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내용? 은 아니지만..
서론(넘겨도 됨)
<키 재기>, <십삼야> 같은 서정적인 작품들을 남긴 근대 작가, 5천 엔 지폐 도안의 주인공으로도 알려진 히구치 이치요 기념관에 갔습니다
(히구치 이치요의 삶에 대해 짧게 설명하자면..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어린 나이에 소녀 가장이 되어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쓴 작가였어요. 본격적인 작가 생활을 한지 약 14개월 만이었던 23세에 병으로 죽었고요.)
그런데.. 이게.. 기념관 위치가 좀 에바더라고요
역에서 꽤 많이 걸어갔어야 했고 뭐 이런곳에 있나 싶은 뜬금없는 곳에 있었고요
입장료도 300엔. 일본에서는 문화 관련 시설에서 이정도 관람비를 내는게 보편적이지만, 사실 한국 기준으론 절대 싸진 않죠
그럼에도 히구치 이치요의 작품과 인생 스토리를 좋아해서 기대를 했는데 !
영어 텍스트가 거의 없었습니다.
아니 오면서 많이 걷고 해서 힘들기도 했고 다시 돌아갈 생각에 좀 많이 허탈해지더라고요..
혹시나 영어 설명을 기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을까 싶어서 “ 저 혹시 히구치 이치요에 대해서 궁금한게 있는데요.. ” 하고 직원 분께 여쭤봤더니, 잠시 안에 계신 어느 분과 대화를 나누셨어요. 그러고는 “ 일본어 하실 수 있나요 “ 하고 물어보셨는데 전 그냥 씹덕 베이스로 듣는거 정도밖엔 못해서.. 못한다 그랬죠
그랬더니 안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나오시더니 일본어로 자기소갤 하시는데..
본론
제가 일본어를 전혀 못하다보니 잘은 모르겠지만 대충 들어보니 관장님 같더라고요 아마도..?
저를 옆에 있던 책상에 앉히시길래 이거 엄청 재밌는 일이 되겠다 싶었네요
대체로 영어로 대화를 했지만, 저희 둘다 영어를 그리 잘하지 않기도 하고 해서 번역기 바디랭귀지 다 써가면서 거의 한 시간동안 대화를 했는데 그 내용을 왠지 독갤 분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 보기 편하게 조금 수정해서 적어봤어요. Q가 저, A가 관장님이에요.
Q) 여기에 외국인들도 많이 오나요, 온다면 어떤 분들이 오나요?
A) 정말 가끔 와요. 올 때는 중국인, 한국인 위주로 오긴 했네요.
Q) 히구치 이치요는 일본 내에서 얼마나 유명한 작가인가요? 그녀의 작품이 교과서에도 있는걸로 알고 있는데요.
A) 그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어요(번역기에 그렇게 떴지만, 잊혀졌다는 의미 같았어요)
Q) 미시마나 오에 같은 작가와 비교한다면요?
A) 미시마나 오에가 훨씬 알려져있죠. 왜냐면 그녀는 pre-modern(이거 근대로 번역하면 되나요?)의 작가이고, 미시마나 오에는 모던의 작가니까요.
Q) 아, 작품의 평가나 그런것 보다는 시간이 히구치 이치요를 잊혀지게 한거군요?
A)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한국에서는 히구치 이치요의 소설들은 번역이 되어 있는데, 편지나 일기들은 번역이 안되더라고요. 이유가 뭘까요? 양? 번역 난이도?
A) 일단 고어체라서 번역 자체가 어려워요. 현대 일본인이 읽기에도 쉽지가 않을 정도로요.그리고.. (옆에 있던 책상에서 히구치 이치요의 일기와 편지를 가져오셨다) 양이 엄청 많아요. 한 번 보세요.
Q) (사실 일본어 못읽지만 훑어보다가) 어? 이건 시네요. 하이쿠인가요?
A) 와카에요. 하이쿠와는 다른 전통 시입니다.
Q) 히구치 이치요가 시도 많이 썼나보네요.
A) 네, 무척이나 많은(수백인지 수천인지 기억이 잘) 와카를 썼답니다.
Q) 우와, 그 짧은 기간에 이렇게나 다작을 했군요! 그런데 고어로 쓰이기까지 했다니, 왜 번역이 힘든지 알 것 같아요..
A) 맞아요. 외국어로 번역하기가 어려울거에요.
Q) 제가 알기로 히구치 이치요는 다른 직업도 있었던 걸로 아는데(상업에 종사했단 말을 들은 적이 있음) 어떻게 작가까지 병행했을까요? 그리고, 그녀가 전업 작가였던 시기가 어느정돈지 궁금해요.
A) 글쎄요, 히구치 이치요에겐 다른 직업이 없었어요(아마 정기적 수입의 직업이 없었단 말씀 같음. 가게에서 잡다한 물건들을 부업으로 팔았단 걸로 알고있어서). 메이지 시대에, 여성이 할 수 있는 직업에는 제한이 있었기에 히구치 이치요는 글을 썼답니다.
Q) 저는 히구치 이치요가 어느 남성의 청혼을 거부했다고 들었어요. 이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A) 그 남성은 히구치 이치요 아버지의 지인이었어요. 그녀의 아버지가 죽고 난 후, 그녀를 후원하고자 그렇게 했던거죠(이게 정확히 이해한건지 몰겠음)
Q) 히구치 이치요가 죽은 후에, 그녀의 가족들은 인세를 많이 받았나요?
A) 거의 받지 못했어요.
Q) 헉, 어째서죠? 저작권에 관한 법이 없어서일까요?
