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소설무용론을 주장한다. 같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상이라는 매체, 하다못해 만화라는 매체가 있는데 어째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여기서 더 나아가 소설 읽기는 할 짓 없는 백수들의 시간 때우기 용 혹은 자존감 부족한 인간의 허세 충족용 종이집이라는 말까지 주저 없이 하기도 한다. 과연 소설은 정말 영상 매체에 밀려 없어져야 하는 구시대의 유물인 것인가?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전제부터가 잘못되었다. 소설과 영상은 같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이다? 틀렸다. 소설 혹은 영상, 혹은 만화까지 이야기가 존재하는 예술 매체들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만이 그 예술의 존재 이유가 아니다. 단적인 예로 비슷한 소재, 이야기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며 새로운 영화가 나오는 현 영화 업계를 보자. 만일 영화가 단순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영상이라면 어째서 수많은 감독들이 같은 내용을 영화를 찍는가? 각 감독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특정한 미학이 있기 때문이다.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소설은 영화가 넘볼 수 없는 미학을 가지고 있고(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소설이 넘볼 수 없는 영화의 미학 또한 존재한다) 이것이 소설을 읽는 이유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소설이, 소설만이 가지고 있는 미학이란 무엇인가? 체코 출신의 한 망명 작가는 이를 인간의 실존의 고민(풀어서 인간이 존재하는 모습 그 자체라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이다)으로 정의한다. 우리는 소설에서 인간이 존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라블레에게서 인간의 본질적인 웃음을, 세르반테스에서 인식을 뒤집는 모순을, 발자크와 도스토예프스키에 이르러 풍부하게 들어찬 묘사를 발견한다. 플로베르에게서 일상의 부각을, 톨스토이에게서는 삶의 우연성을, 프루스트와 조이스에게서는 과거 그리고 현재를 지나가는 인간의 의식을 볼 수 있다. 카프카의 앞에서 꿈과 현실이 뒤섞여 부각되는 인생의 비밀이 드러나고 브로흐의 소설에서 새로운 시대의 인간상이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새로운 형식으로 빛을 발한다. 보르헤스에 이르러 소설은 현실과의 구분이 어려워지고 마르케스에 의해 소설은 더 이상 개인의 영역이 아닌 하나의 가족, 하나의 민족에 대한 실존의 탐구로 이어진다. 소설의 역사는 인간 실존 탐구의 역사이고 소설가는 그러한 실존을 잡아내는 탐색가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러한 작업은 영상으로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은가? 라고도 반문할지도 모르나 소설의 미학은 그러한 내용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소설의 형식이야말로 그런 본질을 담는 그릇이다. 그렇기에 그런 형식을 보는 것이야말로 소설을 읽어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아쉽게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소설에서 형식을 눈치 채지 못한다(상당히 경험론적인 말이기에 틀릴 수 있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소설을 읽는 과정은 다음의 순서를 거친다. 1. 우선 배경을 파악한다. 2. 등장인물을 파악한다. 3. 스토리를 따라가며 여러 사건과 반전을 즐긴다. 4. 소설이 끝에 이를수록 드러나는 작가의 철학을 본다. 5. 결말과 함께 작가가 던지는 질문 또는 교훈을 음미한다. 이러한 작업은 소설이 아닌 만화, 영화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기에 소설무용론이 등장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소설의 가장 중요한 형식을 눈여겨보지 않고 어떻게 그 미학을 즐기는가?(역으로 봤을 때 이러한 순서가 만화와 영화에 적용된다는 것은 만화와 영화의 수용자 역시 그러한 예술의 미학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플로베르와 톨스토이가 부각하는 삶의 비밀이 일상과 우연이 아니라 불륜에서 드러난다고 보는가? 도스토예프스키가 쉽게 쓸 내용을 쓸데없이 길게 늘여 썼다고 생각하는가? 카프카가 환상성이 어린애의 상상으로 치부되는가? 형식을 보지 않고 소설을 읽는 다는 것은 영화를 줄거리만 파악하고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매체의 미학을 제대로 즐기지 않는 것이다.

정리해보자. 소설은 영화 혹은 만화와는 다른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고 이는 함부로 침범이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소설의 미학은 이야기에만이 아니라 형식으로서도 존재한다(오해하지 말자 형식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소설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예술 영역이고 영화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배척받아야 할 이유가 없는 예술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커튼》을 참조하자.



그리고 이 글이 학술 내용이라고 관리자가 공지 어기냐고 뭐라 할 거 같은데 분명히 독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소설 독서에 대한 이유고 쓸모없는 의대생 대문호론과 수능 만점자 개새끼론 등등의 독서는 하지도 않는 이상한 인간들의 잡소리와 비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