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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투자에 관해 할 말이 별로 없다. 내 투자 경험이라 해봐야 코로나 시기 전후 1, 2년까지의, 고작 수년 간의 영웅문 이용 경험에 불과하다. 그 와중에 해볼 건 또 다 해봤다. 차트만 보고 단타도 쳐봤고, 시황을 추적하며 스윙, 장투도 해봤고, 기업 가치를 판단해서 가치투자도 해봤다. 해보았다 한들 투자 경력이 10년이 채 안 되니 겉핥기도 안 된다. 목돈으로 한 것도 아니었다. 남는 돈으로 재미 좀 보았을 따름이다. 그마저도 이런 저런 이유로 시장을 떠나버렸으니 더더욱 할 말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할 말이야 많지만 이렇다 할 결과나 성과도, 시장을 경험했던 기간조차 짧으니 나는 그저 입만 산 놈이다. 이하의 글은 <노마드 투자자 서한>의 독후감이자 향후 투자 복귀 시 방향성을 잡기 위한 개인적인 생각들의 나열이다.


<노마드 투자자 서한>은 동명의 투자 조합이 13년간 주주들에게 전달했던 서한들을 모은 서한집이다. 해적판으로 나돌던 텍스트들을 보고 개인 정보 노출 등의 악영향을 고려해 직접 발간하게 되었다는 설명이 인상 깊다. 투자 조합을 해산한 뒤 발간했다는 점에서 그 내막은 공익적 성격이 더 강한 듯하다. 이들 노마드 투자조합은 투자의 퀄리티를 무엇보다도 중요시한다. 전통적인 역발상 투자(시장이 침체되어있을 때 사서 거품이 껴있을 때 파는)를 통해 주식을 5년 이상, 10년, 혹은 그 이상 보유함으로써 압도적인 복리 수익을 추구한다. 노마드 투자 조합의 13년간 누적 수익률은 900%다.


1년에 두 번. 노마드는 투자자들에게 서한을 보낸다. 서한의 분량은 그리 길지 않다. 자신들의 투자 원칙과 방향성, 투자 현황에 대한 보고가 주를 이룬다. 코스트코와 같은 강력한 비즈니스 모델의 작동 원리에 대한 쉽고 명확한 해설, 자사주 매입이나 인수 합병, 자본 배분 등의 비즈니스 행위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가에 대한 분명한 논리, 업계에서 통용되는 “가치”라는 개념에 대한 접근과 투자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 유연한 사고방식. 주목할만한 점은 가히 미학적 수준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명쾌함, 그리고 정직함이다.


남의 돈을 쓰고 있다면 알려야 할 것을 마땅히 알려야 한다. 그냥 알,리는 것만이 아니라 명확하고 정직하게 알려야 한다. 필요하다면 이해를 요구해야 한다. 이 점에서 <노마드>는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모호하게 덮어놓고 넘어갈 바에 투자금이 빠지는 게 낫다고 말한다. 이들은 조합 운영 5년 후, 자신들의 성과 보수 체계를 문제 삼았다. 너무 적게 받느냐고? 너무 많이 받아 갔느냐고? 운용 중인 투자금의 규모와 성과 보수 사이의 비율이 문제가 된다고 했다. 노마드는 이미 충분한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으므로 현상 유지만으로도 성과 보수를 계속 받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자신들의 성과 보수 체계를 고점 갱신 방식으로 바꾸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전 최고 성과를 넘어서야만 성과 보수를 받을 수 있다. 적립 시스템을 활용해 목표에 미달 할 경우 투자자들에게 환급까지 해주었다. 이 편집증적 정직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좋은 사람 되기?


노마드는 퀄리티 투자를 추구한다. 퀄리티는 중요하다. 노마드에게 정직은 초고퀄리티 투자를 이루는 하위요소다. 이들은 정직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투자의 퀄리티에 집착할 뿐이다. 정직은 그 구성 요소이다. 여전히 이들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다. 조합 운영 5년 차에 이미 원금을 3배로 불린 이들이 명시한 목표는 10년 후 원금의 10배다.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하며 더럽게 돈 벌 바에는 차라리 가난하게 살라’는 말도 노마드에게는 그저 도덕적 해이일 뿐이다. 이들에게 ‘정직하지만 돈 못 버는 투자’는 지적인 게으름이며 비윤리적인 행위다. 언뜻 상하관계가 역전된 것처럼 보이는 퀄리티와 정직의 관계는 곱씹어볼만 하다.


정직은 높은 기업 가치와 그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의 토대이다. 사회학과 악의 문제까지 이어질 논쟁을 시작하기보다는 정비사의 윤리가 정비의 품질로 이어진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귀찮다고 가만 놔둔 고장 난 부품은 곧 문제를 일으킨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현상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그것을 고치는 일은 정직함이 요구되며, 정의상 정비사의 수익 모델이기도 하다. 정직함은 정비사의 자질을, 정비의 품질을, 퀄리티를 결정한다. 이와 같은 정직함이 기업과 투자자에게도 요구된다.


