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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코너스톤)


  이 글은 특별히 할 말이 많지 않다. 굳이 말하자면 수재였던 소년의 짧았던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가 부를 나눴으니, 각 부에 대한 짤막한 설명을 해보자.

  배경은 1800년대 후반 독일, 작은 소도시.

  1부. 주인공 한스는 갖은 고생 끝에 수능*에 합격한다.
  * 정확히는 수능이 아니라 주립 신학교에 합격했지만, 느낌이 비슷하다. 온 동네가 합격을 축하하고, 아버지가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는 점에서, 정서적인 측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2부. 한스는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방학을 보낸다.
  방학을 즐기진 못했다. 주변의 모든 ‘선생님’들이 그를 ‘선행교육’ 해준 탓이다.
  때문에 한스는 마지막 방학마저 공부에 시달린다.

  * 여기서 짐작했겠지만, 한스는 친구라고 부를 놈이 없다. 그냥 없다.

  3부. 신학교에서도 외톨이였던 한스.
  하지만 그곳에서 우정을 만나니, 그 대상은 ‘하일너’다.
  허나 하일너가 교칙을 어겨 독방에 갇히는 일이 있었을 때, 한스는 ‘남들에게 잘보여야 한다’는 생각 끝에 그를 찾아가지 않는다.

  4부. 한스는 하일너와 화해하고, 그와 이전보다도 더욱 친한 사이가 된다.
  하일너는 훌륭한 시인의 재목이었다. 달리 말하면, 공부에는 큰 재능이 없었다.
  본래 모범생이었던 한스도 그런 하일너에게 영향을 받아, 점점 공부에 손을 놓게 된다.

  하지만 하일너가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한스는 학교에서 완전한 외톨이가 되어버린다.

  5부. 학교는 공부에 재능을 완전히 잃어버린 한스를 ‘휴학’ 조치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한스는 과거, 자신이 어렸을 적 ‘동심’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을 찾아가지만(동네 이야기꾼 아주머니의 이야기, 거리의 악동 친구들)
  그들은 죽거나 없어져 있었다.

  한스는 과거로 돌아가지 못할 것임을 절감한다.

  6부. 한스는 우연히 소녀와 만나 풋풋한 사랑을 하지만, 소녀는 한스를 버리고* 떠난다.
  *한스 개인의 착각이라고 판단해야 한다. 한스는 얘와 한 것이 키스 뿐이다.

  7부. 한스는 아버지의 소개로 공장에 취업한다.
  공장에 다니며 회식을 하던 중 술을 너무 많이 먹어, 실족사한다.

  짤막하게 쓴다고는 했는데, 이게 이 이야기의 전부다.

  라고 하면 작가에게 너무 미안하니, 뭐라고 좀 주절거려 보겠다.

  읽으며 좀 아쉬웠던 점은, 이걸 좀 어렸을 때(그러니까 중고등학생 때) 읽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다.

  줄거리 요약을 봐도 느끼겠지만, 이것은 교육제도(또는 사회의 제도)가 어떻게 한 사람을 망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반짝이는 희망이 있던 아이가, 그 주변의 압박에 무너지고 부서지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것을 고발하는 이야기다.

  주변의 무신경한 기대*가
  * 중산층의 아들로 태어났으면 신학교에 가서 목사나 교수를 하라는 기대

  억압적인 교육 시스템*이
  * 친구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교장이 직접 불러내서 훈육하는 시스템

  사회의 제도*가
  * 수리공을 하든, 뭘 하든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는 제도

  재능에 빛나던, 어쩌면 천재가 됐을지도 모를 아이를,

  어떻게 죽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아주 친절한 소설이다. 때문에 아래와 같은 표현으로 이를 설명해준다.

  “아버지와 몇 명의 교사들, 그리고 학교의 잔인한 야망이 이 부서지기 쉬운 존재를 이 지경이 되도록 끌고 왔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도대체 왜 한스는 가장 예민하고 위태로운 소년기에 매일 밤늦게 공부해야 했을까?

  어째서 그는...(중략)...라틴어 학교 친구들과 놀지 못하고, 낚시와 뛰도는 것을 금지당했을까? 대체 왜 어른들의 천박하고 소모적인 야망에서 비롯된 공허하고 이기적인 이상을 꿈꾸어야 했을까? 왜 시험이 끝나고도 당연히 즐겨야 할 방학을 누릴 수 없었을까?

  그동안 너무 혹사당한 망아지는 이제 바닥에 쓰러져 쓸모가 없어졌다.”

  그리고 한스가 죽은 뒤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한스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데에는 저 무리들이 부추긴 것도 있습니다. ...(중략)... 우리가 그 아이에게 너무 소홀하지 않았습니까?”

  이 소설은 어쩌면 한스에 대한 아주 긴 추도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ps. 그래서 대체 왜 “수레바퀴 아래서” 임? 이라는 질문을 할 사람들을 위해.

  이 소설에서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너무 지쳐버리면, 수레바퀴 아래에 깔려버릴지도 모른다네. 한스 군.”

  그러니 너무 지쳐버린 한스가 수레바퀴(제도, 시스템, 기대)에 깔려 죽어버린 것을 지적하는 제목, 이라고 생각하면 편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