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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환 시 연구: 불모의 땅에서 부른 청춘의 노래>

독후감에 들어가기 앞서 일단 오장환에 대해 설명을 하겠다.

오장환은 일제 말에 활동했으며 딜레탕트과 같은 허무주의를 노래한 시인이다. 그는 페시미즘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미래에 대한 열망을 놓지 않았다. 이렇게 진보적 가치를 지닌 오장환의 시는 문학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생애
그는 1918년에 태어났다. 1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등단했으며 카프의 후예를 자처했는데, 그의 시는 1920년대 낭만주의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렇게 <백조파>(1920년대 낭만주의 문학 단체)에게서 영감을 받은 페시미즘을 노래하며 시에서는 문명 비판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문학 단체 활동으로는 <시인부락> 등 서정주•이용악 등과 함께 동인에 참여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그는 이전의 허무주의적인 태도와 다르게 남로당 활동 등, 사회주의 전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좌익적 행보 때문에 그는 월북 후 대한민국에서 1988년까지 검열당했다. 그리하여 오장환에 대한 연구는 오랜 기간 잘 진척되지 않았다.  당대 문단의 새로운 왕이라 불렸던 만큼, 해금 이후에는 다소 주목을 받았으나 요즘에 와서도 여전히 단편적인 연구가 많았다. 그러나 오장환 전집을 발간하며 함께 출판된 이 책은 오장환에 대해 더욱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한다.

문학관
일단 책은 시인이 시 쓰기를 생활화했다는 새로운 시각의 해석을 내놓는다. 시작을 장식한 논문의 연구자는 오장환이 인간다운 삶이 현실에서 구현 불가능하여 시에서 실현하기위해 글을 썼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시인은 인생을 위한 문학관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시에서 자신의 타락한 모습을 보여준다. 타락과 진보, 이는 반대돼보이지만 여전히 그의 문학관은 일관돼있는데 타락에 대한 묘사가 일제에 저항하는 일종의 몸부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필 타락을 통해 이야기한 이유는 시인이 영향받은 1920년대 낭만주의에서 알 수 있다. 부정적 현실에 대한 반발의 형태는 혁명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실에 부정적인 낭만주의는 문명비판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는 현실의 반대항인 죽음에 대한 추구로 이어진다. 따라서 시인은 시에서 자아가 분리되는 모습을 보인다. 혁명에 대한 열망을 담고있지만, 죽음을 추구하기에 시인의 낭만주의는 전체적으로 페시미즘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경계인
계속해서 연구자는 오장환을 경계인에 비유한다. 경계인이란 현실의 안과 바깥도 아닌 경계지대에 속한 존재를 말하는데 시인은 이러한 스스로를 또 다른 경계인, 성노동자 여성과 동일시한다. 오장환은 자신이 영혼을 판매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인은 창녀와 같이 현실의 도덕으로부터 타락한 자들에게서 생명력을 느낀다. 자신이 그들과 동류라는 생각이 그들을 저버릴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타락 때문에 죽음이라는 벌을 받게 되어도 시인은 현실의 도덕을 거부한다. 이렇게 이성과 타락에 대한 시인의 생각은 시에서 자아에 대한 분리(죽음)으로 나타나게 된다.

책은 시인의 페시미즘이 일종의 자기반성이라고 해석한다. 현실에 대한 부정은 주관적인 윤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진보의 가치를 찾을 수 없는 현실에 냉소하지만, 냉소하는 자신에게도 냉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시인 또한 그 현실의 한계 내에 행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러한 자신을 퇴폐적인, 타락한 모습으로 묘사하며 자기반성을 해나간다.

장시
위의 독특한 문학관 아래 써진 오장환의 미발표 장시 <황무지>는 매우 독창적이다. 제목을 보면 같은 이름의 시를 쓴 서구 시인 T. S. Eliot에게 영향 받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오장환의 <황무지>는 몽타주적 구성으로 고유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연구는 시 <황무지>가 현실과 역사에 사유를 바탕으로 한 시적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고 해석하는데, 이처럼 시적 화자는 문명비판과 제국주의에 대한 경멸을 이야기 한다.

