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작가 삼도씨 할복자살

자위대 침입…재무장 개헌요구

사령관 묶어놓고

「발코니」서 연열까지

「노벨」문학상 후보물망

검도 유도 역도로 분역단련



사병 거느리고 군사훈련도

일본의 유명한 대중작가「미시마·유끼오」(삼도유기부)씨는 25일상오11시20분(한국시간)일본도를 휴대한 5명의부하들을 거느리고 일본지상자위대 동부지구사령관실을 습격한후 옛일본무사(사무라이)들의전통에따라 할복한후 부하를시켜참수,자살했다.

그를따라 동경도한복판에있는 자위대 동부사령부를습격한 5명의 부하가운데한명도역시 할복자살했다.할복참수자살은 옛일본무사(사무라이)들의 전통적인자결수단이었다.

「미시마」씨는 이날 그가 조직한 애국단체인「방패회」의 단원5명을 거느리고 지상자위대 동부지구사령실에 난입,사령관「마스다·가네도시」중장을 인질로잡고 일본의무력재기를보장하도록 개헌할것을 요구했다. 「마스다」중장은「미시마」씨의 부하들이 일본자위대의 증강을 보장하는개헌을요구하는 선언문을제시하는동안 인질로 잡혀있었다.

한편 군복과 비슷한「방패회」제복을입은「미시마」씨는 사령부2층 발코니에나가운집한 군인들에게일장연설을하고「천황만세」를외친후 사라졌다.



사령관실에 황급히출동한경찰대는 그가이미 할복자살하여 죽어있는것을 발견했다.

「미시마」씨는 생전에 일본고대무사들의 할복자결을찬양했었다. 그의남은 3명의 부하단원들은 경찰에의해 사령부건물밖으로 쫓겨났다. 그들은 모두 이마에흰색무명지에 일장이찍힌머리띠(일어로 하찌마끼)를두르 고있었다.

업저버들은 이날 이「미시마」씨사건과 1930년대에있었던 일본청연장교들의 쿠데타와 비슷하다고보고있다.

부하들이 삐라를 뿌리는동안「미시마」씨는 2층발코니에나가 운집한 자위대군인들에게 일본군사역을엄격히 규제한 현헌법은「얄타」및「포츠담」협정에의거,일본에 강용된것이라고 비난하고 새롭고 자주적인헌법제정을위한 투쟁에 가담하라고 호소했다.

칼을휘두르는 추종자5명을이끌고 25일일본지상자위대「이찌가야」기지에 난입해서 저지하려던 자위대원8명을 부상시키고 할복자살한 일본작가겸극작가「미시마·유끼오」(삼도유기부)(45)씨는 여러해전부터일본고유의 생활전통을 수호할것을 목적으로한 사병단체「다데노까이」(순지회)를 조직해왔다.



「노벨」문학상수상후보작가로 물망에오르던 그는본명이「히라오까」(평강공위)이며 13세때부터 작품활동을시작하여 일본청년독자들사이에 인기를차지했었다.

그의 희곡「개탄할만한나라」속에서는 주인공이 할복하는내용으로「미시마」씨자신이 이것을영화화하여주연을 맡았었지만 그는25일이배역을 실연한 셈이다.

1925년1월14일 동경에서 태어난 그는 47년에동대를 졸업했고 가끔 패션전문지 모델로 등장하는가하면 스포츠 애호가이 고일본검술에 숨달했는데 한때 일본 대장생에 근무했다가 48년 사임하고 작가생활에 전념했다.

그의 작품『김각사를 불태운사람』은 50년대말 영역되어 미국에서 많이 팔렸는데 이 작품은 불교계의 부패싱을 폭로하고 일본사회 전반의 가식에대한비판을 목적으로한것이다.

그러나 60년대에 들어서그는 전통에대한 그의태도를 일변하여 만사를무릅쓰고 일본적인것을수호하려드는 극우주의자로변모했다.

일상생활도 특이해서 정오에야 기상하는그는 나머지시간에 스포츠경기구경이나 조사활동을한뒤 하오11시께야 귀가해서 다음날5시나 6시까지 집필하는것이 관례였다.

그는 부인과 1남1녀를거느리고 동경도심지 양옥에서 부유한생활을 해왔으나 가계에는 까다로와서25일 게재된 한인터뷰기사에서『나는 아내의 가계부를1백원 또는 2백원규모까지 점검한다』고 말했다.

그의「다데노까이」는 모두고교및대학졸업생인 약80명의 추종자들로 조직됐으며 그들은 그가직접 심사해서 뽑았던것이다.

그들은 부사산근처 자위대기지주변을 비롯해서 가끔 산악명승지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