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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 112p)
"악마는 병들었고, 이제 병든 악마는 성자가 되리라."
그러나 약해지는 순간에야말로 우리가 건강할 때보다 훤씬 강력한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약해진 순간에는 유아기의 암시에 저항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렇지만 이런 유아기의 암시가 여러 가지 능력을 충분히 갖춘 성인의 확고한 신념보다 나은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근거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원기를 잃지 않은 순간에 건전한 이성이 판단을 내린 신중한 확신을 규범으로 삼아야 한다.
내가 어린 시절에 뭔가 남들은 다 누리는데 누리지 못 한 요소가 있다고 하자. 여러가지 있을 수 있겠음, 내 장래희망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환경들의 제공, 학업중단, 따돌림, 비행 청소년 경험 등등.
보통 사람들은 남 사정을 헤아려보거나, 아니면 말 할 때 당시는 헤아리지 못했더라도 나중에 마주한 상대의 컴플렉스를 건드린 것으로 드러난 말 - 즉, 예의가 없는 말에 대해서 기꺼이 사과할 수 있는 능력들이 상당히 부족하기 때문에.
(사과를 하면 오히려 자기 자신의 자존감에 대해 주위에서 많이 인정해서, 결과적으로 더 많은 자존감을 챙기고 내적으로 배우는 계기가 된다는 생각 - 자체가 자존감이 스스로 높다고 생각해야 할 수 있기에 여러모로 슬픔.)
요컨데 사람들은 말 함부로 하고 행동 함부로 한다는 말임.
어린 남자들이 특히 이런 것에 대해 자기가 유쾌한 줄로 아는 경향이 심한데, 외모면 외모로, 체형이면 체형으로, 학력, 또는 게임실력... 자기보다 못한 것 같기 때문에 일단 장난같이 끌어온 다음 (자기를 낮추지 않으면서 남들을 웃길 수 있기 때문에, 참 즐거운 요소라고 할 수 있음. 욕 듣는 상대만 '하하하...' 하고 넘어가면 모두 즐겁기 때문임.), 그걸 걸고 넘어지면 "왜 분위기 싸해지게 그러냐?" 하는 꼴이 아주 흔함.
"니 예전에 ~ 했었잖아 ㅋㅋ 기억 안 나냐?"
기억이 안 나겠습니까. 당사자가 제일 잘 기억하겠지.
문제는 그 기억이 당사자에게 어떤 형태로 기억돼있을지, 가령 나는 내가 웃기게 된 행동들에 대해선 나 스스로도 븅신이라고 생각해서 웃고 넘어가려고 하는 편인데, 이렇게 생각하는 나 조차도 '이런 얘기'들만 하면 기분나쁜데,
하물며 자신의 그런 과거나 실수들을 '부끄럽게' 또는 '절대 극복 불가능한 무엇' 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지.
이런 것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더 분명하게 깨닫는게, 정말 내 그 부끄러운 사실을 일부러 상기시켜서 나를 끌어내리고 심리적으로 지배하려는 [의도]를 무의식간에 구사하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고(그런 사람들은 좀 위험하지), 오히려 대부분의 그런 행동들을 하는 사람은 아무 생각이 없다는 거임.
자기 스스로 그 행동이 정말 '재밌는' 줄 암.
나이가 중~고등학생 이러면 내가 무어라 하지 않겠는데, 20대 후반을 바라보는 시점까지 사람 행동이 이러면 뭐... 주변에 참 인격자들 많을 거 같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겠음.
이러저러한 생각을 해보고 종합할 수 있는 조언은,
남이 내 심각한 결점 내지 상기하고 싶지 않은 유년기, 콤플렉스를 유쾌하고 찌질한 사건인 듯 희화화 하는 투의 말로 놀리려고 할 땐, '생각없이 하는 말이군' 하면서 흘려 듣되, 자꾸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거르면 된다는 말임.
일단 사람이 별 생각없이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되지만. 동시에 자기가 상대의 어떤 결정적인 콤플렉스 일 수 있는 구석을, 건드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 사고가 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런 얘기는 하지 않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는걸" 이라는 말을 해봐야 전혀 학습이나 비판이 되질 않음.
그런 짓을 해도, 주위에 자기랑 비슷한 행동을 하며 '무리를 이루고 유쾌한' 사람들이 자꾸 있으니까 자기 행동에 대한 비판이 안 됨. 이런 사람들이 자기 행동을 반성하려면 외따로 떨어져서 자기 행동을 낱낱이 다 적어보며 일기를 쓰고 성찰을 해야 함. 하지만 초연결 시대니, SNS 중독 시대에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으니, 그게 비극적임.
생각할수록 역설적인 요소 - 러셀의 실재론적인, 형식론적인 작업으로, 어떤 제한된 규칙과 기호만 가지고 있는 문자만 가지고 무궁무진한 일이 가능하구나. 라는 것을 보고, 배워서, 러셀의 <수학원리>라는 것으로부터 점점 전자매체적인 발전을 이뤄내서, 이를 통해 정말 [글이 글 스스로 무슨 작업을 해내는 것인] 프로그래밍이 가능해졌는데.
그 프로그래밍과 코딩의 결과인 SNS를 통해서 사람들이 오히려 자기 정신적 성숙 따위에서 더 멀어졌고, 그런 태도에 대해 다시 100년전 사람이 사람 심리에 대해 한 말로부터 다시 배우고 있다는 이런 상황과 꼬라지.
이게 포스트모던이지
그리고 뭐 여러가지 있어서 그냥 이 구절들에 대해서 다 글 한 바닥씩 쓰고싶기는 한데... 언제 할지는 모르겟고
근데 책 보고나서 (책에 비유가 여러가지 나오는데, 뭐 소시지 기계라거나) 특별히 큰 이유는 없지만 기억에 남는 비유가 나오는 구절이 있는데-
(174p)(중략)
딸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딸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떤 면에서 더 우월한가? 딸기가 유익하다, 혹은 유익하지 않다는 일반적인 이론의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딸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딸기는 유익한 것이고, 딸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딸기가 유익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딸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딸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맛보지 못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그만큼 이 사람의 인생은 더 즐거운 것이고, 두 사람이 함께 살아야 하는 세상에 더 적합한 사람도 바로 이 사람이다.
이 말도 들으면 들을수록 옳은게, 어떤 사람이 특이하거나 쉽지 않은 행동을 공들여서 집중해 하고 있으면,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럴까? - 이상하다.' 라는 생각 보다는,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럴까? - 저 이유를 알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는게 옳게 느껴진단 말이지.
왜냐면 사람이, 암만 생각해도 마주하는 모든 것들에서 자기가 행복하고 즐길수 있어 보이는 것이 있으면, 최대한 남김없이 해보려고 하는게 '그 사람 자신에게' 분명히 제일 좋은 태도일건데.
특히 그 행동이 아주 고도로 집중해 해야 하는 행동인 경우에는, 그걸 하면서 자기 능력 자체도 개발이 되는 거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향상감 내지 자아존중감도 가질 수 있음.
근데 왜 하필 딸기를 예로 들었을까 싶음 그냥 딸기 집어먹다가 '딸기 얘기해야지' 싶었던건가
음 딸기딸기딸기딸기 딸기
딸딸기
추천
영어로 읽어 봐. 문장 너무 좋다.
나도 딸기가 좋아 하지만 나는 굴이 싫어 해산물이 싫어. 나는 이 글을 읽은 후로 러셀도 싫어졌어
뭣?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 될테야
쓸모없는사람중가장쓸모없는사람이되면개쩔게되는것이니 꼭그리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