또 다른 장시 <전쟁>은 최초의 아방가르드 시라는 엄청난 문학사적 의의를 가진다. 하지만 장시에 필요한 통일성과 변주는 <전쟁>에서 잘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본 연구는 시간순으로 시를 재해석하여 거시적인 흐름 발견한다.
이 시는 카메라의 시선과 같은 저널리즘 형식을 띄고 있다. 그러나 그 형식은 저널리즘을 비판하는 데 사용된다. 왜냐하면  전쟁이 기술의 반란이라는 관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시는 전쟁이 식민주의와 군국주의적 현실의 알레고리라는 걸 알린다.

해방
이렇게 식민지 현실에 대한 비판을 그만두지 않았던 시인은 해방 후 어떤 모습을 보여줬을까. 이전에도 공산주의에 호의적이었던 오장환은, 해방 직후 남로당에 들어가 정치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그 시기 한 시집 <나 사는 고ㅅ>을 내는데, 시인은 시집에서 당대 언어적 공황상태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내놓는다. 말로만 듣던 해방을 어떻게 설명할 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시인은 '울음'으로 대응한다. 이처럼 시인은 숭고한 대상이 일종의 결핍이 된 붕괴에 <병든 서울>과 같이 '울음'으로 표현했다.

문학적 종착점
생애 말기 시인은 역사적 존재로서 자신의 위치 보여주기로 한다. 따라서 그는 소련에서 일종의 여행기 같은 시를 쓰게 되는데, 이 시에서 소련의 풍경은 화자의 내면에 동화돼 일체감을 지니게 한다. 그러나 이는 탕아의 귀향에 대한 염원으로 이어진다.

시적편력
그의 문학적 종착점이 고향인 이유를 알기 위해선, 그의 시적 편력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초기 시에서 그는 전근대적인 공동체 질서에 독립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근대와 같은 다른 세계로 눈을 돌리나 거기서도 동화하지 못한다. 그는 미래를 향한 전망을 찾기 위해 과거와 향수를 거부하고 고향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결국 자신이 안주할 장소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후 시인은 이전과 달리 색다른 시적 전환을 보여주는 <헌사>를 낸다. 또한 해방에 가서는 <나 사는 고>을 발표하는데 이는 오장환이 살아갈 장소를 발견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 속 시는 고향에 있는 연대할 대상과 시인의 연결을 그린다. 따라서 시인은 개인적인 감정에서 공동체의 사명으로 시의 중심소재를 바꿔나간다. 그는 고향이 이제 식민지적 현실 때문에 병들고 쇠락한 대상임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이러한 고향을 대표하며 화자로 하여금 반성을 유발하게 한다. 이는 타자에 대한 발견으로 우리는 여기서 오장환의 문학적 성장을 확인할 수 있다.

평가
이처럼 오장환은 근대의 소외된 자들에 자신을 동일시하며 그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러한 타락한 대상에 대한 비판과 동일시된 자신의 반성도 그만두지 않았다. 그의 문명비판적인 시는 근대의 초극인 당시 일제 말의 파시즘 또한 정답이 아니었음을 보여줘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결국 소외된 자들에게서 떠나가며 귀향을 하게 되는 모습은(고향을 그리워하기만 했던 노스텔지어와 구별되나) 결국 비정상성에서 정상성으로 귀환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안정을 느끼는 모습은 상당히 순환적이어서 진보라고 보기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고향을 연대의 대상으로 직접 접촉하여 타자를 재발견하기에, 이는 일종의 발전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근대에 완전히 금기시됐던 소외된 자들에 대해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상당히 아쉽다.

결론
오장환은 일제강점기 당시 비정상성을 지닌 소수자들에게 유일하게 자신을 동일시하며 연민했다. 필자는 지금 문학계 또한 현실의 도덕에서 이탈하는 소수자에게는 눈을 돌리고 있는 현실에, 자본주의 모순으로 자신도 성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같은 처지라고 생각한 오장환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는 자기연민에 빠지기 쉬운 퇴폐적인 허무주의의 한계점을 뛰어넘었기에 시인 오장환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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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써서 블로그에 올렸는데 블로그를 삭제해서 글이 날라감 그래서 여기에 이제 올려도 되나 싶어서 올림 올리는 과정에 퇴고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