당신은 정직한 사람인가? 이제 투자에 뛰어들 때가 왔다. 투자자는 좋은 기업과 나쁜 기업을 구별해야 한다. 정직한 판단력으로 기업 가치를 판단해보자. 기업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요소로는 무엇이 있는가? 25%, 0.7%, 13.5%, 연성장률, 자본투하대비이익률, PER, PBR, 상환전환우선주, 자산 대체비용 대비 대폭 할인 및 잠재 가격 결정력 보유 모델. 숫자와 개념의 정의가 온전히 언어로 치환되는 투자의 세계에선 모든 것이 객관적이다. 무슨 소리인지는 몰라도 지수 대비 수익률은 13%다. 훌륭한 실적이다. 정의 불가능한 요소도 없고 계산 불가능한 요소도 없다. 필요하다면 공식도 만들어낸다. 켈리 방정식은 투자 아이디어에 대한 확신과 포트폴리오의 집중도를 엮는 공식이다. 기업의 가치를 계량하려는 용어들이 차고 넘친다. 그러나 <노마드>는 “왜 투자를 잘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까요?” 라고 묻는다.


코스트코에 관한 <노마드>의 분석은 이러하다. 코스트코는 자체 매장을 가지고 있고, 입점 상품들을 경쟁시켜 가능한 최저가로 상품을 매입한다. 경쟁사 대비 최저가로 매입한 상품에 14% 마진을 절대 원칙으로 설정한 뒤 가격 경쟁력을 유지한다. 이러한 경쟁 우위로 인해 소비자는 제품을 싸게 구입할 수 있으며, 연 회원비를 기꺼이 감수한다. 싸게 사서 싸게 되팔아 고객 충성도를 높임으로써 매장 수익과 연간 회원비 수익을 강화하고 이를 다시 매장 확장과 서비스 향상에 투자해 규모의 경제를 형성한다. 14% 마진이라는 절대 원칙을 지켜 자신들의 이익을 고객과 공유한다. 기업이 고객에게 물건을 싸게 퍼다 준 결과, 순이익은 낮고 매장 확장에 들어가는 비용은 높으며 주가는 고평가 되어있다. 사지 말아야 할 주식이다.


“시장은 코스트코가 이익률이 낮고 비용 문제를 안고 있으며 주가가 비싼 유통업체라는 컨센서스를 형성했습니다. 확실히 그런 관점이 존재합니다. 우리 관점에서 코스트코는 비용 통제 원칙을 가지고 있고 지적으로 정직하며 높은 제품 완결성을 갖춘 무한 동력 기관입니다. 게다가 가치 대비 할인된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서한에 담긴 뉘앙스를 보건데 <노마드>는 이 무한 동력 기관에서 아름다움까지 느끼는 듯하다. 퀄리티는 근본적인 수준의 정직함이 요구된다. 코스트코가 가격 인상을 최대한 자제하며 14% 마진이라는 절대 원칙을 추구하는데 필요한 것도 근본적인 수준의 정직함이다. 수익 모델과 고객 신뢰, 기업 윤리 등 모든 측면에서 그러하다. 이미 싸게 팔고 있는데 몇% 올려 가격 우위가 얼마간 희석된들 누가 알아챌까? 그러나 그들은 14%를 고수한다. 14%. 이 숫자는 원칙이고 정직함이다. 이때 당시와 비교하여 최근의 코스트코 주가는 경악스러울 정도로 높다. 50배 이상이다. 왜 투자를 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까? 초창기 서한에서부터 이러한 물음을 던졌던 <노마드>는, 이후 10여 년간, 심리학과 경제학, 본인들의 투자 실패/성공 사례, 기업 분석, 형이상학적 고찰, 필요하다면 조경사의 작품까지 언급하며 이 물음에 대한 기나긴 탐구와 대답의 여정을 이어간다. 무지의 문제, 게으름의 문제, 오만의 문제, 질투와 시기, 욕심, 행동 경제학이 지적한 편향의 문제, 본질에서 벗어난 업계의 관행, 기업의 가치를 계량해보려는 수많은 언어들 저편에서, 수익률 차트 바깥에서, 실제 기업 안에서,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은 무엇인가? 투자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가?


단적으로 말해 투자를 하는 이유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다. 미래에 열릴 과일을 얻기 위해서 작은 모종을 심는 일이다. 내년에 수확할 작물을 기대하며 지금 고되게 씨를 뿌린다. 고로 투자 대상의 내재 가치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품질이 안 좋은 모종, 작물은 심으면 안 된다. 농부는 품종을 개량할 수 있겠지만 투자자는 불가능하다. 투자는 선별의 문제다. 사실 개량이야말로 선별의 문제다.


