩니다.
관리들은 사흘간 어떤 심정이었을지 궁금하더라고요. 저자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신에게 가치있는 존재이길 바랄테니, 이사야서 43장 21절의 내용을 쓴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근데 생각해보니 이건 안하느니만 못한 말 같고 제 사견으로는 만약 신이 있다면, 사람들에게 사랑받길 바라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이 전체라는 가정 하에, 사람이 신을 사랑하는 것은 신에게 자기애와 같은 것일 테니까요. 스스로, 홀로 존재하는 자라면, 더더욱 자기애가 필요할 거고...
다만 그건 기독교적인 신이랑 좀 다른 거 같긴 하네요
저는 어릴 때 "어휴 시발 요셉 이새끼 아가리좀 닥치고 있지 왤케 깝쳐서" 이 생각 먼저 함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사춘기 소년의 치기처럼 "야 시발 저새끼 좆같은데 골탕 좀 먹여볼까?" 이러고 자기들이 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도 모르는 채 요셉을 판 형들이 자꾸 밟힘 집 가서 아직까지도 무슨 일을 저지른건지 모른 채 야곱한테 "요셉이 죽었어유 ㅠㅠ" 했더니 멘탈 나가서 빨개벗고 눈 뒤집힌채로 꺼이꺼이 우는 아버지를 봤을 때의 충격과 비로소 피부로 다가오는 '동생이 노예상에게 팔렸다'는 현실
그래서 전 나중에 베냐민을 인질로 안잡히려고 읍소한 형들을 보면 그게 진정 동생을 사랑해서 그리고 아버지를 사랑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소년기에 각인된 공포 때문으로 읽힘 그래서 이제는 심약한 아버지가 또 다시 너무 큰 슬픔에 빠져 그만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X) 요셉을 잃었을 때의 아버지의 모습이 재현될 것 같은 공포 (O)
재밌는 분석입니다. 확실히 철 들기 전의 요셉은 호감이 가는 성격은 아니죠. 성경을 장난스럽게 요약하자면 딱히 구원받을 자격도 없는데 구원을 갈망하는 금쪽이들의 연대기,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