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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을 드디어 읽어봤습니다.
과제가 밀려있는 탓에 편안한 자세로 읽지못한 게 아쉽네요. 흔히 마르케스를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평하는데, 이 소설에서 한해서는 주술적 리얼리즘이라 부르는 게 적합하지 않나 싶습니다. 기약 없는 편지와 자연스럽게 대화소재로 쓰이는 유령, 수사적인 표현에는 마법적인 현상인 마술보다 타로점처럼 소박한 뉘앙스를 주는 주술이란 단어가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주술적 리얼리즘에 초점을 맞춰보자면 대령은 오지않을 편지를 기다립니다. 작품에서도 인물의 입을 빌려 두 차례 말해지는데,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아요." 라고 직설적으로 표현되죠. <고도를 다리며>에서 고도 같이 편지는 영원히 배송되지않는 주술적 대상이지만 대령은 배송되기를 계속해서 기대합니다. 못생긴 수탉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가 크고 털이 빠져 숭하게 생긴 생명체가 투계장에서 이기면 돈이 된다고 믿은 끝에 연습경기에서 승리했습니다. 이 닭은 끝내 대령의 자존심이 되어 팔지 않겠다고 결정합니다. 현실적인 상황이지만 어딘가 이치가 빠져서 기묘한 인상을 줍니다. 리얼리즘 앞에 '주술적'이라는 수식이 붙는 이유는 그탓입니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도착하는 것은 죽음뿐입니다, 대령님"처럼 현학적인 문장으로 형성되는 주술적인 분위기가 두드러지지만 리얼리즘도 작품의 한 축을 맡습니다. 참전용사지만 가난한 대령의 사정이 그렇습니다. 돈이 말랐다는 이유로 마을을 배회하는 대령은 작품 전체에 어두운 현실을 드리웁니다. 돈 얘기가 나오지 않는 페이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바가지를 긁는 아내와 하루하루 말라가는 자금은 날이 갈수록 대령의 숨통을 조여서, 독자의 심상을 각박하게 만들죠.

자신이 죽은 뒤에야 올 연금편지, 궁핍한 가정경제와 핍박받는 참전역사로 쌓인 경험은 마지막 장에 이르러 분출되고 맙니다.

"말해봐요. 우리는 뭘 먹죠."

"똥."

똥. 소화의 배설물. 더럽고 끔찍하게 흘러간 역사와 희망없는 미래의 응축. 이 작품은 "똥"이라는 단어로 끝을 맽습니다. 대령은 가난과 참전이라는 똥을 먹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 배설은 질고 짙어서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