A) 그녀가 작가로서 돈을 번 시기가 몇 달 되질 않았거든요..
Q) 슬픈 이야기네요..
A) 맞아요.
Q) 질문이 두 개가 남았는데요, 히구치 이치요 소설 중에서 (바다대벌레, 나 때문에 두 종류의 제목으로 번역됨), 그리고.. 그 뭐더라.. <무라사키>(우라무라사키를 의도했는데 단어가 기억이 안났음. 국내에는 해질 무렵 무라사키, 배반의 보랏빛 등으로 번역됨)
A) 무라사키 시키부?
Q) 아뇨, 이치요 소설 제목 중에서요
A) 아! <우라무라사키> !
Q) 네! 맞아요. 그 두 소설은 한국에서 너무 다양한 타이틀로 번역되어요. 뭐가 맞는 번역일까요?
A) 음, 일단 고어라서 이걸 외국어로 번역하는건 사실상 불가능해요. 하지만 의 경우에는, ‘From me’ 로 번역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Q)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제 정말 마지막 질문인데요..
A) 허허헣(생략해서 써서 짧지만, 이때쯤 이미 한 시간 지났었음)
Q) 이것은 히구치 이치요에 대한 질문은 아니지만, 제가 읽을 만한 일본인 작가를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저는 미시마 유키오를 최근에 아주 재밌게 읽었는데요(근데 질문 의도가 전달이 안된 것 같음)
A) 아니, 미시마를요?
Q) 네.. 한국에선 요즘 20대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긴가쿠지 같은거..
A) 이야, 일본에도 당신같은 청년이 많아야 할텐데.. 요즘 미시마도 히구치 이치요처럼 잊혀지고 있거든요.
Q) 세상에.. 한국에는 독서 매니아들 사이에서(독갤러들 사이에서) 정말로 미시마가 인기있어요.
A) 오, 친구들이 미시마를 읽어요?
Q) 음.. (독갤러들이 친군가..?) 네! 책 읽는 친구들은 미시마 한번씩은 다 읽었어요. 근데.. 번역 속도가 느려요. <풍요의 바다> 시리즈 몇 년 만에 <달리는 말> 나왔는데, 다음꺼 아마 또 몇년 기다려야 할거에요.. 번역이 어려운가봐요.
A) (아마 영단어 Translate 정도만 들으신듯) 거기 정말 우수한 번역자가 있나보네요.
Q) 네. 한국에도 일본어 잘하는 사람 많은 것 같고, 일본에도 한국어 잘하는 사람 많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붙어있으니..
A) 저는 번역글은 작가의 작품이면서 번역가의 작품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Q) 그런 것 같아요. 최근에 대한민국에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잖아요..? 그런데 한강만큼 주목받는게 또 번역자더라고요..
뭐 이런 이야기를 하다 왔는데..
미시마나 오에 같은 작가가 잊혀지고 있다고 말씀하시는게 좀 슬프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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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도 잊히기 시작한 시대라니
오에는 미시마보다야 덜하겠지만.. 순수문학 자체가 잊혀지는 시대같아요 ㅜ - dc App
도안도 이젠 바뀌어서 점점 사라질 거 생각하면.. 먹먹하다 짧게 살다 간 인생만큼 앞으로 4년쯤 후엔 구권도 찾아보기 힘들겠지. 딱 그만큼이네 24년
참 이런 이야기 할때마다 슬프네요 흑.. 불멸하는 작가들이 대단하게도 느껴지고요 - dc App
이리보니 문스독이 고전 작가들을 되살린다는 말이 개소리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이러닌데 제 주변에서 히구치 이치요 아는 분들은 전부 문스독 덕후들이긴 해요.. ㅋㅋㅋㅋ - dc App
너무 재밌는 글이당ㅋ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dc App
히구치 이치요 단편 번역된 걸로 읽어봤는데 많이 아쉽긴 하더라. 번역 잘 되면 좋겠다 정말로
ㅜㅜ 번역 자체가 무척이나 어렵다는걸 엄청 강조하시더라고요.. - dc App
글이 너무이상해서 원문 뒤져봤는데 못알아먹겟던 ㅋㅋ
소세키 같은 작가들은 번역 잘만 되는거 보면 히구치 이치요 본인 문체도 엄청 난해한가보네요 ㅋㅋㅋ - dc App
단순 시대 문제를 넘어서서요! - dc App
네 당시에 언문일치로 글쓰는 게 유행이자 일종의 시대정신이기까지 했는데 히구치 이치요는 의도적으로 고어체로 썼으니까요. 이 사람 번역에 있어서만큼은 동시대 다른 작가들과는 또 다른 접근법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렇게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번역해서 돈이 될거냐 하면 그렇지도 않으니 참 안타깝네요
근대적인 내용을 담은 전근대적인 문체의 글이라니.. 역자 입장에서 정말 노력이 필요할 것 같긴 하네요 ㅋㅋㅋ - dc App
등신같은 질문 날리는 국내 기자들보다 인터뷰 실력 백배는 낫네
허허헣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dc App
뭐 아쉽기는 하지만 바로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들을 알아서 정말 다행이지 뭐야
이거 정말 좋은 말 같아요..!! - dc App
ㅋㅋㅋㅋ 검샏하다왔는데 뜬금 미시마 언급하는거 개창피하네
중략을 좀 많이 했는데, 그때 관장님이 다른 일본 작가 인용을 좀 많이 하셔서요! 대체로 일문학 전체에 관한 이야기 흐름 안에서 갑자기 생각났었네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