기업과 투자자는 무엇을 선별하는가? 좋은 비즈니스 모델, 좋은 가격, 좋은 재무재표, 수익, 사내 문화, 오너의 성품, 이제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된 사회적 책임 아젠다까지 들여다 봐야 할 지경이다. 모든 회사들이 돈을 버는 건 똑같은데 어떻게 이 기업이 저 기업보다 낫다고 판단하는가? 돈을 더 잘 벌고 순이익이 높은 회사가 좋은 기업인가? 돈만 많이 벌면 좋은 회사인가? 돈은 좀 못 벌어도 착한 기업이 좋은가? 둘 다 <노마드>의 기준은 아니다. 이들은 퀄리티에 집착한다. 업계에는 단기적 성과를 위해 정직을 버린 관계자들, 투자자들이 즐비하다. 노마드는 자신들의 기회가 바로 여기서 온다며 한탄 섞인 환호를 전한다. 사람들이 무시하는 기업, 그러나 정직한 기업. 이들은 미래에 살아남을 기업이다. 노마드는 이들에게 투자한다. 미래에 위대한 기업이 되도록 돕는다. 투자는 현재의 자산으로 미래 가치를 사는 행위이다. 현재와 미래 간 거래라는 점에서 “기업은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가?” 라는 질문 이면에는 “그들은 어떻게 돈을 쓰고 있는가?” 라는 또 다른 질문이 존재한다. 바꿔 말해,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투자자는 미래의 수익을 위해 현재의 자산을 포기한다. 투자의 정의가 그렇다. 투자가 유의미하려면 물가상승률을 웃도는 수익률을 얻어내야 한다. 투자자는 지금 당장 돈을 잘 버는 기업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돈을 잘 쓰는 기업을 선별해야 한다. 좋은 투자란, 투자를 잘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라는 뫼비우스적 결론이 좀 우습기는 하나, 미래에 대비하여 떡잎을 알아보는 일이야말로 투자의 본질 아니었는가? 모든 투자자들의 욕망이 이 핵심에서 교차할 것이다.


농사의 역사는 품종과 재배 방법의 개량인즉 선별의 역사 위에 올라섬이라. 투자의 본질이 미래 가치의 선별이라면 우리의 판단은 시장이 쌓아온 역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한다. 이는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버핏의 역설과 대비된다. 즉 기회는 여기에 있다. 일찍이 그레이엄의 가르침은 무엇이었는가? 미래 현금 창출이 극대화되는 기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통계적 확립이었다. 워렌 버핏이 계승해낸 가치 투자는 이러한 증거에 기반한 초집중 포트폴리오인 셈이고 이에 요구되는 것은 인내다. 농장을 사서 매일 빤히 들여다본다고 작물이 더 빨리 잘 자라지 않는다고 지적한 버핏의 말은 옳다.


“노마드는 훌륭한 성품을 가진 기업에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격 환원에 대한 투자가 다른 투자 지출 항목을 압도하는데도 그 본질상 전통적인 회계 방식으로 포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실제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투자자로서 여러분이 거두는 부는 우리가 투자한 기업의 직원들이 회사를 매개로 고객과 맺는 관계에서 옵니다. 자본주의가 창출하는 모든 부의 원천이 바로 이 고객 관계입니다.”


“이보게, 청년. 결국 모든 건 현금이 들어오고 나가는 이야기일 뿐일세.”


정직. 다시 정직의 문제이다. <노마드>는 생각보다 더 치밀하고 성실하다. 인내심, 인간 심리에 대한 이해. 단 하나의 큰 전제만큼 수만 가지의 작은 행위들이 중요하다는 사실. 아주 큰 것 하나를 남들보다 월등히 잘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작은 것들을 남들보다 약간 더 잘하는 것이 경쟁 우위라는 사실. 퀄리티는 중력과 같이 모든 층위에서 존재하며 영향을 미친다. 가능한 모든 층위에서 정직할 것. 그것이 퀄리티의 전제 조건이라 짐작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13년간 이어진 <노마드 투자자 서한>은 인내와 배움의 여정이었다. 노마드의 정직한 태도와 진솔한 부탁에 투자자들은 한결같이 응해주었다. 이들의 상호 간 신뢰는 수익으로 보상받되 신뢰 그 자신 또한 보상으로 남긴다. 이 같은 헌신의 관계야말로 현시대에 요구되는 기회이자 그 자체로의 보답일 것이다. 이 정직하고 정연한 텍스트들의 묶음은 신뢰의 증거물이요 헌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역사이다.


“노마드는 이성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거의 영적인 여정에 가깝습니다. 모래와 낙타가 없다는 사실에 자카리아가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요! 완전한 삶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원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