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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1장
8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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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 절대 군주의 술과 빵을 담당하며 늘 불안에 시달리는 관리들처럼, 파라오의 꿈자리도 마냥 편안하진 않습니다.

선대 왕들의 역사와 왕사들로부터 배운 교육, 그 자신이 초조한 눈빛으로 매년 8월 무렵의 나일강의 범람 징후를 관찰하던 경험이 잠 못 이루는 파라오의 의식에서 뒤섞입니다. 

사실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도 풍요와 빈곤의 대비가 확실한 이미지의 꿈을, 인류 역사 최초의 태양력과 토지 측량법, 피라미드 등 가공할 규모의 건축 기술까지 가졌던 이집트의 지성인들이 해석하지 못했다는 것은 여러모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름다운 메세지와는 별개로 어디까지나 픽션에 불과할 요셉 이야기의 한계일수도 있겠으나, 어쩌면 그 현인들 모두 다가올 흉년을 예감했으나 이를 대비할 대안을 내놓길 두려워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는 오랜 시간 자신의 식사를 담당해온 가장 친숙하고 신뢰하는 신하들도 하루 아침에 감옥에 가두고 목 매다는 왕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들 앞에 현실보단 꿈의 세계, 즉 바람과 신념과 이상의 세계에 익숙한 자인 요셉이 등장해 꿈을 해석하고 그 해결책까지 제시합니다. 그 지혜에 이미 매혹당한 왕 앞에서 '명철하고 지혜있는 (다른)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라 말하는 겸손 역시 본래의 요셉을 생각한다면 놀라운 부분입니다.

아버지 야곱이 받은 계시와 지혜는 가축의 수를 늘려 그와 가족 정도의 목숨을 구하고 부유하게 하는데 그치지만, 요셉의 계시와 지혜는 이집트는 물론 중동과 북아프리카 인근의 인류를 구하는 능력으로 성장했습니다.

여호와가 받는 제사를 드릴 줄 알았지만 농토를 선점한 카인에게 무력하게 살해 당하던 아벨, 폐쇄적 선민의식으로 가족 외 인류의 살해를 사실상 종용했던 노아, 조카 롯이 소돔에 살고 있음에도 죄악으로 인해 멸망당할 때까지 그들을 회심시킬 시도는 하지 않았던 아브라함 등 수동적이고 고립된 유대인의 영향력과 세계관이 조금씩 더 보편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성장은 적어도 구약 안에선 더 이상 지속되거나 심화되진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